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2권, 17장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 (2017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6. 28. 14:47

17장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5:15)

 

- 우리는 육신적으로 아담에게서 나왔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영적인 것이다. 구약과 신약 사이의 명백한 대조를 참고함으로써 이 점을 예증할 수 있다. 구약의 경우는 모든 것이 물질적이다. 축복도 그가 소유한 소와 양과 낙타의 수로 나타난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와 정반대다. 구약에서는 진리가 외형적이고 물량적이고 물질적인 방법으로 선양되나 신약에서는 영적으로 선양된다. 구약에서는 육신적인 혈통으로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영적으로 다시 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할 수 없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 “그러나 그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범죄와 은사란 낱말 자체가 대조를 이룬다.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죽었다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우리가 모두 죄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죄와 죄책은 언제나 사망을 가져온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우리 모두 죄를 지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요 대표인 아담과 언약을 맺었다. 우리는 또한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 아담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응당 받아야 할 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이다.

 

은사”(값없는 선물), 여기서 바울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대조를 진술한다. 그는 은사’(값없는 선물)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라는 표현으로 전부를 말하고 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사람으로서의 아담과 우리의 연관은 필연적으로 우리 모두가 죽는 결과를 가져오고 신인으로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관은 더욱더약속된 결과에 틀림없이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5장 맨 처음부터 구원의 절대적 확신을 계속 논증해 보면서 여기 더욱더란 말로 드러낸다. 아담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의 경우에 있어서조차도 그의 한 행동의 결과는 확실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이므로 그의 행동의 결과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확실하다. 그것은 기어코 결과를 가져온다. 그 모든 것의 확실성은 더욱더란 말로써 드러난다.

 

둘째, ‘더욱더란 말로 사망과 생명 사이의 대조를 두고 있다. 사망이 확실하다면 생명은 얼마나 더 확실한 것인가? 우리는 더 이상 사망 아래 있지 않다.

 

셋째, 만일 하나님의 공의와 의가 심판을 가져왔다면 그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긍휼은 더욱더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다. 만일 하나님의 본질인 영원한 공의가 인간을 심판과 사망으로 인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실로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주리라 하셨던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공의와 의, 그리고 사랑은 어떤 분리도 모순도 없다.

 

넷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우리를 위해서 해 놓으신 일은 단지 우리를 아담 안에 있었던 곳으로 회복시켜 주는 것만이 아니다. 그 이상을 주셨다.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해 준다. 더욱을 낸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전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을 향해 축복하고 은혜롭도록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속성이다. “우리가 연약하였을 때” “우리가 경건치 않았을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원수였을 때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를 위해 죽게까지 하셨다. 바로 그것이 은혜이다. 은혜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이 은혜는 선물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그것은 더 이상 이 필요 없는 값없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값없는 선물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이다. 바울은 은혜를 넘치는 은혜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반복하고 있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넘쳤느니라(15)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17)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20).

 

사망은 끝이고 종말이고 열매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더욱생명으로 인도하고 발전하고 번성하는 바로 생명의 본질인 것이다. 사도는 풍성함이 넘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은혜는 항상 흘러넘친다. 은혜를 잴만한 기구도 없고 한계도 없고 한정지을 수도 없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

그의 은혜의 넘치는 부요”(2: )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3:8)

 

더욱더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있었던 처지로 되돌려 놓는 것보다 훨씬 그 이상을 함축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고 무죄 상태에 있었다. 무죄란 무엇이 빠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의 신분보다 더 나은 신분을 가지는 입장으로 옮겨진 것이다. 우리는 아담이 결하고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있기 때문이다. 아담은 그리스도 안에 없었다. 하나님의 생명 밖에 있었던 것이다. 성자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본성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연합되었고 하나님의 권속 중의 일원이다. 아담은 죄를 짓지도 않았고 죄가 없는 완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가족 중의 일원은 아니다. 아담은 무죄하고 완전했으나 그는 시련기에 처했고 타락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시련의 상태에 있지 않으며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없다. 우리는 그것을 초월해 있다.

 

우리의 영화는 보장 받은 것이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그 영광의 소망을 확신한다. 우리는 거기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느니라(10:28-29).

성도의 최종에까지 이르는 견인은 우리를 향해 넘치는 하나님의 더욱더 많은 은혜로 인해서 보장되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8:38-39). 우리는 단지 아담의 본래 상태로 회복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고양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것을 보장하셨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여일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백성 중에서 한 사람도 낙오되거나 잃어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그는 아버지의 독생자이다. 낳은 분이지 창조된 분이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는 피조물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다. 그는 태초부터 계셨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분에게 연합되어 있다.

우리가 아담에게 연합되어 있을 때는 불순종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의 순종을 통해서 우리에게 왔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축복은 없다. 그를 떠나서는 어떤 구원도 없다.

십자가의 죽음은 연극의 한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있어야 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오직 한 길이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것을 요구한다. 그의 피가 흘려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가 다시 사시지 못하셨으면 거기엔 넘치는 은혜도 없었고, 우리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이란 말도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은 한 사람 -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시고 한 인격 속에 양성을 가지신 신인 그리스도 예수 - 을 통하여 온 것이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넘치는 은혜더욱더를 체험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살 때만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로 향하여 올 것이다. ‘은혜의 풍성을 즐거워하지 않는 삶은 일종의 죄악이다. 여러분이 왕자의 삶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데 거지로서 산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우리들은 결코 빈궁하게 살아나가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하늘나라 왕의 자녀들이다. 여러분의 머리를 들라. 그리고 여러분의 생애와 체험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을 보이면서 세상을 살아나가라. 그럼으로써 그의 은혜를 선포하고 그를 선양하라.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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