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6 주일설교
본문: 시 1:1-6
제목: 복 있는 사람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과 다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성경에서 악인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총칭이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는 것은 속에서 이루어지고, 행동에 옮겨지면 죄인들의 길에 서게 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온통 악일들의 꾀로 가득차서 살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게 된다.
생각에서, 행동으로, 자리로 순서를 밟는다.
꾀는 문제 해결하는 교묘한 방법이나 얕은 생각이다.
악인들의 꾀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악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구원 받기 전 애굽의 그것이다.
이 애굽의 사고방식을 씻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광야생활의 고난을 통해서 이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셨다.
악인들의 꾀는 우리 마음 속에서 머물고 있는 악한 생각들이다.
생각부터 잡지 못하면 그것이 잉태하여 죄를 출산한다.
그리고 그 죄가 문제와 위기를 불러오고 불행과 비극을 낳다가 사망과 멸망으로 끝이 난다.
뭐가 부족하고 힘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다.
멸망과 사망, 비극과 불행의 근본 원인이 죄인 것을 세상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해결책과 선한 정책들을 내봐도 세상은 날로 악해질 뿐이다.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재산과 권력을 쥐어도 그 인생은 날로 악해질 뿐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한다.
성령이 사람의 내면에서 역사하실 때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된다.
악인들의 꾀는 바로 육신의 생각이요 육신의 생각은 결국 사망을 낳는다.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을 가져다 준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5-7)
육신을 따른다는 것은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영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이 서로 싸우며 갈등한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6-17)
육신의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다.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이 악한 생각들이 불안, 염려 근심, 우울, 낙심, 절망들을 낳다가 사망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것이다.
영의 생각,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은 성경 말씀의 생각이요,
영의 생각과 말씀의 생각이 우리에게 생명의 활력을 주고, 평안과 안식을 준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다.
악인의 꾀, 곧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신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시는 일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을려면 이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을 수 있는 분을 영접해야 한다.
육신의 생각과 싸우는 우리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무기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 우리는 인간의 모든 이론은 물론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생각들을 무너뜨리고 사로잡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킬 수 있다(고후10:4-5).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우리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생명으로 왕 노릇 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다가는 결국 사망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악인들의 꾀, 육신의 생각들을 따를 때 죄인들의 길에 함께 서게 된다.
죄인들의 길에서 살다가 결국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까지 앉게 된다.
이 순서를 밟지 않을려면, 악인들의 꾀부터 무너뜨리고 사로 잡아서 요절을 내야 한다.
2.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여 형통한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복 있는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성경 66권이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성경을 즐거워한다.
성경이 즐거우니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기록되어 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주는 영의 생각은 바로 성경의 생각이다.
사망을 낳는 육신의 생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성경의 생각이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유일한 생명과 평안의 길이기에
광야생활 곧 교회생활을 통해 고난을 통해 말씀으로 사는 훈련과 연단을 하시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탐욕과 방탕으로 바벨탑만을 쌓다가 사망으로 가지만,
영의 생각, 성경의 생각은 하나님을 닮고 성화성숙에 힘쓰다가 영생과 영광을 낳는다.
육신의 생각은 탑을 쌓다가 탑돌이 하다가 끝이 난다.
영의 생각은 사람을 온전케 하며 능력을 갖추게 하여 천국을 살고 영원한 천국을 누리게 한다.
성경은 영의 생각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우리를 온전케 한다.
성경은 영의 생각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져 오류가 없고 전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1400년 동안, 40여 저자에 씌여졌지만, 구속사라는 통일성이 있고 방향과 목적이 하나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데, 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면서, 말씀을 들음으로 자란다.
하나님의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와 재물의 떡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은 성경의 말씀이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실을 맛보아 알아야 한다.
왜,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다고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탐욕을 향하지 말게 하시고 말씀을 향하게 해달라고 하는지 알아야 한다.
왜, 땅에다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다 쌓으라고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말씀을
체험을 통해 깨닫고 알아야 한다.
죽음으로 인생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삶이 이어진다.
육체를 위하여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산 자들은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고,
성령을 위하여 영의 생각을 따라 산 자들은 영원한 복락이 기다리고 있다.
이 땅에서도 천국 같은 인생을 사느냐 지옥 같은 인생을 사느냐도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말씀이 그렇게 소중한 것임을, 우리 인생과 운명을 좌우하는 것임을, 알자.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청종)
좋은 경건서적들과 함께 성경을 읽어야 성경의 맛을 알 수 있다.
성경이 무거워서 못가지고 다닌다면 주보의 말씀이라도 읽고 묵상하기 바란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시는지 보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3)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고 싶지 않은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항상 수분을 머금을 것이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와 같이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다 형통케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지켜 행할 때 길을 평탄게 하고 형통케 하신다는 것은
다윗의 입을 통해서도, 여호수아에게 하시는 말씀에서도
동일하게 약속하고 있다.
우리 주님도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하셨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며 바람이 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인생의 집을 지은 복 있는 사람이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지은 집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요 심하게 무너지고 마는 집이다.
성경을 읽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가 사사시대로 접어들고 만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고 만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과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고 하셨다.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 생각의 결과인 것을 알자.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는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을 바꾸는 데 있다.
오직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길을 가자.
그 길이 형통의 길이고, 복 있는 사람이 가는 길임을 명심하자.
청교도들은 성경이 ‘성령의 서재요 진리의 보고’라고 고백했다.
3.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4-6)
시편 1편은, 앞 1-3절은, 복 있는 의인들의 길을 말씀하고,
뒤 절반 4-6절은, 악인들의 망하는 길을 말씀하여 대조하고 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분명히 보고 복 있는 의인의 길을 선택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복 있는 사람과 같이 형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악인들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신다.
바람에 날라가는 겨와 같은 운명과 팔자가 악인들의 것이다.
죄인들의 길에 서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서 호들갑을 떨지만,
그들은 이내 풀이 베이듯이 베이고 등불이 꺼지듯이 꺼지면서 바람에 나는 겨 신세가 되고 만다.
악인들은 심판을 우습게 알지만 실제 당해보면 그것이 견딜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서 불로써 소금 치둣함을 받는다고 하셨다.
죄인들은 의인들이 모여 사는 천국의 모임에 들어올 수 없다.
악인들의 길은 망하고 영원히 형벌을 받는 길이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이다.
복 있는 사람의 길이고,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는 길이다.
그 길은 오직 성경을 즐거워하고 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하나님은 성경인 언약궤를 성막 안 지성소에 두게 하셨고, (우리 마음 중심 깊은 곳에)
그 언약궤 위 덮게를 속죄소로 하여 은혜의 보좌로 삼으시고 대제사장을 만나 주셨다.
언약궤인 성경을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요단 강을 밟을 때 가나안 길이 열리게 하셨다.
우리도 언약궤인 성경을 항상 어깨에 매고 요단을 밟으므로 가나안을 여는 우리가 되자.
오직 성경을 즐거워하고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자.
자기 꾀를 따라 사는 악인의 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망하는 길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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