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장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19-21)
-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명령을 하신 다음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할 이유를 말씀 하셨다. 여기서 복되신 주님의 놀라우신 겸양과 이해심의 실례를 보게 된다. 명령하실 자격이 있으신 분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우리의 연약함을 입으시고 우리를 도우러 오셨고, 우리가 명령을 수행해야 할 이유를 주셨다.
이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경고임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너무 교묘하고 세속은 침투성이 너무 강하므로 우리 모두는 그것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세속을 어떤 특별한 것, 우리가 범하지 않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항상 보는 경향이 있다. 세속적이란 삶에 대한 하나의 태도이다. 이것은 전반적인 하나의 관의 문제이며. 또 너무나 교묘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장 성스러운 것들 속에까지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거 때 정치인들은 모두 ‘땅에 보물을 쌓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시금석은,
후보를 선택할 때 한쪽 정견은 옳고 다른 편의 정견은 그르다고 믿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는 여러 모양으로 땅에 보물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의 동기를 살펴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보호하려 하거나 무언가를 가지려 열망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그 특정 정견에 관심을 가지고 주장하는 이유와 동기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우리의 관심과 흥미를 가지는 그 어떤 땅의 보물들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의 정도, 신랄함과 분노와 경멸이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보라. 그러면 우리의 감정이 한결 같이 땅에 보물을 쌓으려는 관심사로 촉발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이 어느 정도로 개입되어 있는가? 그러면 우리의 감정이 거의 한결같이 땅에 보물을 쌓으려는 관심사로 촉발됨을 발견할 것이다.
초연함과 객관성으로 관조하는가? 우리는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자세는 어떠한가? 이 관심사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이것에서 초연하여 이것을 우리 생존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잠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 하는가?이다.
- 첫 번째 논거,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너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의 상식적인 논거로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하는 이유는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보물은 덧없는 것이요, 지나가는 것이요, 하루살이 같은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 모든 것에는 부패의 요소가 있다. 주님은 좀과 동록의 관점에서 이것을 표현하셨다. 이런 것들은 결코 만족을 주는 일이 없다. 이것에는 항상 부족한 것이 있다. 행복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좀과 동록의 결과를 영적으로 보는 또 다른 방법은, 물질적인 것에만 부패의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로 항상 싫증을 내는 경향 역시 사실이다. 이것들은 잠시 즐거움은 줄 수 있으나 여러 모양으로 관심을 잃고, 항상 새로운 것들을 찾게 된다. 거기에는 좀과 동록의 요소가 있고, 이것들 속에는 불순한 것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감염되어 있다. 여러분이 온갖 방법을 다 해도 불결은 제거할 수 없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이것들이 멸하여 없어질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것은 무엇이나 죄의 결과로 ‘좀과 녹이 스는’과정의 지배를 받아 모두 사라져 가버린다. 사물이 아무리 놀랍고 아름답고 영광스럽다 해도 모두 썩어 없어진다.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이생에는 많은 도둑들이 있어 항상 위협하고 있다. 질병, 사업상의 손실, 전쟁, 죽음 등. 우리는 도적을 예방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나 변화와 부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하지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놀랍고 영광으로 충만하다.
베드로는 이것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4)고 하였다.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라고 했다. 하늘의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간직해 두시기 때문에 도적이 뚫고 들어와 도둑질할 수 없다. 영적 위안물들은 상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죄나 부패의 요소가 없다. 그 곳은 영생과 영원한 빛의 영역이다. 천국은 완전하다. 영과 혼의 보물들은 그 나라에 속하여 있다. 주님은 거기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상식에 대한 호소이고 논거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어째서 땅에 보물을 쌓는 것인가? 천국에는 순수함과 기쁨과 거룩과 영원한 축복이 있음을 알면서도 어째서 거기에 보물을 쌓지 않는 걸까?
- 두 번째 논거,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두 번째 논거는 땅에 보물을 쌓는 영적 위험에 기초하고 있다. 영적 의미에서 경고는, 이 세상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무시무시한 지배력과 세력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용어는 ‘마음’이다. 주님은 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섬기다’는 용어는 이것들이 우리에게 행사하는 무서운 지배력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신 용어이다. 이것에 주의하지 않는 한 우리를 지배하게 될 세속이라는 이 가공할 지배를 받고 있을 것이다.
세속성은 세력이 강력할 뿐만이 아니라 매우 교활하기도 하다. 세속성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활을 통제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번영할 때 그들에게 일어나는 그 교활한 변화를 보았는가? 이 지배력, 이 세력이 우리를 정복하여 우리는 그 노예가 되어 버린다. 이런 일은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이 비젼을 안고 대학을 간다. 대학에서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철학에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지적인 것일지는 몰라도 영과 혼에 사활적으로 중요한 그 무엇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옥이다. 그것이 목을 조일 것이다. 그 노예가 되어 버린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무서운 위험은 전 인격에 영향을 준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께서 처음 하신 말씀은 ‘마음’이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라고 하셨다. 이것들은 감정과 애착심과 우리의 모든 감수성을 지배하고 정복한다. 우리 성품의 모든 부분이 이것들에 온전히 지배를 받으므로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좋아하는 듯 가장하지만 사실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우리를 깊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세 번째 논거,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22-23) 이것들이 보다 간교하다. 이것들은 마음을 지배할 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지배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것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이 눈에 대한 묘사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서술한 것이다. 주님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방법은 ‘성’한 눈으로 신령한 사람의 눈이다. ‘나쁜 눈’은 편견과 정욕과 욕망의 영향을 받은 눈이다. 주님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음을 보여 주시고 나서 마음뿐 아니라 정신까지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들이 사람을 통제하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사상의 불일치는 전적으로 편견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 세상의 보물들은 감성은 물론 지성까지도 지배한다. 우리의 견해와 윤리관이 이것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것은 우리의 종교관 역시 이런 것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바울을 떠났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인 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둔하게 하고 맑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악한 행동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 근심, 생활에의 안주, 우리의 삶과 가정생활을 즐김이나 우리의 지위나 위안물들, 역시 폭식이나 폭음과 같이 위험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구하는 소위 지혜라는 것도 땅의 보물에 대한 염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이것들은 감성, 지성을 지배할 뿐 아니라 의지에도 영향을 준다.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섬긴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우리는 의지의 영역 곧 행동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의 행동은 생각의 결과이다. 세상 보물들은 세력이 너무 강하므로 사람의 전 인격을 지배한다. 세상 보물은 사람의 영과 혼과 전 존재에 영향을 준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 보물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위험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네 번째 논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 마지막 논거로 이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헌신을 요구한다. 반드시 물질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라 하셨다.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인 것이다. 이점에서 타협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인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왕하17:33)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 날에 ‘주여 주여 우리가 이러 저러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여러분은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이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재물을 섬기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큰 모욕은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최대의 모욕이다. 우리 모두 얼마나 쉽게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이 죄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설교자의 이야기이다 어떤 날 마음에 큰 기쁨을 안고 들어와 아내와 가족들에게 그들의 암소가 송아지 두 마리, 곧 붉은 놈과 흰 놈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한 농부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 송아지 중의 하나를 주께 바쳐야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어느 놈을 바치겠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대답하기를 지금 그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똑같이 취급하고 나중에 말 한대로 하자고 했다. 몇 달 뒤에 그 농부는 매우 비참하고 불행한 모습으로 아내에게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어느 것이 주님의 송아지인지 결정하지 않았음을 말했을 때 남편은 나는 항상 흰놈으로 정하고 있었다고 했다. 죽는 것은 언제나 주님의 송아지이다. 금전 사정이 어려워질 때 우리가 처음으로 절약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바치는 돈이다. 맨 처음으로 아끼는 것은 헌금인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맨 처음이다. 이것들에 대한 태도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결정한다. 각자 자신을 검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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