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4 주일설교
본문: 출 3:1-5
제목;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모세는 나이 80이 되었는데도 제 양 떼가 없이 장인의 양떼를 치고 있다.
아마도 야곱이었으면 자기의 수많은 양 떼를 치고 있었을 것이다.
모세는 제물을 모으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주시는 상만을 바라보았다.
믿음으로 모세는 이미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한 사람이었다.
애굽의 왕권도 포기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모세는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았고, 재물권도 포기한 사람이었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세인데도 하나님은 그 40세의 모세를 쓰시지 않으셨다.
광야 생활 처가살이 40년이 되었을 때에 80세에 비로소 하나님은 나타나셨다.
떨기나무 불꽃 안에서 나타나셨다.
왜 이 그림, 이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
모세가 40년 동안 떨기나무 같은 광야 인생을 살고 있을 때도
주님은 불꽃처럼 함께 하셨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고 놀라운 성취가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였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하셨다.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으로 살았음을 증언하고 있다.
다윗도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우리도 주의 목전에서 눈 앞에서 주님 앞에서 살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면 그분의 거룩함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1.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모세야 모세야 하신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하면 거룩함부터 기억해야 한다.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에서 가장 기본이고 으뜸되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시기에 차마 죄를 볼 수 없고 미워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
하나님의 성품(속성) 중 사랑이 으뜸 아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을 주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충족되지 않고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없다.
주님께서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에
비로소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성전 휘장이 둘로 찢어져 열리면서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주 예수의 공로로, 그 이름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제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어야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축복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개념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회개하면서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이다.
아들의 형상(성품과 삶)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분명 말씀하신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 무조건 사랑해 줄려고 부른 것이 아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축복도 행복도 형통도 없다.
달음질로도, 야망으로도 우리의 축복과 행복을 이룰 수 없다.
40년만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신 하나님은 다가오는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다.
모세를 처음 대면하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뵈올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인 것을 알고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한다.
신을 벗는 것은 자기의 재산권 생명권 주권을 다 내려놓는 것,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룻기에서 신을 벗음으로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권한을 넘기는 것이 확정되는 것을 본다.
구약에서 노예와 종은 주권이 없기에 신을 신지 못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우리는 신을 벗어야 한다.
율법을 손에 쥐고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열심은 있었으나,
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아서 였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고 자기 의를 세웠다는 것은 발에서 신을 벗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들은 신을 벗지 않고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다.
그 자기 의가 가나안 땅을 사사시대, 멸망의 땅으로 만들고, 중세 천년을 암흑시대로 만들었다.
2. 주 앞에 거룩할려면, 신을 벗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모세의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자기 신을 벗기 위한 훈련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인정을 받았다.
온유하다는 것은 자아가 죽어서 자기 의로 반응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욕심과 야망에 불타서 자기 의가 하늘을 찌르는 사람은 땅을 오래 차지할 수가 없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심리학 상담학은 자아를 살리고 강화하여 ‘긍정의 힘’으로 ‘잘되는 나’를 만드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가는 인간의 지혜 철학이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빠져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기업체가 되고 있다.
누가 누가 빨리 크나, 누가 누가 빨리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을 만드나 경쟁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대적하고 오직 자기 의로 산 사람들이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
자기 의는 바라새인의 의요 인간 사회의 모든 전쟁과 갈등과 반목의 근본 원인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인간 관계에 평화와 천국이 올 수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자기 의가 없어져야 피차 복종하지요.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것은 다 자기 의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자기 의는 떡으로만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의는 말씀으로 살려고 한다.
떡은 자기 의의 덩어리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의의 덩어리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살 때 축복하시고 자기 의로 떡으로 살 때 저주하신다.
세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뚤뚤 뭉쳐진 자기 의와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고난과 연단을 통해 이 옛 사람의 의를 내려놓게 하신다.
아브라함의 고난도, 요셉의 고난도, 다윗의 고난도, 모세의 고난도
다 자아와 자기 의를 내려놓고 말씀으로 사는 훈련이었다.
모세는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되었고, 요셉은 사브낫바네아(생명의 부양자)가 되었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다윗은 아비가일을 만난 후 자기 의를 내려놓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주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다윗은 고백한다.
‘내 마음이 탐욕에게 향하지 말고 주의 말씀에로 향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비결을 터득해야 한다.
떡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자기 의로 자기 왕국 건설과 바벨탑 건설에 몰두하다 멸망 길로 간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며 천국을 건설하다가 생명 길로 간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로 가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떡으로만 사는 것이고, 자기 의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도, 다윗도, 형통하는 길은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증언한다.
우리 주님도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떡으로만 살아서는 불행과 비극과 멸망에 이르고 만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주야로 묵상하여 말씀이 내 삶의 원칙이 되고 기준이 되고 소망이 되어야 한다.
3. 주 앞에 거룩할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고 역사하시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발에서 우리 신을 벗어야 한다.
그래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은
자기 의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와 뜻과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다.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도,
자기 의는 죽고 자아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와 뜻에 맡길 때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고난의 연단으로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가 되어 살 때,
주님은 불꽃 가운데 나타나시고 영광으로 축복하시고 사용하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다.(잠16:18)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잠22:4)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하신다.(잠15:33)
주 앞에 거룩하게 되는 것과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같은 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죽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의를 이길려고 하는 자기 의가 처리되어야 한다.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 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는 말씀의 뜻을 새겨야 한다.
요셉은 억울한 감옥살이 때문에 떡 관원에게 자기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자기는 옥에 갇힐 일은 하지 않았다고 자기 의를 주장한다.
‘만 2년 후에’! 성경은 이렇게 쓴다. 요셉의 자기 의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바로가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해석함으로 일약 애굽 제국의 총리로 세우셨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이 주시는 저주로 받아 들임으로
자기 의를 발동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성숙하여서 하나님은 선으로 갚아 주셨다.
그 시므이 원수는 솔로몬을 통하여 갚아 주셨다.
모세는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른 사람이었다.
자기 양 떼도 없는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였지만,
하나님은 호렙 산으로 인도하시고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다.
우리도 고난과 연단으로 자기 의가 처리된 떨기나무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고 겸손하고 온유한 그릇이 될 때,
주님은 불꽃 같은 능력으로 나타나셔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쓰실 것이다.
떡으로만 살지 말고, 자기 의로 살기를 그만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으로 사시기 바란다.
떨기나무가 때가 되면 하나님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그 작은 자가 천을 속히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하실 것이다.
세상은 떨기나무를 우습게 여기고 조롱하겠지만,
하나님은 귀한 나무로 여기시고 불꽃 같은 능력을 부어주시고 큰 역사를 이루게 하실 것이다.
늙었어도 여전히 결실하게 하시고 진액이 풍족하게 하시고 빛이 청청하게 하실 것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셔서,
내 잔이 넘치게 하실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게 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출애굽기 3장 첫 다섯 구절, 모세의 불꽃 말씀은,
우리를 향한 약속이시고, 그 성취를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 올 것이고, 우리를 기쁘고 즐거워하게 하실 것이다.
이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시고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실 것이다.
시온을 건설하시고 주의 영예를 예루살렘에 선포하게 하실 것이다.
홀로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 것이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7 주일설교, '사망에서 생명으로', 요 5:22-24 (0) | 2019.03.17 |
---|---|
3/3 주일설교, '혼잡한 말씀, 순전한 말씀', 고후 2:17 (0) | 2019.03.03 |
[스크랩] 2/17 주일설교,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고전 2:12-14 (0) | 2019.02.17 |
[스크랩] 2/10 주일설교,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9-21 (0) | 2019.02.10 |
[스크랩] 2/3 주일설교, "엘벧엘", 창35:1-7 (0) | 2019.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