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12 주일설교, '믿음의 시련', 약 1:2-4

강대식 2019. 5. 12. 20:15

2019-05-12 주일설교

본문: 1:2-4

제목; 믿음의 시련

 

1. 시험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

 

시험은 시련이요 고난이다.

시련과 고난이 올 때마다 이스라엘은 시험에 들곤 하였다.

시련과 고난이 올 때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마귀처럼 세상처럼 시험하지 않으시고 시련으로 사람을 만드신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 나의 인생 길과 운명을 아신다.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

기도와 간구로 우리가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며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면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성결을 원하신다.

영으로 쓴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길 원하신다.

아들의 형상, 그 아들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것을 원하시고 요구하신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8:29)

 

여호와의 성산에 오를 자는 바벨탑을 높히 쌓은 자, 많이 소유한 자가 아니다.

이 땅 위에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많이 쌓은 자가 아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24:3-6)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만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다.

손이 깨끗해야 한다. 행위와 삶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마음 속의 탐욕과 방탕, 위선과 불법을 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여야 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이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며 무엇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혀 주신다.

그러고서는, 우리를 정말 의인으로, 거룩한 자로, 완전한 자로 만들어 가신다.

 

아들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신다.

예수의 죽음을 우리도 몸에 짊어지고, 예수를 위하여 우리도 죽음에 넘겨지게 하시면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신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가신다.

산상수훈의 팔복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 성령을 부어주시고 말씀을 주신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가르침을 받고,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그 목적과 거리가 먼 사람들인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따라서만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요?

입술로만 믿고 마음으로는 세상의 힘만을 믿고 돈만을 믿는 것이겠지요.

 

그들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른다.

하나님은 세상의 나라와 세상의 지혜와 의를 구하지 말고,

먼저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하신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우길 원하신다.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길 원하신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는 것이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7-10)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일용할 양식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한다.

이에서 지나친 것은 다 욕심이요 정욕이요 탐심의 우상숭배일 뿐이다.

그래서 주신 자유로 자유하지 못하고 많은 근심과 걱정으로 자신을 찌를 뿐이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신다.

시련과 고난 앞에서 그냥 기뻐하기도 힘든데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신다.

시련과 고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실히 알면 온전히 기뻐할 수가 있다.

 

우리 주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어디에 앉으셨다구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도 이 과정을 거쳐 보좌 우편에 주님과 함께 앉기를 원하신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

 

한나를 낮추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높이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거름더미에서 일으켜 영광의 자리에 앉히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2:8)

 

하나님이 시련을 주셔서 낮추신 것이 확실하다면,

그 앞에는 영광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을 알고 믿는 자는 시험을 당하면서도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한다.

 

2.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알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3)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에서 원망하고 대적하다가 멸망 당할 뿐이다.

우리의 고난이 믿음의 시련인 줄을 알아야 하고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성품의 연단을 이루고,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련은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상책이고 목적이다.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인내를 이루기 때문이다.

주님도 십자가를 참으셨다. 인내하셨다.

 

시련을 참고 인내한다는 것은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기 위함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우리도 고난을 인내함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성결하게 만드시고 아들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 시련을 주실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실 때 우리는 순종하며 인내해야 한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을 본 받을려면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눈 앞에 철옹성과 거인들만 보이면 스스로는 메뚜기처럼 보여 인내하며 순종할 수 없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밞고 보면서도 약속은 안 보이고 믿고 인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멸망하였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잠잠하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해야 때가 이르매 거둘 수 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속히 이루시고 거두게 하신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게 하시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신다. 약속이다.

 

모세로 하여금 40년을 인내하게 하신 하나님은 때가 차매 그의 뿔을 높이시고 위대하게 쓰셨다.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그에게 보이거늘”(7:30)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을 받고 100세에 이삭을 받았다.

우리는 이 사십 년을, 25년을 인내하며 못 기다린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못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11년을 인내하다가 사라의 감언에 넘어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스마엘의 후손은 지금까지도 약속의 이삭의 후손을 대적하고 박해하고 있다.

성경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하신다.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 약속의 후손들이 영광의 유업을 얻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인내로 통과한 목동 다윗에게 영원한 왕권을 주셨다.

현재 왕권을 쥐고 있는 사울만 보이는 사람들은 사울과 함께 멸망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악인들은 풀이 베임과 같이 채소가 쇠잔해지는 것과 같이 등불이 꺼질 날이 온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 의인들이 영광의 유업을 얻을 날이 온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이 항상 몰려간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작은 문, 협착한 길은 찾는 이조차 적다.

믿음의 시련으로 인내를 만들어내지 못한 사람들은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3.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4)

 

믿음의 시련을 온전히 기뻐하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하신다.

하나님은 온전한 것을 기뻐하시고 요구하신다.

우리는 수준을 형편 없이 낮추기를 좋아하고 하향 평준화를 좋아한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는 이시니라”(5:10-11)

 

우리가 본을 삼아야 할 것은 악인의 형통이 아니다. 높이 쌓은 바벨탑이 아니다.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하신다.

그 많은 믿음의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과 성도들을 본 받아야 한다.

 

고난 하면 욥의 고난이다.

인내 하면 또한 욥의 인내이다.

열 자녀를 하루 아침에 잃고 모든 재산을 잃고 몸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로 덮혔다.

 

욥은 그 믿음의 시련에도 원망하지 않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은 인내를 통해 온전히 성품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78:72)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13:22)

 

요셉의 노예와 죄수의 시련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하였고 이를 통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다.

다윗이 통과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하였고 이를 통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모세의 사십 년 광야의 시련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하였고 이를 통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되게 하셨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주시기까지 25년간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하였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믿음의 시련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만드시는 작업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연단하신 후에는 순금 같이 되어 나오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은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룰 날이 올 것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는 날, 여호와께서 정하신 그 날이 오면,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