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04-07 주일설교
본문: 골 2:6-8
제목: 주로 받았으니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는가?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2:6)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그 안에서 행해야 한다.
입술로는 그분을 존경하면서도 마음은 먼 사람들은 그 안에서 행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내 마음대로, 내 기분대로, 내 감정대로, 내가 모든 것의 결정권을 갖고 산다.
“주”는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요, 나의 주인이라는 호칭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라 부르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분이 나의 주인이요 나는 그분의 종인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것은 그분을 나의 하나님 나의 주인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그분의 종이지 더 이상 나는 주인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을 주로 받았으면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에 주인 노릇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주로 받았으면 내 운명, 내 인생이란 배의 선장도, 차의 운전수도,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Leadership(내가 나의 주됨)은 내려놓고
Lordship(주님이 나의 주 되심)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리더가 아니요 주님이 나의 로드요 나의 리더가 되시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풍미한 실존주의 철학은 “내 운명은 내가 형성한다”고 하였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한 것은 나의 실존으로 나의 본질도 내가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도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오직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하고 형성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인간은 그럴 능력이 없다. 이론상으로만! 미혹의 철학일 뿐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주인 노릇하던 나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고 고백해야 한다.
육체와 함께 나의 정욕과 탐심은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믿고 살아야 한다.
세상이 나에 대하여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만이 사시도록 살아야 한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나를 위해 흘린 그 피를 믿는다면,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날마다 나는 죽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바울도 베드로도 야고보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벧후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약1:1)
사도도 주인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요, 그의 종이 되었다는 뜻이다.
사도나 종은 심부름꾼이지 주인이 결코 아니다.
우리도 부르심과 택함을 받았으니 넓은 의미에서 사도요 종이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제는 더 이상 자기가 주인이 아니다.
내 맘대로 살고 내 맘대로 성질 내고 내 맘대로 결정하는 것은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다.
내 마음 속에서 내 삶에서 주인이 바뀌었는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고, 거듭나는 것이고, 새롭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주인 노릇한 것 하나님 노릇한 것 내려놓는 것이다.
새 주인을 모시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고,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1:8)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를 받은 사람은 자기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할 때, 하나님이 섭리 가운에 모든 것을 더해 주심을 믿는다.
먹고 마시는 것을 공급하시는 지상의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천상의 구원을 믿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돈을 믿을 뿐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참된 이스라엘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아들을 안음 같이 인도하시고,
만나와 생수를 공급하시고, 옷이 헤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신다.
내 직장, 내 사업, 내 소유도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수단이고 과정일 뿐이다.
이 지상의 삶은 천상의 삶을 위한 준비요 순례요 나그네 삶인 것을 알아야 한다.
부르시면 다 두고 가야 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행한 것에 따라 상을 받아야 한다.
아직도 내 소견에 옳은 대로 내가 왕이 되어 정욕과 탐심으로 산다면 회개해야 한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가 가나안 땅은 사사시대 암흑의 땅으로 변하였다.
우리 인생의 땅이 그런 흑암으로 덮이지 않게 해야 한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 그 마침은 결국 멸망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2.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으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그 안에서 행해야 한다.
그분에게 마음의 보좌를 내드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것이 그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행할려면,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그분 안에서 세움을 받아야 한다.
그 길과 방법이 바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것이다.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면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없다.
믿음에 굳게 설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교훈을 받아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교훈을 받아야 믿음에 굳게 서고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다.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을 수 있다.
교훈 받기를 싫어하니까, 그 안에 뿌리를 박지도 못하고 세움을 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감사함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으로 살면 사망이요,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생명과 평안이 온다.
육신의 생각은 내 생각이요, 사망은 온갖 불행이요 비극이요 멸망을 뜻한다.
영의 생각이 무엇인가? 말씀의 생각이요, 성경의 생각이다.
그분의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다.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3)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히8:10,10:16)
새 언약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분의 피로 인치신 것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옛 언약은 모세로 하여금 짐승의 피를 뿌려 세우게 하셨다.
새 언약을 주님의 피로 세우실 것을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날 후’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그날 후’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세우시고 인치신 새 언약은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하여
지켜 행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여)
가만 있으면 성령 혼자 이렇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받고 매일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그러할 때 성령이 하실 일을 성령이 하시는 것이다.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하여 지켜 행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며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성령이 육체를 제어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
육체의 열매보다 성령의 열매가 많아지는 것이 성화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진리의 보고요 성령의 서재’인 것을 믿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경은 진리가 보물로 쌓여 있는 보물 창고인 것을 믿어야 하고
성령이 쓰셔서 성령이 항상 거하시는 서재인 것을 믿어야 한다.
성경은 성령으로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해야 하고,
또한 성령은 말씀 안에서 경험하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에서 떠난 것은 죽은 율법이요, 잘못된 신비주의요 광신일 뿐이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 되어야 하고,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마음판에 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그 안에서 세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서 그 안에서 행할 수 있다.
3.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말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사탄과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지 못하게 하고
그 안에서 행하지 못하게 할려고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박지 못하게 하고 세움을 받지 못하게 할려고 한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성경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을 멀리하면 성령과도 멀어지고 주님과도 멀어지게 돼 있다.
성경을 멀리하는 세상의 모든 지혜가 한마디로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 속에 말씀도 성령도 없으면 철학과 헛된 속임수가 이내 그 사람을 사로잡고 만다.
영의 생각이 없으면 육신의 생각이 세상의 지혜가 그 사람을 무섭게 사로잡고 만다.
오늘날 교회는 성경보다는 심리학 경영학이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성경도 그 지혜들을 전하는 방편일 뿐이다.
교회 안에서도 순전한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기갈의 시대가 이미 되었다.(암8:11)
심리학(상담학)은 교인들의 내면을 건축하는 지혜가 되었고,
경영학은 세상 기업처럼 교회를 대형으로 건축하는 지혜가 되었다.
성경은 부족하여 뭔가 세상 지혜로 채워주어야 하는 모지리가 되었다.
“오직 성경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종교개혁은 중세 천년을 깨웠다.
그후 다시 암흑으로 잠든 교회 5백년을 깨우는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혼잡한 말씀들을 버리고 순전한 말씀, 영의 말씀으로 교회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심리학 상담학 경영학이 교회 들어왔다는 것은 교회 주인이 바뀐 것이다.
사탄이, 주가 되고,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점령하고 지배하고 이겼다는 증거이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이 온통 교회를 사로잡았다는 증거이다.
관상기도 같은 신비주의가 만연한 것은 이미 사탄의 노예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사도와 선지자가 세운 가르침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신학교와 교회들이 주류가 되었다.
이러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사람의 전통을 따르고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성경이 말씀하고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말씀을 깊이 새기고 미혹당하지 않아야 한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9-12)
악한 자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제사장들이다.
그들이 사탄의 활동을 힙입어 모든 능력, 표적 거짓 기적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한다는 것이다.
대상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한 멸망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시고 거짓 것을 믿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 하신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씀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심판을 받아 미혹의 역사에, 멸망의 길로 인도되고 있는지
참으로 무섭고 놀라운 일이다.
교훈을 열심히 받고,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자.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자.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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