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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이드 존스, `하나님 나라`, 7장 세 사람

강대식 2019. 2. 12. 22:27

7.   세 사람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9:57-62)

 

주님은 여기서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행동하시는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을 끌기 위해 무엇이든 하며, 사람들이 와서 함께 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와서 함께 하기 쉽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정확히 반대로 하고 계시는 것 같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다.

 

주님은 이들이 말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아주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주님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이 잘못된 동기와 사상에 자극받고 고무되어 혼란 상태에 있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유일한 설명이다. 주님이 이 세 사람을 대하시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본질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누구이며,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지에 관한 매우 귀중한 가르침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부분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나의 원리로 제시하겠다. 주님이 이 사람에게 말씀하시면서 강조하시는 바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잘못된 열심을 가진 경우가 분명하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그는 자원한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열심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요청을 거절하신다.

 

우리는 바로 이런 사람이야말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며 탁월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느끼지 않는가? 주님은 마음의 은밀한 곳을 보실 수 있으며, 동기와 사상과 생각도 간파하실 수 있다. 주님은 그분이 다루는 대상을 정확히 아시며, 이 같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아신다. 어느 세대에나 있었고, 우리 세대에도 있는 매우 일반적인 유형이다. 그는 이적에 매료되었고,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그분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달리 권세 있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상한 가르침과 놀라운 능력과 모든 가능성을 겸비한 새로운 지도자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오늘날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오해이다. 그리스도는 구시대의 권력과 권위와 실패에 저항하는 대중운동의 지도자로, 뭔가 새롭고 신선한 지도자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운동이나 십자군이나 행진의 지도자 말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높은 이상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주님은 사실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잘못 알았다. 너는 내가 왜 왔는지 잘못 알고 있다. 너는 내 나라에 들어가기에 적합지 않다. 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운동은 추종자를 끌어 모으려 애쓰며, 그들에게 호소하며, 그들이 쉽게 따를 수 있게 한다. 그들은 군중을 원하고 지지자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는 다르다.”

 

그래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젊은이에게 충격을 주신다. 주님은 추종자들을 원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숫자에 신경 쓰지 않으신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고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백성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모습으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주의자일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의협심으로 가득할 수 있지만 이것도 가치가 없다. 열정으로 가득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이 열정을 식혀 버리실 것이다. 그분은 육에 속한 사람(옛 사람)이 그분의 나라를 상속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정확히 그 반대다. 육에 속한 사람은 먼저 변화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주님은 젊은이에게 말씀하신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인자다! 인자는 주님이 자신에 대해 가장 즐겨 사용하시는 칭호이다. 크고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분은 새로운 사람이며, 새로운 인간의 시작이며, 새로운 인류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고 있다. 그분은 그 사람,’ the Man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요 사람이시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라. 나는 인자다. 그러나 내게는 집도, 몸을 누일 곳도 없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건만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분은 영광의 주님이지만 그분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분은 역설이며 신비이다. 여러분이 그분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다른 선생들 가운데 두는 순간, 이미 그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분은 수수께끼이다! 하나님이다! 사람이다! 만물의 통치자며 주인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분이다! 여러분은 그분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이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주님은 자신이 모든 병을 다스리실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44).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나는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며, 아무 힘없이 실패한 모습으로 죽을 것이다. 너희가 이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느냐?”

 

바로 이것이 젊은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젊은이는 열정과 흥분에 젖어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 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며 이 놀라운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니다. 네가 잘못 알았다. 나는 가르치거나 군대를 모으거나 법을 만들어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는다. 나는 체포되고, 유죄판결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린 양으로 도살장에 끌려감으로써 사람들을 구할 것이다. 나는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찢음으로써, 무덤에서 부활함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내 나라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다. 내 나라는 분명한 실패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 실패 가운데서, 나는 원수를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다른 곳에서 주님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네가 나를 따르면, 내가 당하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갈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라고 조롱당할 것이다. 너는 종교적 콤플렉스를 가진 자로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죽은 그리스도를 믿어’ ‘아직도 피의 신학을 믿어?’ 하며 너는 경멸과 조롱을 받을 것이며, 수치와 박해를 당할 것이다. 이런 것을 감내할 준비가 됐느냐? 너와 이 사람들은 내 나라에서 최고의 자리를 얻을 줄로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너는 누가 가장 큰지 다투고 있지 않느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리라’(16:33). 그래도 준비가 됐느냐?”

 

이제 두 번째 사람을 살펴볼 차례이다. 주님은 그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셨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이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과 정반대이다. 첫 번째 사람의 문제는 경솔함과 흥분과 열성이었다. 두 번째 사람은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에게는 헌신이 없었다. 주님은 그에게 도전을 주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여기에 숨겨진 원리가 무엇인가?

 

주님은 이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일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계신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바로 이해하고 즉시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이 사람은 기독교의 메시지에서 진리를 볼 수 있지만, 그 진리 때문에 고민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와 같다. “주님, 저를 선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밀라노의 대 설교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부(情婦)와 살고 있는 지금을 버릴 수 없었다. 저는 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갖고 싶습니다. ‘나로 먼저 --- 하게 허락하옵소서’.

 

주님은 이 사람을 즉시 제지하시고서 그 역시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이것을 아주 충격적으로 표현하신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이 말씀의 첫 번째 핵심은, 복음 곧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새로운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나라에 들어오려면,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이것이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함을 깨달아야 한다.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네가 이 일을 하기 위해 하나남 나라의 시민이 될 필요는 없다. 집에서 늙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에게는 적합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다른 것은 전혀 모르며 다른 것은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이것은 세상이 하고 있는 일이다. 이것이 육에 속한 사람이며 그의 삶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과 이생만을 위해 살며, 다른 것은 전혀 모른다. 그는 죽어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서로를 장사 지내며, 서로를 칭찬한다. 이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으며, 모두가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주님은 사실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것이다. 사람이 늙은 부모를 보살피고 장사 지내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다! 이생은 영혼의 삶이다! 사람은 단지 먹고 살고 죽는 짐승이 아니다. 내 나라에 있는 자들은 살아 있으며, 영혼을 알고,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알며, 영혼과 하나님의 관계를 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생명이다! 영혼은 새 생명이 필요하다! 내가 온 것은 사람들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9:27)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정치나 도덕을 개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부도덕한 자들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생명 자체이신 분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분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그 나라에 속한 자들은 자신에게 불멸하는 영혼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자신은 잃어버린 자이며 오직 그분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이것이 가장 첫째이다.

 

둘째로, 여러분은 자신과 자신의 영혼,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관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믿겠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주님이 몸소 본을 보여주셨다. 주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중지시키려 했을 때, 주님은 이들을 꾸짖으셨다. “누가 형제인가? 누가 내 어머니인가? 나를 믿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며 나의 형제다”(12:48-50).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14:25). 부모나 아내나 남편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들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나 아내나 남편이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한다면 그리스도에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내 영혼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주님을 따를 것이다. 잃어버린 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 일인지 아셨는가? 여러분과 기독교는 어떤 관계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이다. 당장 피하라!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을 살펴볼 차례이다. 여기 자원하여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가서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대답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인 요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님은 무조건 내어맡김을 요구하신다. 여러분의 구원이 달린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주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그분께 내어맡길 것이다.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 이것은 관심과 충성심이 분산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네가 뒤를 돌아본다면 밭고랑을 똑바로 갈 수 없다. 밭고랑을 똑바로 갈려면 집중해야 한다. 네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너는 앞을 봐야 하며, 계속해서 앞을 봐야 한다. 너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뒤의 것은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그 나라의 축복과 기쁨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세상을 버려야 한다. 이런저런 것들과의 관계를 깨끗이 끊고 완전히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 여러분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4:4).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일2:15-16).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아니다. 빛과 어둠은 섞을 수 없다.

 

구약성경에는 세상을 사랑한 사람의 무서운 예가 나오고 있다. 바로 롯의 아내이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랬는가?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의 삶을 아주 좋아했다. 롯의 아내의 마음은 둘로 갈라졌다. 롯의 아내는 갈망하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벌을 받아 소금기둥이 되었다(19). 주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17:32).

 

여러분의 영혼이 잃어버린 바 된 이유가 그 영혼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 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이 이렇게 죽으면 지옥에 가서 비참하게 영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한 인간으로 사셨고 수치와 고통과 죽음과 십자가와 장사와 이 모든 것을 견디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을 세상으로부터 구속하시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행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갈망하는 눈으로 뒤돌아볼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무언가를 즐긴 후에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다.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온 세상 만물을 가져도 주님의 은혜 다 갚을 수 없다. 주님의 은혜에 비하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린다! 저의 악한 본성을 자극하는 신문의 추한 기사들과 삼류소설, 저를 끌어내리고 악한 생각과 상상을 하도록 유혹하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모든 것을 버린다. 저는 주님께 고백한다. “이 모습 이대로 주님을 따르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저를 값 주고 사셨으니 저는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영혼뿐 아니라 몸으로도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제 자신을 무조건 드립니다. 저의 가장 큰 바람은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며 사는 것입니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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