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첫째 간구 청교도 아카데미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마6:9).
그 첫째 간구는,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이다. 라틴어로는 이것을 “당신의 이름이 성결되게 하옵시며”이다. 이것은 천사들의 노래였으니, 즉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였다. 다시말하면, 그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고 거룩하게 되어지이다이다. 이것은 생활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구원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롬9:23).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인간들의 영혼의 구원보다도 더욱 가치가 있다. 즉 이것은 크고 첫째 되는 간구이다. 이것은 종교상 가장 중대한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다른 간구중의 얼마는 쓸모없고 진부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케 하는 것은 하늘나라에서도 크게 유용하게 요청되어질 것이다. 우리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든 이름보다 높이는 것이며 그를 숭배할뿐 아니라 숭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신격에만 고유한 것이다.
Ⅰ. 하나님의 이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본질.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드시며”(시20:1)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지키시며이다. 그가 알려질수 있는바 속성이다. 그의 지혜, 능력, 거룩, 그리고 선하심에 의하여 하나님은 그의 이름에 의해서만큼 알려지신다.
Ⅱ.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룩하게 한다함은 한 사물을 어떤 신성한 목적을 위해 보통 용도로부터 따로 떼어 놓는 것이다. 모든 남용으로부터 이것을 따로 구별해 놓는 것이며, 그리고 이것을 거룩하게 또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에게 최고의 존귀와 존경을 드리는 것이며, 그의 이름을 신성하게 하는 것이다.
Ⅲ. 어느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케 한다고 말할수 있는가?
(1) 우리가 그의 이름을 공언할 때이다.
그의 거룩한 총회에서의 우리의 집회는 그의 이름에 드려지는 명예이다. 공언에 의해 하나님의 정복을 입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참다운 종들은 아니다.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마7:23)라고 하였다.
(2) 우리가 그를 높이 그 진가를 인정해 드리며 존경할 때 그리고 그를 우리의 생각속에서 최고의 높은 위치에 모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3) 우리가 그 이름을 신뢰할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시33:21) 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4:20)라고 하였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명예를 얼룩지게 하고 그의 이름을 이지러지게 한다.
(4) 우리는 최고의 공경심을 가지고서가 아니면 절대로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14:20)라고 하였다. 하나님에 관하여 헛되이 또는 가볍게 말하는 것은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며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5) 우리는 그의 이름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5:11)라고 하였다. 다른 아무에게도 주지 않는 그런 사랑을 그에게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
(6)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신령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그가 지정하신 바와 동일한 종류의 경배를 그에게 드릴때이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라고 하였으니,(레10:3). 하나님이 화려함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은 예배의 순수성이다. 그가 제정해 놓지 않으신 것을 그의 예배 속에 도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이름에 불명예를 끼친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가 지정하신 바와 동일한 마음의 헌신을 예배로 드릴때이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고 하였다. 열심히 라는 단어는 비유로서 부글부글 끓어 넘쳐야 함을 시사한다.
(7) 우리는 그의 날을 거룩하게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렘17:22)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대신에 들어온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을 주의 날이라고 부른다(계1:10). 우리는 이 날에 모든 세속적인 노동으로부터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렘17:24)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날에 엄숙한 태도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봉헌해야 한다.
(8)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명예를 하나님께 돌릴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시96:8)라고 하였다. 우리가 모든 명예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전가 시킬 때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9) 우리는 그를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어떻게 아들이 순종에 의함보다 그의 아버지를 더욱 공경하겠는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시40:8) 라고 하였다.
(10) 우리는 우리의 찬송 가운데서 그의 이름을 높일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는 그에게 찬양을 드림으로서 그를 거룩하게 한다.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드”(시71:8) 라고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찬송과 찬가를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노래하였으며,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로 불리워졌다(삼하23:1). 성도들 이외에는 아무도 그를 찬송함으로서 올바른 방식으로 이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수 없다.
(11) 우리는 그와 더불어 공감할 때, 그의 이름이 고난당함을 보고 슬퍼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우리는 그의 불명예를 마음속에 깊히 새긴다. 얼마나 모세는 하나님의 불명예로 인하여 감정을 상했었던가! 그는 두 돌판을 깨었던 것이다(출32:19).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땅에 떨어질 때 그의 이름이 고난당하므로 슬퍼한다. 느헤미야는 시온의 참상을 마음속에 깊히 새긴다. 그의 안색이 바뀌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는 슬퍼보인다.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느2:2)라고 하였다.
(12)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동일한 존귀를 성자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요5:23)고 하였다. 소시니안파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여, 그는 단지 인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버지께 드리는 동등한 존경을 아들께 드려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어야 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시다(히1:3). 만일 신격이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신격이 그분안에서 비취신다. “그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시다(골2:9).
(13) 우리는 그의 진리를 위해 일어섬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의 많은 부분이 그의 진리안에 있다. 그의 진리는 그의 말씀이다. 그는 우리에게 그의 진리를 보물처럼 위탁하신다. 우리가 그의 진리를 위한 열심있는 변론자가 될 때 이것은 그의 이름에 돌리는 명예가 된다. 아타나시우스는 진리의 보루라고 일컬음 받았었다. 그는 아리안파들에게 대항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일어섰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있었다.
(14) 우리는 할수 있는 대로 많은 개종자들을 그에게 만들어 드림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모든 거룩한 방편들, 조언, 기도, 모범을 다하여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위하여 얼마나 힘썼던가!
(15)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들보다 오히려 그의 이름의 명예를 취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
옛 성도들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치욕을 견뎌내기를 기꺼워 하였다.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시69:7)라고 하였다. 다윗은 그가 당한 어떠한 수욕도 개의치 않았으며,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수난당하지 않게 하였다. 엘리야는 웃음조로 “털이 많은 선지자”라고 불리어졌고, 이사야는 “담군”이라 불리어졌고, 스바냐는 “가혹한 선지자”라고 불리워졌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들 훼방을 그들의 머리 둘레에 면류관삼아 둘렀다. 우리가 우리의 세상적인 유익과 흥미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취할때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명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취할때이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롬8:36)라고 하였다. 얼마나 전폭적으로 그의 백성이 그를 사랑하는가를, 그리고 그들이 죽음으서써 그를 섬기는 것을 세상이 볼 때 이것이 그의 이름을 높이고 존귀케 한다.
(16) 우리는 거룩한 대화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고 하였다. 비록 종교의 주요 사역은 마음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빛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보도록 비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적용 1
경건한 사람의 참다운 수기와 인격을 보라.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성결케 하는 자이다. 참다운 성도는 야심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가 애쓰는 모든일에서 그가 자문하는 질문은 이 행동이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향한 것인가이다.
적용 2
필자는 여기서 슬픈 애도를 하면서 사도 바울처럼 눈물을 흘리며 말할수 있다(빌3:18).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성결하게 되는 대신 얼마나 불명예스럽게 되어지는가 생각해 보라. 모든 인간들의 영혼의 구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그의 이름이 심각하게 수난을 당한다.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말하기 쉽다. 오호라! 우리의 모든 고난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이름이 가장 수난을 당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개신교도들에 의하여 불명예스럽게 된다. 얼마나 그의 이름이 오늘날 영국에서 불명예스러워지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대신 그들의 혀로서 이것을 욕되게 하고 불명예스럽게 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혀로서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처럼 그들이 생활에 의해서도 그리한다. 그들의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면서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말하면 무엇하는가? 그들은 그들의 무신론, 안식일을 범하는 것, 불결, 위증, 무절제 그리고 부정에 의하여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한다. “우리는 시대의 쓰레기 속에 살고 있다”, 즉, 그안에서는 사악의 공동 하수도가 통과하고 있다. 아아,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대신 더럽혀지고 모독을 당하는지 보고 우리의 눈이 거룩한 눈물의 강수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적용 3: 권면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자. 이것은 우리의 존재의 바로 그 목적이다. 생존함으로써 우리가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그를 찬미하기 위함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그는 우리의 영혼을 주셨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나 탁월하셔서 이것은 거룩함을 받기에 마땅하다.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9)라고 하였다. 태양은 우리가 그것을 경탄하든 아니하든 그것의 광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도 울가 그것을 거룩하게 하든 아니하든 화려하고 영광스럽다. 그안에는 모든 빛나는 완전성, 거룩, 지혜, 그리고 자비가 있다. 그는 “찬송받으실 여호와”(삼하22:4)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한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이름이 우리에게 의해 존귀함을 받으시고 존대함을 받으시 옵소서”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이름을 존대케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도에 모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존귀를 가져다 드리지 않는 것은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아니하고 그에게 존귀의 수익을 가져다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들로 인하여 존귀를 얻으실 것이다. “내가 바로와 ....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출14:17)라고 하였다. 바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전차들을 바다에 전복시켰을 때 그는 바로로 인하여 존귀를 얻으셨다. 헤롯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아니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행12:23)고 하였다.
우리가 죽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였다는 것과 성결하게 하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될 것이다. 죽으시기 조금 전의 그리스도의 위로는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라는 것이었다. 그의 인류의 구속하심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성결하게 하신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에는 아무것도 손실되는 것이 없다. 만일 우리가 그의 이름에 존귀를 돌리면 그는 우리를 명예롭게 하실 것이다.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했었던 성도들은 얼마나 유명했었던가!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으로, 모세는 그의 온유함으로, 다윗은 그의 열심히, 바울은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사랑으로 얼마나 유명했었던가! 그들의 이름은 귀한 향기름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안에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한다. 하나님은 임종시에 우리를 존귀케 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승리의 기쁨과 함께 하늘 나라로 올리워 가게 하실 것이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눅16:22)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사후에 우리에게 명예를 부여해 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몸에도 영광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본질에 있어서가 아니라 성질에 있어서 천사들 같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영광을 부여해 주실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않고 도리어 모독하고 불명예스럽게 한다면 그는 그들에게 멸시를 쏟으실 것이다. 비록 유다의 이름은 성경에 있고 본비도 빌라도의 이름은 사도신경에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름은 하늘의 왕권에 대한 배반자들로서 악명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이다.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나1:14)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1) 하나님에 대한 건전한 지식이다. 그의 최상급의 탁월성들을 관찰하라.
즉, 그의 거룩하심, 그의 측량치 못할 선하심을 천사들은 우리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며,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이름을 성결하게 하고 그리고 그에게 할렐루야를 노래한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기 위하여 힘쓰자.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시48:14)라고 하였다.
(2)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지라.
진가를 인정해 드리는 사랑 그리고 그를 즐거워하는 만족감의 사랑을.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21:15)라고 하였다. 자기의 주인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기의 주인을 결코 존귀케 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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