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비판

[스크랩] 관상적인 영성은 기독교의 어디까지 침투했는가? / 레이 윤겐(강의안)

강대식 2016. 10. 18. 21:19

관상적인 영성의 범위

 

많은 기독교인이 실용적인 기독교 신비운동이 존재하는지, 관상적인 영성으로 향하는 하나의 명백한 흐름이 수면 위로 부상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신비 기도 운동의 영향은 이제 일반인에게까지 미쳤다. 1992뉴스위크지는 신에게 말하다는 제목으로 표지 기사를 실었다. 마치는 말이다.

침묵, 적절한 몸의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복 기도를 통한 마음 비움은 모든 세계 고등종교에서 신비자들이 수련해 온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은 대부분의 현대 영적 지도자들이 신에게 더 가까이 가길 원하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기본 바탕이 되고 있다.

 

20059뉴스위크지는 <미국의 영성>이라는 특별 기사를 실었다. “영적인 것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장장 17페이지에 걸쳐 나갔다. 기독교 신비 운동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이 기사는 기독교 신비 운동이 존재할뿐더러 잘 활성화해 있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증거였다. 기사는 오늘날 관상기도 운동의 기원을 다루면서 시작하는데, 이 운동을 크게는 카톨릭 수사인 토머스 키팅이 시작한 것으로 평가한다.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수사인 그(키팅)에게 명상은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었다. 키팅은 선승으로 유명한 로쉬 사사키를 초청해 수도원에서 피정을 인도하도록 했다. 키팅은 교회에서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인 영성 수련법을 평신도들에게 제공한 전례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같은 수도회 소속인 윌리엄 메닝거는 1974년 어느 날 14세기 관상 안내서, ‘무지의 구름한권이 먼지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운동의 가장 명백한 통합 형태는 로마 가톨릭에서 발견된다. 가툴릭 서적 출판사 협회의 전 회장인 마이클 리치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주장한다.

많은 사람이 뉴에이지 운동에 깔려 있는 영적인 원리들이 가톨릭 신앙의 주류로 곧 편입, 아니 재편입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런 일이 바로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관상 기도 지도자인 바실 페닝턴은 이처럼 성장하는 세력을 노골적으로 인정하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거대한 공동체의 일부다-- 우리는 군대다.” 이름난 가톨릭 메체사는 말했다. “관상 기도는 다시 한 번 기독교 사회에서 공통 관심사가 됐다.” 윌리엄 섀넌은 관상적인 영성이 이제 옛날의 가톨릭을 광범위하게 대체할 정도가 됐다고 말한다. 가톨릭교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많은 영적 이념이 이제 방향을 관상으로 틀었다는 것이다. 한 수녀는 무지의 구름이 이제 거의 모든 가톨릭 영성의 기본이 되었고, 관상 기도는 전 세계에 퍼져 나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신비 기도운동은 가톨릭 최고위층의 인증을 받은 것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이 운동 확산의 주체임을 한 인터뷰 기사를 읽고 알게 되었다. 토머스 키팅은 1970년대에 요한 바오로 6세와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간부들과의 만남에 대해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털어 놓았다.

교황 성하께서는 교회가 관상의 전통을 재발견하지 않으면, 갱신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구체적으로 수도원들을 거명하셨는데, 수도원들이 관상적인 삶을 살고 있으므로 평신도들과 다른 종교인들이 자신의 삶에 이러한 차원을 열어 가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관상 기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교권을 이용하여 신자들에게 권장한 가톨릭교회의 최근 공식 신앙 고백을 보라. 이 새로운 신앙 고백은 이렇게 확고하게 진술하고 있다. “관상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관상 기도는 침묵이다.” 교황 바오로의 권고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는 한 유명 가톨릭 서점의 서가들 사이에서 알게 됐다. 영성 서가들에 꽂힌 책들의 10에서 90퍼센트가 신비적 기도에 대한 것들이었다. 신비적 기도는 압도하는 주제임이 틀림 없었다.

 

관상 영성은 가톨릭교회의 담장 밖 너머로 퍼졌다. 주류 개신교단들(성공회, 연합감리교, 장로교, 루터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등)이 관상이라는 물줄기 앞에 양분됐다. 20세기 개신교 자유주의 전통과 사회정치적인 행동주의는 영적 체험에 영적으로 너무 고갈되고 목말라해 왔다. 실용적인 신비주의라는 이 유파는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자들에게 영성이라는 감각을 선사한다. 그러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정치적인 올바름 또한 그들에게 허용한다. 오리건 주립 대학의 종교문화 교수 보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부 주류 교단에서는 떠오르는 패러다임인(관상적인) 기독교인이 주종을 이룬다. 기독교인이 되는 이 두 가지 방법 사이에서 다른 것들은 동등하게 나뉜다.

 

이 주류 교단에 납품을 하는 한 서점의 영업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즉 관상 기도가 개신교 주류 교단에 큰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목회자가 이 수련에 개방적이라고 한다. 또한 일부 목회자들이 저항감을 보이기는 하지만, 관상으로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는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많은 개신교도가 서구적인 관상 전통으로 회귀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 하고 있다는 한 출판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전형적인 중년에 중산층 감리교, 장로교, 회중교회 그리고 침례교인으로서 자신들의 출석 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로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외형적으로 학생들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러나 정말 학생들 각각 한 사람이 여러 형태 중 하나의 뉴에이지를 이미 접했고, 신비 사상에 매료됐음을 발견했다.

 

관조적인 영성은 심오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수련자들에게 소위 전통적인 기독교인을 끌어오고 있음을 보여 줘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이 점이 이 수련 운동의 정통성을 의심할 수도 있는 사람들의 망설임을 희석한다. 관상 기도 운동의 범위와 유포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국제 영적 지도자들이라는 조직에서 낸 통계를 봐야 한다. 2008년 회원 목록에는 성공회 652, 장로교 239, 감리교 175, 루터교 239, 그리고 2,386명이나 되는 로마 가톨릭이 들어 있다. 다른 40개 교단 혹은 전통들을 포함하면 합은 6,648명이다. 이 목록에는 불교, 영지주의적 기독교, 힌두교, 무슬림, 유대교, 싯다 요가 그리고 페이건/위컨(일종의 범신론을 신봉하며 요술, 마법 등을 수행하는 신흥종교집단)까지가 포함되어 있다.


- 레이 윤겐,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제2장에서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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