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값진 지출
양낙흥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U. S. News and World Report라는 미국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는 해마다 전 미국의 모든 대학들을 평가하여 종합 순위를 발표합니다. 얼마 전 한국 신문에도 보도되었지만, 지난 3년 연속 미국의 수천 개 대학들 중 일위로 평가된 대학은 프린스턴 대학입니다. 하버드, 예일을 제치고 학생 수 6천여 명의 작은 대학이 사실상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일년 학비는 최소한, 3-4만 불, 즉 5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이 부모의 재정 능력에 따라 부족한 부분의 100%를 학교로부터 지원받고 있습니다. 학생 등록금은 그야말로 운영비의 1%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학교 운영자들이라면, 이렇게 적은 학생 수로 학교를 어떻게 운영하며 교직원들의 임금을 어떻게 감당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프린스턴을 비롯한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운영비의 거의 90% 이상을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성처럼 웅장한 기숙사 건물들, 올림픽을 유치할만한 실내 체육관 시설, 예술품 같은 강당, 강의동, 행정동, 심지어 테니스 코트나 학교 길까지 모든 시설물이 졸업생이나 이사들, 혹은 독지가들이 기부한 선물들입니다. 모든 건물과 시설들의 한 쪽 벽면에는 “이것은 누구 누구의 기증에 의한 것입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미국 교회사를 보면 프린스턴 대학의 시작은 참으로 미약했습니다. 이 학교의 전신은 “통나무 대학”(Log College)이라는 별명을 가진 신학교였습니다. 이 학교는 18세기 초 미국의 제일차 대각성이 시작될 무렵, 윌리엄 테넌트(William Tennent)라는 경건한 장로교 목사가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통나무 오두막을 하나 지어 놓고 자기 아들 둘을 포함한 대여섯 명의 학생들을 불러다 놓고 시작한 학교였습니다.
저는 교정을 지나면서 프린스턴 대학의 초기 역사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학생은 몇 명 없고 가난했던 시대에 이 학교가 재정적으로 얼마나 어려웠을까? 만일 이들이, 한국의 많은 대학들처럼, 교육의 질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학 정원을 늘이고 학과를 증설해서 재정을 확충하는 일에 급급했다면 이 학교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쯤은 학교가 없어졌거나 아니면 이름도 없는 3, 4류 대학으로 겨우 명맥이나 유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등 교육 기관이 교수는 몇 명 없으면서 학생만 무작정 많이 받으면 고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강의 효과, 과제나 시험 평가, 교수의 학생 개별 지도 등 모든 것이 부실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부실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은 사회나 교회로 나가서 부실하게 기능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교 발전을 위해 기부할 능력이 있겠습니까? 아니 능력 이전에 아예 마음도 없을 것입니다. “그 학교 다니는 동안 내가 정말 많이 배우고 자랐다”라는 뿌듯함과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그 때 내가 그 학교에서 받은 교육 덕분이다” 라는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모교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길 터인데 학생들을 애초부터 주로 재정원으로 보는 학교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그러한 인상을 남기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십중 팔구 그 학교 졸업생들은 학교에 대해 불만과 냉소로 가득한 채 교문을 나설 것이고 그 후에는 기껏해야 무관심 아니면 비판 정신으로 가득한 가운데 학교를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목사들이라면 교인들에게 자기가 졸업한 신학 교육 기관을 지원하자는 말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재정이 부족한 학교들은 학생들을 더 많이 뽑음으로써 그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교육의 질은 더욱 떨어질 것이고 거기서 배출되는 졸업생들은 더욱 부실해질 것입니다. 부실한 졸업생들은 자신의 역할을 더욱 빈약하게 수행할 것이고 모교를 지원할 마음이나 능력은 더욱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악순환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많은 좋은 대학들이 존경스러운 것은 이들 중에 돈 때문에 교육의 질을 타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재정을 위해 학교 설립의 본래 목적을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당장 재정적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학교 담당자들은 약간의 희생을 감수할 각오를 했습니다. 그리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면서 훌륭한 졸업생들을 배출했습니다. 그러한 태도에 감동된 주변 관계자들은 그 학교를 위해 기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의 수준있는 교육 덕분에 성공한 많은 인재들이 모교를 위해 거액을 기부하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 미국의 고등 교육이 세계 최고 수준을 확보한 원인이 그것입니다. 돈 때문에 정원을 늘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좋은 대학들에는 돈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그 대학에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국인들 중 자기 모교에서 자신이 정말 많이 배우고 자랐으며 오늘 내가 이만큼 성공하게 된 것은 모두, 혹은 상당 부분 그 학교에서 받은 교육 덕분이라 생각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재물의 일부를 모교에 희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됩니까? 일반 학교까지 갈 것 없이 교회 계통 학교들은 어떠합니까? 재정 확충을 위해 모집 정원을 늘이는 일은 없습니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여 민족과 교회를 위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육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보다 조직으로서의 학교 유지 그 자체를 지상의 목표로 여기는 태도는 없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 학교가 설립되었던가 하는 역사적 목적은 망각하고 어쨌든 학교가 세워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운영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경영제일주의적 사고는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순교자적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표방하는 우리 교단 산하 학교들은 이러한 세속적인 경향에 물들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재정적 고려 때문에 목사후보생을 양산하는 비참한 풍토에 휩쓸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대원이 한국의 많은 비양심적인 신학교들과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단과 성도들의 관심 및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단과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자질있는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일이 재정 문제 때문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전 교단 성도들의 기도와 물질 후원이 절실합니다. 우리 신학교가 타 신학교들처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불과 수년 후 여러분 교회들의 강단을 책임지게 될 설교자 양성을 위해 프린스턴에서와 같은 교인들의 유산 및 재산 기부 운동이 시급한 때입니다. 주의 종을 양성하는 일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값진 지출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출처] 세상에서 가장 값진 기부|작성자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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