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1권, 10장, 세워진 율법 (2017수정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2. 15. 09:30

10장 세워진 율법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구원의 길이 이렇기 때문에 구원의 교리에서 추론된 세 번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구원의 길, 즉 하나님께서 그를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움으로 이루어진 이 구원의 길을 율법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관사가 없는 믿음(faith)이 아니고 ‘the faith'이다. 한 의의 길에 관한 특수한 메시지를 의미한다. 어떤 행위와도 구별되는 바로 그 믿음, 바로 그 믿음의 원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수사학적 질문을 던진 다음에 사도는 바로 그럴 수 없느니라라는 말로 단번에 응수한다.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거짓된 추론을 끌어내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가 그런 오류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는 즉각적으로 그 이유를 말한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율법을 무익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우리는 그것을 서있게 도와주고 있다. 아니 우리는 그것을 세우고 있다. 진정으로 우리는 그것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노라우리의 임무는 우리가 해온 방식으로 이 교훈을 해석하고 기정화 시켜야 한다.

 

- 우리는 이 진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잘못된 두 가지 해석방법이 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율법은 구약 성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종종 구약 성경을 율법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세를 통해 준 율법, 즉 도덕법, 의식법, 특히 도덕법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교훈으로 새로운 제도 아래서 구약의 율법은 완전히 폐하여졌고 따돌림 받았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믿음의 법을 맞이했다. 그러므로 이후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된다.” 만일 우리가 구약이 실제로 내 버린 바 되고 새 법으로 대치되었다고 가르친다면, 우리는 명백하게 구약의 율법을 세우고 있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정반대이다.

 

또한 현 시대의 인기 있는 교훈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가르치는 교훈이 있다. 복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저서 속에도 침투해 들어 간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방편으로 해서 우리는 이제 율법생활을 할 수 있으며 지킬 수 있다. 그리스도는 선한 생활과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해 율법을 지킬 수 있고 존귀케 할 수 있고 완성할 수 있는 강건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얼마나 그럴 듯한 주장인가? 그것은 흔히 부활절 메시지로 전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가 아닌 그의 부활 생명과 권능으로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다. 십자가는 지나가 버렸다우리가 그를 바라보며 기독교적 삶을 살도록 도움을 요청하면 구원을 얻고 그 기독교적 삶이 은연중에 율법을 지킴으로써 율법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교훈은 전적으로 거짓되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바울은 3장에서 칭의만을 말하고 있다. 그들처럼 기독교적 삶, 선한 생활에 대하여 얘기하기 시작하면 성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교훈은 종국적으로 성화되었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로마 교회의 칭의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전혀 성화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합을 얻는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3장의 끝까지 흐르는 주제는 칭의의 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2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었느니라”(24)


그것은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사도가 가르치는 칭의 교리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이 그릇된 해석은 칭의의 진정한 방편이 우리의 행위라고 진술한다. 우리는 그 진술을 거절해야 한다. 칭의는 비록 우리가 여전히 우리의 죄 가운데 있지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에 의한 법정적이고 법률적인 선고이다. 바울이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율법을 존귀케 하며 세운다는 것이다.

 

- 바울은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엄격히 반복하고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18) 주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율법을 이루심으로 율법을 세우신 것이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먼저 주님은 자발적인 순종 가운데서 율법을 존귀케 했다(4:4). 하나님은 그를 한 사람으로써 율법 아래있게 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그의 가장 거룩한 순종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존귀케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수난의 순종 속에서 율법을 더욱더 뚜렷하게 높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이루신 것으로 전에 율법이 말한 것보다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확증하고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첫째, 십자가는 율법의 일차적인 기능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를 확증하였다.

둘째, 십자가는 율법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진노에 관 한 모든 것을 확증한다.

셋째, 십자가는 율법이 죄와 우리의 죄됨에 관한 모든 것을 확증한다.

넷째, 십자가는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어느 영혼이든지 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십자 가만이 우리의 철저한 무능력과 우리의 철저한 절망과 무력을 확증한다.

다섯째, 십자가는 구약의 희생 제사의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며 그럼으로써 제사들을 세우는 것이며 나아가 그것들을 명한 율법을 세운다.

여섯째, 십자가는 하나님께서는 친히 율법에서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9:22)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 주셨다.

일곱째, 율법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단순히 도덕성이나 행동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이다. 십자가는 단지 용서하심뿐만 아닌 깨어진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십자가에 대한 어떠한 견해이든지 간에 이들의 요소를 나타내지 않는 것은 그릇되고 거짓된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만일 내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대한 대목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저는 틀림없이 로마서 3:21-31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복음의 심장과 핵심이 있다. 교회사는 전 세기를 걸쳐 이를 명백하게 보여 준다.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고 타락하여 교회가 자기의 능력을 상실하는 것은 복음에 대해 그릇되어 있을 때이다. 메시지는 이것이니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이다. 그것은 복음의 심장이다.

 

- 사람들은 왜 우리가 하려고 했던 방식대로 해석하지 않으려 하는가?

첫째,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바리새인으로 유대식 교훈에 젖어 그릇된 신관과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요, 진노란 사랑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피의 희생 제도를 설정하셨다는 사상은 괴이하고도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 그들은 성경을 영감으로 된 것이며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그들과 토론할 필요가 없다

 

둘째, 다드(C.H.Dodd) 박사에 의해 대표되는 학파이다. 다드 박사는 중세와 종교 개혁 시대에 바울 신학이 재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드 박사는 하나님의 진노와 모든 형벌 개념, 그리고 우리 주님의 대신 고난 받은 것, 화목에 관한 교훈, 이것들을 종교 개혁자들뿐만 아니라 위대한 청교도 기타 그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 의해 교훈된 교리이며 전파된 것들이다. 교회가 수 세기를 걸쳐서 실수해 왔다 - 그들은 화목의 개념을 좋아하지 않고 그리스도 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나님과 그의 사랑에 대한 진술이 자기들의 철학사상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현대정신을 겨냥하는 것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피와 희생과 진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현대 정신을 겨냥하는 것이니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교훈은 대다수의 무리들이 추종하고 있는 인기 있는 교훈이다. - 현대 정신이 모든 진리의 표준이 된다. 이 현대 사상도 20년 내에 낙후된 것으로 쫓겨 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참된 권위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권위는 사도 즉 부름 받은 사도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모든 세기를 걸쳐 전도되었고 성령에 의해 높임을 받은, 그리고 개인을 중생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상 대 부흥을 가지고 왔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는 이 구속의 복음을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어리석게 되지 말자. 그들이 소위 말하는 최초의 발견이라는 것에 흔들리지 말자. 영광의 하나님의 복음은 오직 하나 뿐이다. 이것만이 우리를 구원하며 이것만이 우리를 의롭다 한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9)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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