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대각성
제1장 대각성의 주역들
대각성 직전 뉴잉글랜드의 영적 상태 및 대각성의 전조
1630년대 약 90명의 목사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자기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태도를 소유하고 있었다. (1630-1640년 사이 약 삼 만 명의 영국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로 건너감). 그러나 1650년대에는 연로한 몇몇 목사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던 불순종과 배교의 징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죄에 대한 사람들의 무감각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공동체에 임할 것이라고 경고의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계몽주의는 계약 신학을 좀먹어 들어갔고, 인디언들과의 전쟁인 필립스 왕의 전쟁(1675-1678)때, 뉴잉글랜드의 백인들 중 1/16이 목숨을 잃었는데 어떤 청교도들은 이를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데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 생각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외조부 솔로몬 스타다드는 노샘프턴의 회중교회에서 몇 번의 영적 체험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뉴잉글랜드의 영적 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1700년경에는 그 땅의 일상사가 교회보다 술집의 지배를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원 되기를 꺼려하였다. 1702년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는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오 뉴잉글랜드여! 뉴잉글랜드여! 떨지어다, 네 영광이 사라지고 있도다. 점점 떠나가고 있도다.” 이민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결코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대각성의 전조
1720년대 북미의 한 지역(뉴저지)에서 어떤 부흥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화란 개혁교회 교인들을 목회하고 있던 독일인 데오도르 프렐링가이젠이 교인들의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과의 차가운 언약 관계가 아니라 열렬한 교제 관계와 선한 삶을 낳은 내적 회심을 촉구했다. 그 결과 화란 개혁교인들 사이에 부흥이 전파되었다.
1735년 당시, 뉴잉글랜드에서는 테넌트 형제들의 이름이 막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지역교회에서 회심 설교를 선포하며 수많은 죄인들이 각성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노샘프턴 부흥이 있기 몇 년 전부터의 일이었는데, 그들의 부친인 윌리엄 테넌트는 이미 1726년에 통나무로 오두막을 짓고서 신학교를 운영함으로 기독교의 갱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의 네 아들를 포함한 여러 청년 목회자들이 배출되었다. (길버트 테넌트, “안일한 세상을 향한 엄숙한 경고”, 존 테넌트, “중생의 본질”)
조지 윗필드
이처럼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부흥들을 하나의 통일된 운동으로 묶은 사람은 젊은 성공회 설교자 조지 윗필드였다. 1714년, 영국 글로스터에서 여관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기 전 여관에서 어머니 일을 도왔고, 17세에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 1736년,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문학사 학위를 얻었다. 그는 경건, 자선, 권면에서의 탁월함이 인정되어 좀 일찍(22세) 안수를 받았다.(대개 24-25세 목사안수) 특히 설교에 있어서 윗필드는 사도 시대 이래로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평가받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윗필드는 자신이 설립한 고아원을 위한 모금 목적으로 설교 여행을 시작했다. 남부 조지아에서 출발, 북동부의 보스턴까지를 여행하면서 집회를 인도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부흥을 일으켰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심지어 법원도 휴정될 정도였다고 한다. 윗필드는 노샘프턴 교회(조나단 에드워즈)에서도 집회를 가졌는데 거의 온 교인들이 설교 시간 내내 울고 있었다고 그의 일기에 적고 있다.(영적으로 약간 소강 상태에 있었음)
길버트 테넌트의 부흥사역
윗필드의 뒤를 이어 뉴잉글랜드 지방에 부흥의 불길을 계속해서 부채질한 사람은 길버트 테넌트였다. 그의 사역은 많은 회심자를 얻는 결실을 가져왔고, 부흥의 열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상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는 열광주의적인 반응으로 인한 부작용도 생겨나면서 사람들 속에 윗필드의 순회설교 때 싹텄던 반부흥주의 정서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1741년 8-9월에 부흥은 최고봉에 이르렀다.
대각성에 찬 물을 끼얹은 사건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나친 열광주의로 인해 오히려 부흥에 찬물을 끼얹고 반부흥주의 노선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강화시켜 주는 사건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열광주의를 부추긴 대표적인 사람이 제임스 데이번포트(James Davenport)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목사들을 불러내어 회심했는지 자기가 판단해 주겠다고 하고, 심지어 교인들 앞에서 목사를 회심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1741년 9월 10일, 조나단 에드워즈는 예일대 졸업식에서 요한일서 4장 1절을 본문으로 당시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나타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열광주의적인 극단으로 초래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고 부흥 자체까지 반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밝혔다.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증거를 살펴볼 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흥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참된 부흥임을 강조했다. 후에 이 설교가 확대되어 책으로 발간.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반부흥주의와 친부흥주의
드디어 이런 잘못된 영을 받은 자(광신적 사이비 부흥주의자) 때문에 1743년 5월 보스턴에 있는 구파 회중교회 목사들이 모여 부흥을 전면 반대하고 부흥 운동의 결과들을 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주동자는 찰스 촌시(Charles Chauncy)였다. 이제 뉴잉글랜드의 목사들은 친부흥주의자들과 반부흥주의자들 양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촌시는 1743년 9월 보스턴에서 「뉴잉글랜드의 종교 상태에 대한 생각들」을 출판했다. 그 직전에 에드워즈가 출판한 「뉴잉글랜드의 현재 종교 부흥에 대하여」(1743년)에 대항하는 목적으로 쓰인 그 책은 부흥운동에서 발견되는 무절제한 방종들을 총망라한 것이었다. 그는 대각성에서 약간의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인정하지만 극단적인 몇몇 사례들을 볼 때 나쁜 것이 훨씬 더 많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에 있어 감정의 표출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종교에 있어 ‘이성’과 ‘감정’의 기능에 대한 실재적인 견해 차이가 촌시와 에드워즈를 갈라놓았다. 이것이「종교적 정서(감정)」(1746년)가 나오는 배경이 된다.
제4장 「성령의 역사의 구별되는 표지들」
1. 대각성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
①아주 비범하고 특별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사도 시대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매우 새로운 방식으로 일어났다.
②인간의 몸에 일어나는 특이한 증상이 있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체험은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③부흥시 소동 현상이 발생했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도 시대에 성령의 부으심은 세상에 큰 소동을 일으켰다.
④부흥에 가담한 사람들의 행동에 신중치 못한 점들과 커다란 실수를 범했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인간 본성의 연약함과 신자 속에 남아 있는 부패 때문에 신중치 못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
⑤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생기는 일이 있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배반자가 있었다.
부흥이 성령의 역사라는 성경적 증거
첫째,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과 함께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둘째,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셋째,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더 존중하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그 진리와 신성을 더 확신하게 하는 것은 분명 성령의 역사라고 에드워즈는 주장한다.
넷째,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써 교리와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다섯째,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게 만든다.
실천적 추론
1. 이상의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에드워즈는 제1차 대각성이 성령의 역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에드워즈는 이 성령의 역사를 반대하거나 방해할 생각은 꿈에라도 하지 말고 그것을 증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3. 부흥에 가담한 자들은 부지런히 주의를 기울여 모든 실수와 비행을 피함으로써 사역을 좌초시킬 수 있는 어떤 일도 삼가야 한다고 에드워즈는 권면한다. 그리하여 부흥을 비난하는 데 급급한 사람들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겸손히 주 예수 그리스도만 전적으로 의지하라. 둘째, 성령의 이적적 은사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그보다 훨씬 더 탁월하고 영광스러운 것은 성령의 은혜, 사랑, 성화다. 셋째,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자고해져서 자기 같은 은혜 체험이 없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선자니 참 종교에 대해 무지하다느니 하는 식으로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에드워즈는 경계했다.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은 심판 날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런데 은혜를 조금 체험하고서는 다른 사람들과 잠시 대화한 후 그들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실수라는 것이었다.
경건한 사람들 속에도 부패가 남아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들이 육신적이고 위선적이며 형식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함부로 판단하는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에드워즈는 경고했다. 그는 특히 영적 교만이 분리주의를 가져오는 것을 비난했다. “가시적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여 성도들과 위선자들을 공개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주장하면서 참 성도들과 위선자들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아주 ‘모순 된 일’이라고 에드워즈는 비난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가시적 교회 안에 또 다른 하나의 가시적 교회를 만들 능력을 인간에게 주셨다’고 주장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제5장 「뉴잉글랜드의 현재 종교 부흥에 대한 소고」
-건전하고 균형 잡힌 부흥 신학-
1743년 에드워즈가 「뉴잉글랜드의 현재 종교 부흥에 대한 소고」를 집필하고 출판했던 배경에는 부흥에 대한 반대의 논리가 더 정교화 되고 명료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답변의 필요성이 야기되었다는 점이 있었지만 그것 외에도 또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친부흥주의자들에 대한 ‘신중치 못한 처신들’의 강도와 빈도가 훨씬 더 심각해졌기 때문에 그들의 광신주의를 만류할 필요성이 절박해졌다는 것이었다. 에드워즈는 양 극단 사이에서 건전한 입장을 취했다.
제1부에서 당시 일어나고 있는 ‘비범한 역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역”이라고 규정한다. 첫째로, 그는 부흥을 예단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것은 사전에 판단될 일이 아니라 사후에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일어난 ‘결과’를 관찰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지 검토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둘째, 성경이 모든 판단 기준이라고 에드워즈는 주장한다. 셋째, 역사, 즉 과거의 관찰에 의해 부흥을 판단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단지, 과거에 없었던 일이라고 해서 그것을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넷째, 에드워즈는 반부흥주의자들을 향해 “자신의 체험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반박한다.
제2부에서 에드워즈는 모든 사람이 이 부흥의 사역을 “인정하고 기뻐하고 증진시켜야 할 의무”를 지며, 그 반대의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짓이라고 경고한다.
제3부에서 에드워즈는 열심 있는 부흥 사역자들이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열 가지 경우들을 열거하면서 그 비난들이 얼마나 부당한가를 밝힌다. 첫째, 부흥 설교자들이 청중들의 지성보다는 주로 감정에 호소한다는 비난이었다. 둘째, 부흥 설교자들이 받은 비난은 이미 커다란 공포 속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지는 않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설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셋째, 부흥 설교자들에 대한 비난의 이유는 그들이 지옥불과 영원한 저주의 이야기로 순진하고 연약한 어린이들에게 겁을 준다는 것이었다. 넷째, 또 하나의 비난은 종교적 집회를 너무 자주 가지면서 종교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한다는 것이었다. 다섯째, 그들이 설교를 너무 자주 한다는 비난이었다. 여섯째, 어떤 부흥사들은 비명소리, 기절 등의 육체적 반응을 너무 많이 일으킨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일곱째, 부흥 설교자들은 강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둠으로써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여덟째, 강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말을 너무 많이 할뿐더러 너무 열렬하고 진지하게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아홉째, 집회에서 찬양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열 번째, 어린이들의 종교적 집회에 관한 불만이었다.
열심 있는 사역자들이 경계해야 할 함정들
당시 부흥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심 때문에 때로 실수를 저지르거나 과오를 범하는 일들이 없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그러한 부작용들이 부흥의 진행에 상당한 차질을 초래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역사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열심 있는 신자들이 고쳐야 할 문제점들 몇 가지를 제시한다.
1. 영적 교만
에드워즈는 특별히 겸손과 교만이라는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아마 그만큼 교만의 문제성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는 신학자도 드물 것이다. 뒤에 나올 「종교적 정서」에서도 에드워즈는 겸손을 참 은혜로운 정서의 열두 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로 지적하면서 겸손에 대한 설명에 한 장을 할애한다. 「부흥에 대한 소고」에서도 그는 교만의 위험과 겸손의 중요성에 대해 아주 길게 상술한다. 특별히, 그는 친부흥주의자들이 영적 교만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역설한다. 하나님에 대한 남다른 열심이 있거나 비범한 은혜를 체험한 자들은 사실상 그렇지 못한 신자들에 대해 판단하고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기 쉽다. 반드시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도 열심과 우월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보다 냉담하거나 열등한 자들에 대해 판단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가지기 쉽다. 그러한 것이 모두 교만의 산물이라고 에드워즈는 경계한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교만은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오류들의 “최초의 그리고 최악의 원인”이다. 그것은 죄와 사망의 몸의 “최악의 부분”이며 우주에 들어온 “최초의 죄”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완악한 죄”이며, “그 아비 마귀를 아주 닮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것은 복음의 진보를 위해 열성적인 자들의 마음속으로 마귀가 들어오는 “정문”이다. 그것은 마귀가 신앙적인 사람들을 붙잡든 “주된 핸들”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 마귀가 도입하는 “모든 불행들의 주된 원천”이다. 이 “질병”이 치유되기 전에는 다른 질병들을 치유하기 위한 백약이 무효다. 반면, 이 질병이 치유되면 다른 것들은 쉽게 치유된다. 교만은 “마음을 어둡게”하고 “판단을 오도”한다.
반면 겸손한 자는 “어린 아이”처럼 쉽게 교훈을 받는다. 자신이 얼마나 쉽게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일 자신이 궤도를 이탈했다는 말을 누군가가 해 주면 그는 즉시 “아주 자세하고 정확하게” 자신을 검토한다. 겸손만큼 사람으로 하여금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없다. 또, 겸손만큼 인간의 마음으로 하여금 참된 신적 빛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해 주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눈을 맑게 해 주는 것은 없다(시25:9).
2. 잘못된 원리들-신비주의 내지 광신주의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하는 자들 중에 신비주의 내지 광신주의자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에드워즈는 일종의 신비주의 내지 광신주의를 지적한다.
3. 마귀의 특별한 전략에 대한 무지 내지 불찰
그리스도인들의 체험 속에 불순물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고 에드워즈는 주장한다. 은혜로운 체험들 속에 부패한 육신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영적 발견들 중 전적으로 순수하게 영적인 것은 이 세상에서 기대할 수 없다. 인간적이고 자연적 감정과 열정, 혹은 상상력에 새겨진 인상, 어느 정도의 자기 의와 영적 교만이 신적인 것들 가운데 혼합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항상 순수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거룩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완전성 때문이라면 그것은 순수한 것이요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자기 사랑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것이 아니다.
부흥을 진작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들
1. 목사들은 은혜, 열심, 그리고 용기를 추구해야 한다.
부흥이 일어날 때는 목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 목사들은 “다른 누구보다 은밀한 기도와 금식을 많이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함께 많이 기도하고 금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근 목사들끼리 자주 만나서 여러 날 동안 금식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위로부터 오는 신적 은혜의 비범한 공급을 간절히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그는 역설했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어떤 위대한 일을 하려 할 때 아주 필요한 두 가지는 “열심과 각오”라고 에드워즈는 주장했다. 인간 세상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위대한 일들은 주로 열심과 각오 덕분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러면서 목사들이 냉랭하고 냉담하며 구태의연하고 미지근하면 결코 어떤 위대한 일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에드워즈는 경고했다.
2. 부와 권력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쓰여야
재물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왕국 확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에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한 기금을 만듦으로써 교회 없는 시골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탁월한 재능과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다. 또 자질이 훌륭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충만하나 집안이 어려운 젊은이들을 발굴해서 그들을 목회 후보로 양육할 수 있다. 또 가난한 마을과 촌락들에 학교를 설립해서 지원함으로 어린이들에게 일반 학문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심으로 인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기독교 전파에 필요한 신앙 서적을 배포함으로써 문서 선교에 기여할 수도 있다.
3. 예배적 의무보다 도덕적 의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에드워즈는 예배의 외적인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도덕적 의무들’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의, 진리, 온유, 용서 그리고 사랑과 같은 행위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기독교의 모든 의무들 중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내적 행위들과 원리들”, 혹은 “마음의 예배”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것 등에 “기독교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에드워즈는 내적 신앙의 두 가지 외적 표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첫째 외적 예배 행위들이요, 둘째는 도덕적 계명들에 대한 순종이다. 외적 예배 행위들 가운데에는 종교 집회에의 참석, 성례나 다른 외적 제도들에 참여하는 것 등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되 인간들 사이의 우리 처신에서 자기 부인, 의, 온유, 기독교적 사랑 같은 그의 도덕적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 두 번째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에드워즈는 도덕적 의무들의 수행이 하나님에게 더 큰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그 속에 더 큰 자기 부인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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