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믿음을 가로막는 것들
1. 실제적인 믿음을 소유하지 못했는데도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
1) 거짓 믿음
구원도, 생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미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회개도 하지 않고, 효과도 없는 고백을 하며, 자신을 불신자로 더욱 굳어지게 하면서 머물게 됩니다. 이것은 커다란 무덤의 문처럼 불신의 상태로 묻혀 있는 영혼을 일어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는 의사가 치명적인 질병의 환자에게 적절한 진단서를 써 주지 않는 실수와도 같습니다. 이런 경우 그 환자는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되는데, 그 병을 키우고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사탄은 기만하는 마음과 합력하여 이 거짓된 믿음을 구원 얻는 믿음의 습관 속에 끼워 넣습니다. 마치 리브가가 야곱을 그 형과 같이 보이려고 염소털로 옷을 지어 입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축복이 아니라, 저주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야곱을 따라 다니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 거짓 믿음은 추측
일시적인 믿음은 속기 쉬운 추측이나 가정으로 자신을 속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문이 닫혔을 때,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은 단지 헛된 추측과 가정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습니다. 믿음은 소망이 없이는 안 되지만, 소망은 믿음이 없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3) 진실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의 차이
①대상에 있어서 다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 전부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에 반해 추정은 그리스도의 일부분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추정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죄의 용서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정의를 만족케 한 것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관하여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거룩한 방법과 정결함에 대한 기대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줄곧 슬픈 멍에이며 무거운 짐으로 느낍니다. 그러면서 인자하신 주님께서 자신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②근거에 있어서도 다릅니다
추정은 근거 없는 확신을 말합니다. 추정의 근거들은 자신의 밖에 있거나 혹은 안에 있습니다. 자신의 밖에 있는 근거들은 하나님께서 자비하시다, 혹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아직 회개하지 않고, 불신앙의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자신 안에 있는 근거들은 자신의 의와 좋은 행동, 의도에 믿음의 근거를 둡니다. 즉,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거나 남들보다 그리 나쁘게 행하지 않음으로써 남들보다 나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자는 성경을 자신의 확신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확정된 것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또한 마음속에 성령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계약을 확신케 하는 것입니다(엡1장 참고).
③효력의 면에 있어서도 다릅니다
믿음과 추측은 다른 효력을 생산해 냅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믿음의 효력은 그분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분을 닮아 가려는 강한 열정, 그리고 식을 줄 모르는 사랑입니다. 추정은 자신의 모든 즐거움 앞에 그리스도를 둘 정도로 그리스도를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실제적으로 따르고자 하는 열망이 없기에 모든 것을 바라지도 않고,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에 오직 그분께로 나아가려 하지도 않습니다.
둘째로, 죄와 관련하여 믿음의 효과는 그 죄를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하여 안타까워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마음이 죄에 대하여 완전히 반대하는 곳에 있도록 합니다. 죄를 두렵게 여기며 싫어하고, 매우 애통할 만한 것으로 여기게 합니다. 반면, 추정은 죄를 가벼이 여기게 합니다. 어떤 죄들은 자신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그 죄를 짓고, 다른 죄에 대해서도 무관심합니다. 믿음의 소리는 요셉의 목소리입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반면 추정의 목소리는 소알과 관련한 롯의 목소리입니다.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창19:20).
진정한 믿음은 죄를 미워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과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는 것을 동반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시97:10)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추정하는 자에게는 자기 사랑이 지배적입니다.
진정한 신자는 죄에 대해 애통합니다. 반면에 추정하는 마음은 딱딱한 마음입니다. 마치 돌과 같습니다. 진정한 신자의 영혼은 복음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치 자기 눈 앞에서 자신이 찔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바라봅니다. 곧 자신의 눈이 직접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감동하여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대함의 광경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정하는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시며 돌아가시는 것을 보아도, 녹지도 않으며 피 흘리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마음에 어떤 인상도 남기지 않습니다. 추정하는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습니다.
셋째로, 사람들에 대하여는, 믿는 자들은 겸손하고 사려 깊지만 추정하는 자들은 자만과 방심이 나타납니다. 믿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을 가집니다. 믿음은 자신의 악함이나 부족함과 무능력, 즉 이전의 죄 많음과 지금의 가치 없음,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과 나약함과 부패를 깨달아, 영혼을 낮은 자리에 거하게 합니다. 반면에 추정은 교만함과 자만심으로 마음을 부풀게 하여서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둡니다. 이것은 자만과 자기 확신을 수반하며, 자기 자신을 가장 높이 평가하면서 독립적으로 서려 합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당연히 여겨서 남의 비난이나 반박,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또한 믿음은 거룩한 질투와 자신에 대한 경계의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롬10:20 참고). 반면에 추정하는 믿음은 부주의하고 방종하여서 자신의 마음을 주장하도록 합니다.
④특징이 다릅니다
⒜진정한 믿음은 정화하는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정화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음의 행동이나 믿음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확신은 생명력 있는 소망으로, 육체와 영혼의 부정함들을 제하여 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자신의 본으로 삼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도 그런 정결함을 가지고자 할 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그러나 추정은 외부적인 정결함에서 멈춥니다. 큰 죄를 피하는 외부적인 거룩함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종교적인 행위나 외적으로 나타나는 의로움에 만족해합니다. 그리고 모두 배제된다 하더라도 자신만은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본질적인 부패의 행위나 움직임에 대해서는 눈감아 버립니다. 그것이 외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괜찮은 것으로 여깁니다.
⒝진정한 믿음은 일하는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것입니다(갈5:6 참고). 이는 일하는 것이 ‘사랑으로’ 일하는 것이므로 효과적입니다. 진정한 신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일을 합니다. 이것이 일하도록 만드는 주요한 동기가 됩니다.
그러나 추정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추정은 나태하거나 다른 원칙에 의해 움직입니다. 추정하는 자의 모든 일과 모든 행동들은 모두 자기 사랑에서 나옵니다. 바리새인처럼 칭찬받고 다른 사람의 눈에 좋게 보여서 좋은 평판과 존경을 얻기 위해서 일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귀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금처럼 모든 시련을 참아냅니다. 진정한 신자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기꺼이 받습니다. 또한 기꺼이 다른 것에 의해서 자신의 믿음이 시험당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말씀뿐만 아니라 최악의 말씀도 기꺼이 듣습니다.
그러나 믿음 위에 다른 것을 두는 추정은 시험해 보는 수고도 하지 않을뿐 아니라, 진리를 찾는 수고까지도 싫어합니다. 추정하는 자는 자신의 영혼을 면밀히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가르침을 아주 좋아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자라납니다
진정한 믿음은 꾸준히 자라나는 것입니다. 즉시 완전한 상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는 성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추정은 성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장을 위한 열심의 필요도 찾지 않습니다.
2.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교만
교만한 자는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믿음을 돌보며 가꾸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믿는 것이 쉬운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들이 스스로 믿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무엇이 믿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1)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본성적으로 인간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사람은 믿음을 다른 방법으로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외부로부터 제공된다 하더라도 본성 안에는 믿음을 받을 어떤 힘도 없습니다. 믿음은 초자연적인 선물이며, 은혜의 선물입니다. 구원과 믿음은 은혜로 오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성은 믿음을 받기를 꺼림
사람은 본성적으로 믿음을 받기를 꺼려합니다. 믿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획득할 능력도 없고 받기도 꺼려합니다(요5:40 참고). 그분께로 나아오는 것이, 곧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습니다”(요1:11).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반대는 모든 사람이 중생할 때까지는 그 마음속에 있습니다.
3) 믿음에 대한 반대는 너무나 강력함
믿음에 대한 반대는 너무나 강력해서 자연의 힘으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기적도 그것을 극복하기에는 약했습니다. 이는 불신앙의 힘을 총동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증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 믿음에 반대되는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조건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교만
교만한 자는 그리스도의 조건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죄인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조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너무 엄격하고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조건이 힘들다고 설득합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넘어지고 미끄러지게 하는 걸리는 돌이며 바위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쉬운 조건들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조건들은 쉬운 것들입니다. 비록 사탄과 부패한 마음은 그 반대로 주장할지라도 말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조건이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의 잘못됨
당신이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면, 사탄은 당신의 편안함과 기쁨과 소득, 친구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조건이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스도와 가까워져서, 이 모든 것을 버릴 때, 당신은 버려야 할 것을 버림으로써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버려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이익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것들을 버리지 않는다면, 당신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①영적인 게으름 때문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무시하며, 영원한 자산에 대하여 수고를 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당신이 진정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라면, 이런 영적인 게으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편안함은 결국 끝이 없는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비참함을 낳는 편안함이며, 그러한 편안함 가운데 있는 자들은 화를 당할 것입니다.
②사악한 즐거움에 빠졌기에 그러합니다
자신이 가장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춤추며 웃고, 노래하는 데 마음이 빼앗겨 버린 사람을 보았습니까? 그런 기쁨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죄악된 즐거움을 중단하지 않는 자들이 느끼는 기쁨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기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사악하고 불법적이며, 무절제한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가까이 하려고 사악한 즐거움을 중단하지 않는 한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처럼 당신이 부자의 처지가 될 것입니다.
③불법적인 소득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득을 위하여 쓸 계획을 가지고 불경건한 방법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소득을 축적하는 것은, 곧 슬픔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또한 큰 고통을 쌓는 것이며 괴로움을 쌓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인 소득으로 보충하심
그리스도의 조건과 가까이함으로써 정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은 얻기 위해서 잃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육체적인 편함 대신, 죄와 사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된 안식을 주십니다. 양심을 괴롭게 하는 문제로부터의 안식을 주십니다. 이 세상의 원통함으로부터 안식을 주십니다. 또한 죄악된 즐거움을 대신해서 성령님의 위로를 주십니다.
4.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에 안주함
자신이 가진 어떤 것 위에 서 있는 동안은 결코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육체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즐거워하지도, 그분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1)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어리석은 의지
자신을 보면서 어느 정도의 의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의로움이란 단 하나의 죄도 상쇄할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의로움으로도 그 하나의 죄 때문에 주님을 만족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의로움은 단 하나의 죄만 등장해도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백만 개의 죄를 가진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처럼 사라져 버릴 그림자와 같은 자신의 의로움에 기대고 있는 죄인은 얼마나 불쌍한 존재들입니까?
2)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음
우리가 의지하는 의로움은 참된 의로움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의로움에 의지하는 사람은 정당한 방법이나 순수한 목적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자는 복음적인 의로움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이며, 자신의 영혼과 당신의 구원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불의한 것을 의지함
조금 더 살펴보면, 사람이 의지하는 의로움이 불의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기에 의로운 것은 사실 인간이 의지하는 불의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의로움 모두는 불의한 것입니다.
4) 모든 의를 대적함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자들은 모든 의로움에 대적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의로움, 그리스도와 율법과 복음의 적대자입니다.
복음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육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확신하는 자는 자신의 업적과 의로운 행위와 율법의 준수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복음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믿음의 의로움이 아니고서는 어떤 죄인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으로 그분께서 인정하시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의 의로움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영혼에 대한 안부가 걱정된다면, 스스로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것에서 놀라서 뛰쳐나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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