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30 주일설교
본문: 막 7:18-23
제목: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로 왔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예수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곧 부정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했다.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였다.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고서 먹었다.
위생적이고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지요.
문제는 그것으로 자신들이 속까지 깨끗해졌다고 여겼다는 데 있다.
부정한 손과 발, 부정한 잔과 그릇을 씻으면 속까지 깨끗해졌다고 믿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었으니까 속까지 더러워졌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의 허구성과 위선을 보셨다.
장로들의 전통이란 사람들이 만든 교훈과 가르침이다.
장로는 나이든 어르신이고 권위가 있었기에 가르쳐서 전통을 만들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계명이란 사람이 만든 철학과 도덕이지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이 엄연히 있는데도, 그것들을 왜곡하여 잘못 가르쳤다.
교회와 종교가 타락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은 전해지질 않고
인간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가르쳤다.
목사의 설교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계명들과 철학들이 섞이는지 모른다.
그 인간의 지혜들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살게 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되었고,
성경은 오류가 없고 유일한 권위의 책이고,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기준이고 목적이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고,
중세 카톨릭은 교황과 사제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
오늘날도 그들을 본받아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만든 전통으로 계명을 버리고 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달라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했다.
우리가 꼭 닮고 본받아야 할 자세이고 모범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 말씀이 나를 정결케 해주고 살게 해주고 축복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성경은 읽고 경건서적과 함께 연구해야 할 책이다.
잘못된 해석들, 소위 장로들의 전통이 너무 많고, 우리를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적으로 좋은 경건서적들이 많이 있다.
검증받은 경건서적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의 전통을 지키는 책들이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우리 ‘청교도 아카데미’에서는 ‘청교도 독서목록’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책들만을 엄선하여 만들었다.
성경이 어렵고 접하기 힘든 것은 좋은 참고서를 못 만났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진리의 보화를 캐내는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성경의 참 맛을 알게 된다.
내 머리 내 영적 수준을 점차 높여갈 필요가 있다.
우리 현생과 영생의 복을 좌우하는 것은 ‘성령의 서제(書齊)요 진리의 보고(寶庫)’인 성경이다.
카톨릭이 천년 동안 성경을 못 보게 하고 장로들의 전통으로 암흑시대를 만들었다.
종교개혁자들이 피와 땀으로 사도들의 전통으로 돌이켰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 교회와 교인들은 어느새 다시 사람의 전통인 장로들의 전통으로 돌아갔다.
정신 차리고 깨어나야 한다.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하신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불의에 빠지고 진리를 싫어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심판으로 미혹의 역사를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고 하셨다(살후2:11-12).
장로들의 전통인지 사도들의 전통인지 분별하여야 하고 속지 말아야 한다.
장로들의 전통을 조심해야 한다.
유명하다고, 크다고, 오래 됐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다 옳은 것이 아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려다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게 된다.
장로들의 전통으로,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가르치고 그것으로 예배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셨다.
진리와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 참된 예배만을 하나님은 받으신다.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신앙생활 하면,
그것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멀게 된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순전한 말씀의 전통이 있는데, 왜 장로들의 전통이 성경 위에 생겼느냐?
왜 교황과 신부들의 전통이 성경 위에 생겼느냐?
입술에만 하나님이 있고, 마음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 차 있는 다른 것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누리기 위해서이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차서 그러하다.
마음 속에는 불법과 위선이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사람을 더럽고 추하게 만든다.
손과 발을 씻는다고 잔과 주발을 깨끗이 한다고
사람의 속과 겉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속을 깨끗이 해야 겉도 깨끗해질 수 있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6)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불러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고 하셨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7:15-16)
그런데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주님께 다시 물었다.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막7:18-19)
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까요?
먼저는, 간절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다음은, 알려고 깨달으려고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육신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그리도 간절해 하면서도,
세상의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얻으려고 그리도 많이 생각하고 궁리하고 연구하면서도,
진정으로 우리를 살게 해 줄 말씀에 대해서는 간절함도 없고 연구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셨다.
썩어질 것을 거두기 전에 영생을 거두시기 바란다.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주님 말씀하신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면서도 더러운 모습으로 끝나고 마는지
그 답이 여기 나와 있다.
왜 세상이 인간 지혜로 만든 그 많은 교육과 그 많은 장로들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날로 악해질까의 답이 여기 나와 있다.
말로만 입으로만 깨끗하게 하고, 마음 속 시꺼먼 것은 안 보인다고 더욱더 더럽히기 때문이다.
좋은 가르침도 남을 가르치고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지,
내가 살려고 그것으로 내 인격과 그릇을 깨끗이 할려고 하지 않는다.
이조 5백년 동안 공자와 맹자왈 외웠지만, 그것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멸망했다.
우리를 더럽게 만드는 것, 곧 속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들 더럽게 하느니라“(막7:20-23)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참 많지요? 그러나 다는 아니다. 일부일 뿐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안에서 나오는 것들을 가리킨다.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고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범죄는 악한 생각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것이 행위로 나올 수도 있고 생각으로 그치기만 하는 것도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악한 생각은 생각 단계부터 잡지 못하면 행위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생각으로 잉태하면 출산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행위로 나오고 습관이 되면서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
많이 배웠다고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고 거룩한 직업에 속했다고 해서
이 악한 생각들은 사람 봐주질 않는다.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하면 더욱더 비참하고 더러울 뿐이다.
이 악한 생각들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과 관련되어 나오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도둑질 살인 간음은 계명 그대로이고, 음란과 음탕과 질투는 간음 계명의 파생물이다.
탐욕 악독 속임 비방 교만 우매함도 9,10계명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악한 생각들과 행위들은
탐욕과 교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1계명을 범함으로 나오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마음 속에 이러한 것들이 있어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죄를 이길 수 있다고 하였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다.
죄와 사탄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에 의해 머리통이 박살 났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와 의로 능히 이길 수 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하셨다.
악한 생각이 올 때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게 하신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와 은혜를 생각하며 물리쳐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우리는 받아야 한다.
혹 이기지 못한 죄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하셨기에 우리에게는 죄의 형벌은 없고 징계만 있다.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영원한 영광을 소망으로 가진 우리는
우리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 자신을 깨끗하기를 힘써야 한다.
주의 거룩함 같이 거룩하고 주의 완전함 같이 우리 또한 완전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자.
속을 깨끗하게 해야 겉도 깨끗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겉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면서 생사람을 잡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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