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9/3 주일설교, 하나님을 갈망함, 시 42:1-5

강대식 2017. 9. 4. 19:26

2017-09-03 주일설교

본문: 42:1-5

제목: 하나님을 갈망함

 

1.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때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42:1-2)

 

우리가 무엇에 갈급해 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시편 기자는 지금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하고 있다.

그 갈급함의 정도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다고 한다.

 

그의 영혼은 또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다.

내가 어느때 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하고 있다.

지금 그는 성전에 갈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전에 가서 예배 드리는 것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을 만나고 뵈옵는 것이 바로 예배이고 제사이다.

이런 믿음과 의식이 있다면, 주일 예배를 이런 저런 사사로운 이유로 빼먹을 수 없을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 제 4계명이다.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1,2,3 계명을 지키는 것의 표현이 4계명이라 할 수 있다.

 

4계명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것은

내가 1,2,3 계명을 지키고 있지 않고 있다는 표현인 것이고

거룩하게 지킬 때, 우리는 1,2,3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는 표현이 될 것이다.

 

주일성수는 영성의 성장과 쇠퇴를 좌우한다고 청교도들은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주일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 그 영성이 성장할 수도 있고 쇠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 베일리는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모든 영성의 어머니요 교회 안에서의 선한 훈련이라고 했다.

 

주일 성수를 잘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할 수 없을 것이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없기에 주일날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일날 보좌에 나아감으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는다.

주일 예배를 목숨처럼 지키고 무엇에도 양보할 수 없는 철칙으로 생애를 사시기 바란다.

한 주일이라도 의의 태양이신 주님을 뵙지 못하고 그 빛과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나와 내 가정과 내 기업은 어둠의 권세에 밀리고 시달리게 될 것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과 갈망이 있었다는 것의 같은 표현이다.

우리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믿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말씀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하나님 사랑은 말씀 사랑으로 나타나고, 말씀 사랑은 하나님 사랑으로 나타난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마음에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멀리하고 예배를 우습게 알고 말씀이 보배인 줄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제대로 섬기고 예배할 수도 없다.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과 갈망은 말씀에 근거해야 하고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미신과 불법과 타락은 다 말씀을 혼잡하고 합리화하고 왜곡하는 데서 왔다.

종교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이었고, ‘오직 성경이어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성경을 멀리하면서, 하나님을 미신 믿듯이 복주머니 문제해결사로 전락시키고 있다.

영의 생각 곧 성경의 생각이 아니면, 육신의 생각으로 살게 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굴복할 수도 없다.

 

우리의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구원의 과정이다.

우리를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은 떡으로만 살지 말고 말씀의 생각으로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성품과 인격이 바뀌고 행실과 갈망도 바뀌고, 그것이 운명과 환경도 바꾼다.

 

육신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갈급해 하는 것도 갈망하는 것도 바뀔 수 있다.

육신의 생각과 갈망으로 땅에다 아무리 보물을 쌓아봐야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질 당할 뿐이다.

영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면, 그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고,

주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경험하게 된다.

 

염려 덩어리이고, 세상과 세상의 것을 갈급해 하고 갈망하는 육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5:24)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해 하는 것이다.

내 영혼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 얼굴 뵙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2. 우리는 낙심하고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 하는가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까,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고난과 슬픔 가운데 있을 때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존재를 부인한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냈고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는데,

이제는 그 일을 기억하니까 내 마음이 상한다고 하였다.

 

지금은 성전에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비방한다.

성일을 지키며 기쁨과 감사의 시절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주야로 흘러 음식이 되고, 마음이 상한다.

그가 얼마나 성저노가 예배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영혼은 변함없는 고난과 슬픔에 낙심하고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실 때 우리가 겪는 고통과 갈등이다.

믿음이 없다면, 포기하고 살 길을 찾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니고 도피일 뿐이고 더 큰 문제를 낳을 뿐이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45:7)

 

우리가 처한 모든 환경들은 하나님 손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로 짓고 창조하시는 것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어설픈 지혜로 판단하고 감정적으로 대적할 일이 못 된다.

인도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믿음과 인내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고,

환난에서 구원하여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신뢰해야 한다.

 

욥은 십 남매와 모든 재산을 하루 아침에 다 잃고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니라”(1:20-22)

 

성경의 모든 기록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15:4)

욥 같은 믿음의 수준에 쉽게 이를 수 없지만,

교훈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갖는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욥은 그 큰 불행과 비극을 겪고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우리는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고백하였다.

 

그의 아내는 나중에 아직도 순전을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욥은 주신 분도 여호와이셨고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니 그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라고 고백한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고 기록한다.

 

놀라운 믿음의 경지이고, 하나님은 우리도 욥을 본받아 이 수준에 오르기를 바라신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으며 피할 길도 열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내가 믿는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환난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

 

고난을 주시는 목적을 알면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도 있다.

고난은 인내를 이루기 위함이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기 위함이다.

연단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성품이 말씀의 성품으로 이루어지면

우리에게 약속의 소망으로 주신 것들을 이루고 누리게 해주신다.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6:11-12)

 

하나님의 약속으로 소망을 주신 것들에 대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게을러지지 않아야 한다.

끝까지 풍성하게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끝까지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

그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있다. 성경이 기록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들을 본받는 자 되기를 원하신다.

 

고난으로 인하여 낙심이 오고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올 때,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고백하며 물리쳐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말이다.

 

3.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도 우리가 소망을 두어야 하지만,

하나님 자신에게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한다.

때가 되면 그분이 나타나 도우실 것이다.

우리는 찬송을 여전히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도우실려면 하나님의 때가 차야 한다.

우리의 때는 아무리 차봐야 소용이 없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욥을 갑절의 축복으로 도우셨다.

때가 차니까 요셉을 감옥에서 일약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우셨다.

기한이 이를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도 때가 차매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신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7:30)

역사가 일어나 도우시는 것은 때가 차서 이루어졌지만,

이 그림은 모세가 가시나무 떨기 같은 고난의 시절에도 불꽃으로 함께 하셨다는 인침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가시나무 떨기처럼 겸손할 때 하나님은 항상 불꽃으로 함께 하실 것의 약속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시나무 떨기에 지나지 않다.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공로가 있어서 어여쁜 구석이 있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셔서, 나를 사랑하셔서, 아들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구원은 사람의 뜻으로나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다.

우리가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구원 받았다.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자랑하고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우리에게는 없다.

 

재물도 권력도 사람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다.

세상은 그러한 보이는 것들에, 있다가 없어질 것들에, 소망을 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영원한 하나님께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그러면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37:7,9)

 

사도 바울도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거두게 된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한나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기도하였을 때 때가 되니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축복하셨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2:1)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한나와 같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날이 올 것을 믿으시라.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소망의 하나님은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소망이 넘칠 수 있다.

소망을, 정함이 없는 재물에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신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 하나님을, 사슴이 새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갈급해 하고, 그 하나님만을 갈망하자.

내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 할 때마다 이 소망과 갈망으로 물리치고 극복하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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