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로이드 존스, 산상 설교,(상권), 15장 세상의 빛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10. 25. 02:15

15 장   세상의 빛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4)

 

14절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 중에서도 그리스도인에 관한 가장 놀랍고 비상한 진술의 하나이다. 우리 주님은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 전혀 하찮은 이 사람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다. 이 진술은 우리로 하여금 머리를 들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범하고 영광스런 일인가를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하는 진술이다. 우리의 위치와 행동에 대한 매우 철저한 시금석됨은 물론이다. 너희는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을 의미한다.

 

- ‘너희는 부정적인 의미로 너희는 그리고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뜻은 세상은 암흑상태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은 세상의 계몽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을 한다. 계몽이란 말은 세상이 애용하는 어구의 하나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지식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15, 16세기의 르네상스 이후 그러하였다. 모든 사상가들은 이것을 역사상 하나의 위대한 전환점으로, 현대문명이 이 때에 시작되었다고 간주한다. 그때 지식과 학문의 부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헬라의 고전들이 재발견되었고, 과학적인 의미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의 전망과 생애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부흥은 가히 계몽이란 말을 들을만 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공격의 시작이었다. 권위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의 선언의 자리를 철학과 인간의 사상으로 대신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이 운동이 이란 말로 표현되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계몽으로 말했다. 그들은 말하기를 지식은 빛을 가져온다고 했다. 새 지식은 온 우주의 작용에 대하여 큰 광명을 던져왔으며 삶의 여러 국면에 전보다 큰 이해를 준 것이 사실이다. 지식과 문화의 결과로 사람들이 흔히 계몽운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괄목할 만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진술은 여전히 너희 너희만이 이 세상의 빛이다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여전히 이 세상은 큰 암흑 상태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20세기 우리의 지식은 순전히 생물학적이며 기계적 의미의 지식이었다. 우리의 삶을 삶다웁게 만들어 주는 삶의 참된 요인에 대한 지식은 조금도 증가하지 않았다. 오늘의 세계가 이와 같은 곤경에 처해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모든 위대한 새 지식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식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이것을 개인의 삶과 행동과 품행의 영역에서 생각해 보라. 큰 지식을 소유하고는 있으나 개인의 삶에서는 비극적인 실패자들이 많다. 대인관계에는 비극적인 와해와 붕괴가 있고, 집단과 집단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큰 산업경제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칠흑처럼 어두운 상태에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 이외에 아무도 도움이 되는 충고나 지식이나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하신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자랑스런 주장이요 긍지가 되고 있다. 현대 세계 최대의 사상가와 철학자들 마저도 20세기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 원인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더 많은 지식이라는 그들의 이론 때문이다. 사람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적용하지를 않는다. 그들은 사람의 진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문제거리의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신앙이 제공하는 빛을 떠나서는 이 세상에는 빛이 전혀 없다. 우리 주께서 2,000년 전에 하신 말씀은 그 당대에 대한 단순하고 놀라운 진리였을 뿐 아니라 그 이후 모든 시대에도 적중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주님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한 무리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놀랍고 감동적인 진술이다.

 

- ‘너희는 긍정적인 면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이 철학은 모르더라도 그리스도인 아닌 위인이나 전문가보다 삶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1:21) 하나님의 지혜는 매우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능과 관련해서 주께서 첫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둘째 너희는 그리고 너희만이 세상에 빛이다였다. 이 말씀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진술임을 항상 기억하자. 본문은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우리에 대해 사실이 되는가? 이것에 대한 가르침을 이해하는 최선의 길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도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인 까닭은 세상의 빛이신 그분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약속은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행하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는 것이다. 오직 그분만이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주시고 동시에 우리도 빛으로 만드신다. 우리는 빛의 전달자가 되었다. 즉 우리는 복음을 받는 사람들로서 빛과 지식과 교훈을 받았다. 빛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빛의 반사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속에 있는 빛은 그리스도이신 빛이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신 빛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길은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에서 말씀하신 성령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을 파악하는 길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령이 오시면 이런 결과가 될 것이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함께 너희 속에 거처를 정하겠다. 우리는 너희 속에 있겠고 너희는 우리 속에 있겠다이런 까닭에 그리스도인에 대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됨을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의 두 번째 결과이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는 말씀을 소금에 대한 말씀 직후에 하셨다. 이 진술의 순서에도 유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최초로 끼치는 영향은 일반적이고 다소 소극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빛으로서의 기능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만 소유하게 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말하기 앞서 먼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항상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순서를 거꾸로 하는 경향이 너무 많다. 사람들이 복음을 말로는 전파하되 그들의 삶과 행동으로 이 복음을 부정하는 것은 비극이다. ‘세상의 소금세상의 빛앞에 온다. 우리는 그 무언가를 행하기에 앞서 그 무언가가 되는것이다.

 

- 그리스도인은 그가 세상의 빛이 된 것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가?

빛이 하는 일은 어두움과 어두움에 속한 것들을 노출시키는 일이다. 빛이 비취면 모든 것들이 밝히 드러난다. 온 세상은 빛의 자녀들어두움의 자녀들로 구분되어 있다. 최악의 일들은 항상 어두움의 장막 속에서 일어난다. 자연인마저도 눈부신 빛 속에서는 그런 일들을 부끄러워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다른 삶의 유형을 보여주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표준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사고와 방식의 오류와 과오를 드러낸다. 참된 부흥은 어느 사회, 어느 지역에서나 그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다.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길이 결국에는 옳다는 것과 다른 길은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정직이 최선의 수단임을 발견했다. 이것이야 말로 위선이 진리에 바치는 일종의 공물이라 하겠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빛으로 가지는 영향력은 다른 것들이 어두움에 속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밖은 것은 그분은 절대 순결하고 거룩했고, 그분이 세상의 빛이었기 때문이다. 이 빛은 그들 속에 숨어 있던 어두움을 계시하고 드러내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으로서 이런 영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빛은 어두움의 숨은 일들을 드러낼 뿐 아니라 어두움의 원인도 설명한다. 현대의 세계 문제의 단 하나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해 나갔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그 해답은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빛이요, 그리스도인만이 이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만드신 것이므로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한, 참되게 살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본성과 존재 속에 일정한 규칙을 집어 넣으셨다. 사람은 이 규칙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잘못 되게끔 되어 있다. 오늘의 세계의 어려움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결론적으로 죄와 이기주의와 자아중심으로 낙착된다.

이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18세기 중엽에 계몽이 시작된 후 200년간 쌓인 온갖 지식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은 여전히 본성으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 사람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데도 악을 일삼는다. 그것은 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머리에 있지 않고 그의 본성에 있다. 사람을 교육하고 통솔하려고 애써도 사람의 본성이 악하고 타락해 있고 정욕의 노예인 한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복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직면하게 하므로 사람을 화나게 한다. 복음은 하늘의 빛으로 서 있다. 빛은 어두움에서 헤어나는 오직 하나뿐인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제공한다. 빛을 사랑하고 어두움을 미워하는 본성이 필요하다. 거듭남에 소망이 있다. 붙잡힐 필요가 있고, 하나님께 돌아갈 필요가 있다. 매우 단순한 이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 길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한분 인격을 아는 일이다. 그 분은 우리에게 새 삶과 새 성품을 주신다. 그 분은 우리를 새 의욕과 새 포부와 새 전망과 방향설정을 새로이 하는 새 사람으로 만드신다. 그분은 우리를 새 생명, 곧 어두움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하는 대신 빛을 사랑하고 어두움을 미워하는 새 생명을 주신다.

 

- 우리는 큰 암흑상태의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가 가르치는 복음을 떠나서는 그들은 이 세상 어디서든 빛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우리들이 그들에게 무언의 꾸지람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삶이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는가? 당신이 지니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만큼의 삶이 되고 있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이 신기하고 놀라운 뉴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하시려 세상에 임하셨다. 사람에게 새 성품과 새 생명을 주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만이 세상의 빛이다. 빛의 자녀로서 살며 빛의 자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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