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성도의 견인과 보증
성경적 사상에 기초한 견인과 보증의 필요성은 오늘날 감정을 강조함에 따라 혼합되어 버렸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우리가 생각하고 알고 믿는 것을 앞서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은사주의 운동이 교회를 뒤덮었다. 은사주의 운동은 빈 공간에 감정과 흥분을 채워 넣음으로써 참된 이해의 결핍을 낳고 말았다. 그러하기에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거룩한 삶과 결합된 견인과 보증에 대한 풍성한 칼빈주의적 사상이다.
1. 성도의 견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누가 과연 성도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나 전도 집회에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성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은 성도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자신의 아들과의 교통으로 부르시고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 사람들’(도르트신조),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으로 받아들이시고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부르시며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의 구원적 연합의 능력에 참여한 자들이 계속해서 그 유익과 열매들을 누리는 연합에 머물러 있음을 교훈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참된 믿음과 그들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역사 안에서 견인된다. 따라서 당신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거듭나고 의롭다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고 거룩해졌다면, 당신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 당신의 견인은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열매이기에 하나님이 당신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이다. 당신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했다면, 죄가 당신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은혜의 상태에서 완전히 궁극적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견인의 의미는, 택자들이 그리스도와 강력한 연합을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오직 그분만이 그들의 삶이며, 능력이 되신다. 나아가 성령의 내주하시는 장소로서 택자들의 마음을 선택하신 이후에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 그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까지 계속 그들의 성화를 증진시켜 주신다.
신자들을 값 주고 사시고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눅22:32), 성령의 내주하시는 사역을 통하여(요14:16,요일2:27),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속성과 택자를 향한 그분의 영원한 은혜를 통하여(롬11:29), 하나님의 견인의 약속을 통하여(요10:27-30,딤후1:12), 그분의 언약에 나타난 사랑을 통하여(롬8:29-39),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존을 통하여(고전10:13) 그들이 보존된다.
기억하라. 성도의 견인은 택자들에게 주어진 깨뜨릴 수 없는 황금사슬과 같다. 선택은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을 요구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보존과 신자의 견인을 요구한다(요일3:9).
그러나 또한 견인은 하나님의 사역일 뿐 아니라 신자의 사역이기도 하다. 그들을 지키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확신함으로써 성도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며 분투할 수 있다. 견인은 전 생애적 활동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일(롬10:9)과 은혜의 열매를 맺는 일(요15:6),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고 견디는 일(마10:22,히10:28,29)을 포함한다.
참된 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인내하며(요15장), ‘구원에 속한 것’(히6:9) 안에서 견딘다. 신자들은 성화와 거룩을 위하여 능동적으로 죄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인내하고 견인될 것이기 때문에(빌2:12) 하나님은 신자들을 ‘책임 없는 로봇이 아니라 도덕적 존재’로 다루신다.
견인은 기계적인, 또는 자동적인 순종이 아니다. 견인에서는 ‘경건의 거룩한 연습’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일, 연구와 묵상과 기도, 성경을 실천하는 일 등의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는 것은 죄를 떠나고 거룩을 증진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성례에 부지런히 참여하는 일도 본질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의 보존과 인간의 인내는 상호적이다. 성도는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보존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내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의심과 두려움과 고통을 만져 주시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는’ 은혜와 힘을 공급해 주신다. 신자들에게 인내할 것을 명령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견인은 보존의 개념을 뛰어넘어 신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교리라고 할 수 있다.
2. 믿음의 보증
믿음의 보증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며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받을 것에 대한 신자의 확신이다. 참된 보증을 소유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보증은 죄책으로부터의 자유와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포함한다.
보증은 역동적이다. 보증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다양하며, 힘과 열매를 맺으며 성장하는 능력이 있다. 제임스 알렉산더, “보증은 과실이 많이 달린 나무나 순풍에 돛 단듯이 항해하는 선박”처럼 충만한 생각을 동반한다. 보증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어린아이와 같은 순종,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려는 간절한 소망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확신에 찬 신자들은 천국을 그들의 본향으로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광으로 진입하기를 사모한다(딤후4:6-8).
3. 보증과 견인
보증의 열매는 견인을 증진시킨다. 도르트 신조, “참 신자들은 자기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택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 보존과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는 견인에 대해서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도 있고, 또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항상 교회의 참되고도 살아 있는 지체로 남아 있게 되고 죄의 용서를 체험하게 되며, 마침내 영생에 이를 것을 확신하게 된다.”
토마스 굿윈, “보증은 하나님을 위하여 몇 배나 더 열심히 힘을 내게 만들어 준다. 보증은 우리의 마음을 감사로 넘치게 하고 더 많은 열매를 기쁘게 맺도록 순종적으로 가꾸어 준다. 또한 보증은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새로운 경건한 근심을 일으키며, 새로운 동기를 창조하고 모든 은혜를 한데 모아 새 봄을 창조하는 새롭고도 고상한 감정과 기질을 더해 주며, 기도 가운데 우리 마음을 더 크게 확장하고 격려한다.” 나아가 보증은 성화를 통하여 견인을 돕는다.
4. 견인 교리와 관계된 문제점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복음에 대한 모든 기쁜 반응이 구원적 반응은 아니라고 경고하셨다. 돌짝 밭의 마음을 가진 청중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난이 오면 곧 시들고 만다. 또한 성경은 사울과 아히도벨과 가룟 유다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처럼 한때 주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실족하고 마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없었던 것이다(요일2:19). 그들에게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대한 다양한 강도의 확신이나 느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구원적 믿음은 결핍되어 있었다. 절대 선택받은 신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이것이 히6:4-6에 대한 전통적이고도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 누구도 성도의 견인 교리에 편승해서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룩이 없이는 그 누구도 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히12:14).
여기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계속 죄 가운데 거하면서도 입심 좋게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지절거린다. 그러나 견인의 열매들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보증을 주장할 수 없다. 바울과 같이 우리는 믿음이 파선되는 위험을 조심해야 한다(고전9:26,27, 10:12)). 존 대그, “인간이 한번 회심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과정이 어떠하든지 무조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지독하게 비열하고도 치명적인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개념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와 믿음과 거룩 등과 같이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을 제외한 채 죄인의 칭의가 하나님의 구원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불완전한 개념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견해는 ‘믿음이 공허한 상태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며 신자에게는 삶의 법칙으로서의 율법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율법폐기론의 본질이다. 교리적인 율법폐기론도 비성경적이지만, 실제적인 율법폐기론 또는 은혜를 주장하면서도 무법하게 사는 것은 더욱 나쁜 것이다(롬6:1,2). 실제적인 율법폐기론자들은 스스로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악한 열매들로 그들의 그릇됨을 증명한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벨직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표지를 이렇게 말한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고도 참된 구주로 영접하는 것. 2 죄를 피하는 것.
3 의를 따르는 것. 4 참되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5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
6 육체와 육체의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 7 연약을 이겨내는 것.
8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죽음과 고난과 순종 안에서 피난처를 구하는 것.
“주님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려 하면서 보증과 확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경주의 중간 지점에서 달리기를 그만 두면서도 심판에게 그들이 여전히 경주 결과에 대한 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과 같다. 우리의 믿음의 보증은 우리가 상을 받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면서 경주를 계속할 때 비로소 강해지는 것이다.” 커트 다니엘, “개혁주의 견인 교리는 거듭난 영혼이 인생의 시험을 통과하며 인내하고 믿고 회개하게 되는 교리이다. 그는 미끄러지고 타락하며, 때로는 나쁜 습관을 키우고, 의심과 싸우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처음 시작했던 것처럼 -- 계속해서 인내하게 된다. 모든 신자들이 미끄러지고 죄에 빠질 수도 있지만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가 처음 회심할 때처럼 지금도 믿음과 회개를 주시며, 천국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믿음과 회개를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견인과 보증은 은혜의 두 부분과 같다. 우리는 확신 안에서 성장하지 않고서는 은혜 안에서 보존될 수 없으며, 견인 없이는 믿음의 보증 안에서 자랄 수도 없다.
신자의 견인이 철저하게 구원 사역을 수행하시는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보석이며, 절대로 잃어버린 바 될 수 없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3:17). 토마스 브룩스, “세상의 보석들은 때때로 그 주인과 분리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석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 세상의 보석들은 종종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석들은 -- 절대로 그렇지 않다!”
브루스 디마레스트, “참된 신자들의 소망은 하나님을 붙잡는 그들의 연약한 힘에 있지 않고 그들을 붙잡으시는 하나님의 강력하심에 있다.”
6.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는 아주 넓지만 강을 건너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다리와 같다. 이처럼 알미니안주의는 여행하기에는 너무나 넓고 쉽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가슴이라는 항구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결국 알미니안주의는 그것이 약속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못살게 군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약화시키고 인간을 높이며, 자유주의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줄 뿐이다.
반면에 칼빈주의의 길은 좁아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칼빈주의는 그렇다. 왜냐하면 칼빈주의는 자기 부인을 요구하고 인간이 어중간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칼빈주의는 신자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 여호와의 품 안으로 인도한다. 지성으로 믿고 영혼으로 경험된 칼빈주의의 진리들은 죄인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신학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죄인을 겸손하게 하며, 성도들을 격려한다. 칼빈주의는,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시면 그 누구도 자신을 대적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롬8:31). 라일은 “그리스도의 군병은 전쟁에서 죽거나 실종되는 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담대하고도 활력 넘치게 선포되어야 할 성경적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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