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1.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게 해 주는 적극적 증거 5가지
적극적인 증거 1,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
예수님을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게 하는 영은 성령이시다
사도는 요일 4장 2절과 3절에서 이 표징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그리고 15절을 보면 더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촉진시키는 영은 성령이시다
만일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고 있는 영이 명백히 다음의 방식으로 역사하는 것이 관찰된다면, 즉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확고히 믿게 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면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한다면, 즉 그가 육체로 나타나신 것,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그가 유일하신 구세주이신 것,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단히 필요로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등을 더욱 확고히 한다면, 그리고 그들 속에 평소에 그들이 가졌던 것보다 그에 대해 더욱 높고 존경스러운 생각을 낳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리고 그들의 애정이 더욱 그에게로 기울도록 만든다면, 그것은 지금 역사하고 있는 영이 참되고 바른 성령임을 말해 주는 확실한 표징입니다.
적극적인 증거 2,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
성령은 세상을 미워하도록 하며, 마귀는 세상을 사랑하도록 한다
역사하고 있는 영이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격려하고 죄 가운데 확고히 살도록 만들고 세상적인 욕망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는 사단의 왕국의 이익에 반하여 작용한다면, 그것은 그 영이 참된 영이며 거짓 영이 아님을 말해 주는 확실한 표징입니다. 이 표징을 우리는 4절과 5절에서 보게 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세상은 죄의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한다
사도가 사용하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 서신의 2장 15, 16절에 나와 있는 사도 자신의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와 같이 사도가 언급한 “세상”이라는 말은 죄의 욕심에 속한 모든 것, 인간의 모든 타락한 일과 육욕을 포함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모든 행동들과 대상들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게 하는 영은 성령이시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쾌락들과 이익들과 명예들을 덜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방식으로 역사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한 것들을 열렬히 추구하는 것에서부터 떠나도록 하는 것이 관찰된다면,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이 계시해 주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의 미래와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 준다면,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열렬히 추구하도록 만든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죄의 무서움과 그것이 가져올 죄책과 죄로 인해 맞이하게 될 비참함에 대해 깨닫게 해 준다면 그러한 방식으로 역사하는 영은 하나님의 성령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은 사람의 죄와 양심을 깨우는 일을 하지 않는다
마귀는 양심을 달래어 잠들게 하고 조용히 있게 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깨우치고 죄의 악함을 깨닫게 하는 영은 성령이시다
죄의 비참함을 깨닫고 구원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죄의 무서운 본질에 대해 느끼게 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을 느끼게 되고, 죄 때문에 그들이 처한, 그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열렬한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단을 사용해서 구원을 구하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분명히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탁월함으로 인해 세상의 욕망을 버리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만일 사람들이 신적인 것들의 탁월함에 대한 감각을 가짐으로써 그리고 복음 안에 약속된 다른 세상에 대한 영적인 즐거움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세상적인 욕망의 대상들을 버리게 된다면, 그리고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떠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성령의 영향력이 더욱 풍성히 입증될 것입니다.
적극적인 증거 3, 성경에 대한 높은 관심
성령은 성경을 존중하게 하고, 성경을 사랑하도록 역사한다
사람들이 성경을 매우 존중하게 되고, 성경의 진리와 신성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역사하는 영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이 규칙을 사도는 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사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는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가르치며, 사람들에게 규칙이 될 교리와 교훈들을 전달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우리의 말을 듣는다.” 이 구절에서 말한 사도의 주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모든 말씀, 즉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신앙과 실천의 규칙으로 주시기로 정하시고 영감하신 모든 것들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여기에는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이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교리의 토대 위에 그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나 사람들의 영혼의 관심사에 있어서 모든 시대에 걸쳐서 교회를 지도하기 위하여 위대하고 영구적인 규칙으로 신적인 말씀을 주셨는데, 마귀는 이러한 신적인 말씀에 대한 존중심을 사람들 속에 갖게 하는 일을 결코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극적인 증거 4, 건전한 교리와 신학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를 드러내 주고,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영들을 판단하는 또 다른 규칙은 6절의 뒷부분에 나오는 말씀들, 즉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이라고 하는 두 가지 반대되는 영에 주어진 호칭에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 두 호칭은 하나님의 성령과, 그의 역사를 모방하는 다른 영들의 반대되는 특징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는 영의 작용 방식을 관찰하는 가운데 그 영이 진리의 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본다면, 즉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진실인 것에 대하여 확신을 주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영이 바르고 참된 영이라고 안심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하고 있는 영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과, 그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평소보다 더욱 민감하게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인생은 짧으며 대단히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끼게 해 준다면, 그리고 그들의 본성의 죄와 행동으로 지은 죄가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그들 자신으로서는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건전한 교리에 일치하는 다른 진리들을 확신케 할 수 있다면, 이와 같이 역사하는 그 영은 진리의 영입니다.
적극적인 증거 5,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사랑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표지다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고 있는 영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영으로 역사한다면, 그것은 그 영이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분명한 표징입니다. 이 표징은 사도가 7절부터 이 장 마지막 절까지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기서도 여전히 사도가 서로 반대되는 영들에게 영향을 받은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비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도는 누가 참된 영을 가졌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의 표지로 사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2절과 13절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이 구절들에서 사랑은 마치 그 속에 성령의 참된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동일한 일인 것처럼 말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 장의 마지막 두 절에서도 그렇게 나오고 있으며 이 장의 16절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령의 표지로 제시한 이 마지막 표지를 사도는 가장 뛰어난 표지로 말하는 듯이 보입니다. 사도는 기타 모든 다른 표지들보다 사랑을 훨씬 더 많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사랑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7절, 11절, 12절에서 말하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17절, 18절, 1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절에서는 두 가지 사랑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두 절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으로 이끈다
사랑과 겸손은 마귀의 영과 가장 반대되는 성령의 특징이다
성령의 역사를 안전하게 분별할 수 있는 표지들은 마귀가 하려고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2. 실제적 적용
반 부흥파에 대한 적용
성령의 역사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관찰이 함께 필요하다
사도 요한이 제시한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부흥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역사가 틀림없다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을 직접 관찰하고 교제한 결과 나는 현재의 부흥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임을 증거할 수 있다
죄와 비참을 깨달음으로 인해 생긴 고민은 정상적인 것이다
비상한 현상이 나타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즉 그들의 죄와 비참을 알고 커다란 고민 가운데 있든지, 아니면 신적인 것들의 위대함과 놀라움과 탁월함에 대한 달콤한 감각에 압도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과 이유 없는 갑작스러운 두려움은 구별되어야 한다
죄와 심판에 대한 진리를 더욱 크게 깨닫는 사람은 더욱 큰 신체적인 영향을 받는다
극단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매우 사악하고, 자신이 지은 죄가 너무 많고 심하며, 자신의 마음이 무섭게 부패되었고, 자기 마음이 무섭도록 완고하며 굳어 있음을 아주 크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아주 많음을 느끼고, 죄 때문에 당하게 될 심판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크게 자주 그들은 영원한 고통의 무시무시한 구덩이에 대한 생생한 관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들을 손에 쥐고 계시는 크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크게 진노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놀랍도록 무시무시하게 보입니다. 그의 진노가 아주 크게 그들에게 다가오므로 그들은 커다란 위험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결국에 그들은 전적으로 모든 것에서 절망하고, 오로지 그들에게 그렇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야흐로 그들은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진노와 파멸에 완전히 합당하다는 사실에 대한 비상한 감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전적으로 공의롭다는 것을 매우 크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참으로 절대적으로 주권적이시라는 것을 매우 크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평온하게 되고, 그들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발 앞에 부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적인 힘은 많이 소진되었습니다. 그 때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랑과 경탄, 기쁨, 자기 낮춤으로 채웠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탁월하시고 사랑스러우신 구속주를 갈망하도록 이끌면서, 그 앞에서 재 속에 눕기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갈망하게 하였습니다.
구세주의 영광스러운 탁월함과 사랑에 압도당한 사람도 신체적인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구속주의 영광스러운 탁월함과 그가 죽음으로써 보여 주신 사랑의 놀라움에 대한 깨달음 때문에 그들의 신체적 힘이 다 빠져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그것과 더불어 자신들의 보잘것없음과 매우 비열함에 대하여 아주 비범하게 깨닫는 일이 있었으며, 그리고 스스로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회심자자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전에 회심했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쁨 위에 홍수 같은 눈물이 뒤따랐으며 커다란 통회와 겸손의 모습이 뒤따랐습니다. 특히 그들이 회심한 후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더 열심히 살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비열함과 자기 마음의 약함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 것을 매우 열렬히 갈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더 큰 자기 부인이 수반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다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으며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친부흥파에 대한 적용
부흥을 반대할 빌미를 제공해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는 간절히 권면하고자 합니다. 그 역사를 비난하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인을 제공할 만한 일은 무엇이든지 피하기 위해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기” 위해 조심하였습니다(고후11:12). 그 사도는 디도를 권면합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엄격하게 살피고 주의하여 설교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 ‘책망할 것이 없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2:7-8). 우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마10:16). 오늘날 우리들이 흠 없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성령의 역사의 대 원수인 마귀가 자기 힘을 다해 특별히 우리를 시험하고자 할 것을 우리는 예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작은 어린이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포효하는 사자는 우리들에 비해 너무도 강합니다(벧전5:8). 그리고 이 옛 뱀은 우리들에 비해 너무나 교활합니다(창3:1).
1) 영적 교만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반부흥주의자들에 대한 최선의 방어책은 겸손과 자기 부인이다
겸손과 자기 부인,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우리들의 최선의 방어책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영적인 자만을 가장 엄히 경계해야 하며, 특이한 체험과 안위의 경험,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가 받았을 수 있는 하늘의 높은 은혜들로 인해 자고해지는 것을 가장 엄격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스스로 이러한 영적인 자만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아마도 지금까지 살았던 성도들 중 가장 탁월한 성도라고 할 수 있지만)도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보셨습니다. 셋째 하늘에서 그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바로 그 때에도 그랬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을 보십시오. 자만은 마음 속에 있는 가장 악한 독사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들어온 첫 번째 죄입니다. 죄악이라는 전체 건물의 기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맨 밑바닥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게 모든 것과 뒤섞입니다. 그리고 그것만큼 마귀가 성도의 마음에 들어가도록 허용하고, 그래서 마귀의 미혹에 노출되도록 만드는 죄는 없습니다.
2) 내적 충동과 직통 계시에 집착하면 안 된다
많은 친부흥주의자들이 내적 충동을 직통 계시로 오해하는 일이 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지지하는 참된 동조자들 중 몇몇은 그들 마음의 충동과 강한 인상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어떤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이나 뜻을 알리는 직접적인 통지인 것처럼 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 어디에도 지시되어 있지 않고, 계시되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3) 성령의 은혜와 은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은혜는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은사는 불신자에게 주어질 수도 있다
몇몇 사람들이 그러한 충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 이유는 은혜와 은사를 제대로 고려하거나 비교하지 못해서 생긴다고 나는 믿습니다. 은혜는 무한히 탁월한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탁월함, 행복 그리고 영광은 전자에 있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은사들을 받아도 하나님께 가증스러울 수 있으며,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7:22).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장 위대한 특권은 그들이 영감을 받았다거나 기적을 행한다거나 하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그들의 탁월한 거룩함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은혜는 그들이 가진 특이한 은사들보다 수천 배나 더 고귀하고 영예로운 것이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스스로 위안을 삼은 것은 자기가 왕이라든가 혹은 선지자라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신적인 빛과 사랑, 기쁨을 전달하시는, 그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의 거룩한 영향력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상이나 계시나 기적적인 은사에 있어서 모든 사도들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참고. 빌3:8).
은혜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게 한다
은사의 목적은 은혜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은혜에 도움 되지 않는 은사는 유익하지 않다
교회의 성숙하고 영광스러운 시기에는 은사가 필요하지 않다
4) 목회자들이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동일한 은혜의 수준에서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보다 나은 봉사를 할 수 있다
인간적 학문을 경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인간적 학문을 매우 크게 사용하셨음은 부인할 수 없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동일한 은혜의 수준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적 지식을 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더 크게 봉사할 수 있고 그 일에 유리할 것입니다.
지식을 얻는 수단인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지식을 얻는 수단인 공부를 소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로 매우 유용합니다.
5)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성경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을 금한다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의 여부를 내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만 하시는 권한이다
다른 사람의 회심 여부를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참된 성도들만으로 구성된 가시적 교회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라
6) 반부흥주의자들과 지나친 논쟁을 피하라
7) 너무 과격한 형식을 사용함으로 부흥 반대의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본질적인 일이 아니면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하는 것이 좋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의 나라를 진전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겸손히 권하고 싶은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마 9:16-17절에서 우리들에게 남겨 주신 그 놀라운 지혜의 말씀을 잘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 되느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들은 종교적인 일들을 다룰 때에 어떤 고정된 방법과 형식에 우리 자신들을 너무 많이 가두어 왔습니다. 우리는 가장 위대한 성공을 거둔 사람의 모범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고전 9:20-23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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