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로마서강해7권28장, 강의안)

강대식 2015. 12. 14. 06:46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1:18-20)

 

사도는 이 하나님의 진노의 나타남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죄의 성격(경건치 않음과 불의)이고, 둘째는 죄를 전혀 핑계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죄의 핑계댈 수 없는 이유는(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 대해서)

 

첫째,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 ‘막는다는 것은 진리를 제어하는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진리를 제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점은 그들이 진리를 알았다는 것을 함축한다. 여기서 진리를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를 뜻하는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구원에 관한 특별한 진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 ‘하나님에 관해 알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관해 알려진 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에게 활용되도록 주어졌다고 사도는 말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경건치 않거나 불경건하고 불의한 것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식을 어떠한 방식으로 알려주셨는가? 내면적인 데서 뿐만 아니라 외면적인 것을 통해서도 이 지식을 주셨다.

내면적으로, 1)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 안에나타내셨다는 것이다. 인류 안에는 신의식이 있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말한다. 그 신의식은 인간본성 전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무신론자라는 것을 떠벌리는 사람들마저 하나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없애버리려고 애를 쓰고 조롱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인간 속에 깊이 있다.

 

2) 양심을 통해서이다.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32) 인류 속에는 보편적으로 이 옳고 그름에 대한 의식이 있다.

 

외면적으로, 1)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논쟁할 때 접촉할 수 있는 접촉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도는 여기서 창조를 통해서 자연 속에 그것을 주셨다고 말한다. :147, 14:15-17, 37-38장 등에서 그것에 대한 엄청난 진술이 나타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창조계 전체가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눈을 예를 들면, 눈이 얼마나 섬세하고 세밀하고 균형 잡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 목적 없이 조성자 없이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바울은 그들을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는 말로 그것을 가리킨다.

 

2)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섭리나 질서 가운데 동물과 사람을 먹이시고 기르시는 모든 일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3) 세계와 열방들의 전 역사를 통해서 그 점을 발견할 것이다. 창세기 처음 11장을 통해서 얻은 열쇠를 가지고 성경 밖의 세상 역사를 읽어보면,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같은 것이 작용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사도가 말하는 것은 창조계나 섭리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에 관해서 알려져야 하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에 관한 전체 진리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해서 말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에 대해서만 말한다. 창조와 섭리와 역사 속에는, 우리를 구원하는 충분한 지식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 은혜, 긍휼과 자비도 발견하지 못한다. 단지 하나님의 위대함과 영광과 엄위와 능력과 공의의 발견으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이 우주의 도덕적인 통치자라는 사실을 확증하기에 충분한 것이 있다. 그것은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서 핑계대지 못하게 할만큼 충분하다는 것이다.

 

만일 바울이 이제까지 말해 왔던 모든 것이 이방나라들에게 해당되어 그들마저도 핑계 댈 수 없다면 모든 특별한 계시를 받은 유대인들이야말로 얼마나 더 핑계 댈 수 없겠는가? 더 나아가 신약시대에 살던 이교도들이 핑계 댈 수 없다면, 수 세기 동안 복음이 전파되고 신 구약성경이 공개된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욱 더 핑계 댈 수 없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이 사도의 복음전도방식이다.

 

그들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불의를 수단으로 해서 진리를 억누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진리를 옆으로 밀어젖히고 진리를 왜곡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입장이 그러하다. 심판 날에 그들은 경건치 않고 불의하다고 송사를 받으나 전혀 핑계 댈 수 없다.

 

첫 번째,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교만, 이지의 교만이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여”(22) 오늘날 사람은, 진정으로 20세기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학식이 있다는 표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원인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다는 이 소원이 그들을 망하게 하지 않았는가? 마귀는 그들의 교만을 이용하여 수작을 걸었다. “그것이 너에게 불공평하지 않느냐 네가 그런 자리에 있기에는 너무나도 크다!” 교만은 언제나 근본원인이다.

 

두 번째 원인은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21) - ‘생각논증’(이치)라는 뜻이며, ‘허망하게되었다는 것은 미련하고 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들이 생각(이치)에 있어서 미련하고 악하게 되었다라고 해야 한다. 그들은 주어진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이 낸 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개념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논증과 추측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철학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다. 사도가 그것을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라고 말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저 사람은 생각한 것만 가지고 야단들이다! 그것은 허망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혼돈에 빠지고 말며, 따라서 모든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만다.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그 교만 때문에 계시를 한쪽으로 밀어제치고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다. 그것은 마음이 미련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미련한 사색의 결과, 그러한 류의 삶을 살게 되며 그 결과, 영적인 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전혀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앞에 서 있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목수로만 보았던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고전2:14) 교만, 속임수, 사변, 그리고 계시의 거부. 그런 다음에 영적으로 어두워진다.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그런 일을 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

 

인간에게는 오직 한 가지 소망만 있을 따름이다. - 이 복음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4:4-6)이 어두운 마음에 비추어, 철학자들이나 헛된 사변들이 흩어지고 사라지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같이 겸비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하는 오직 그 복음뿐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김영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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