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26 주일설교,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요일 3:3

강대식 2019. 5. 26. 23:15

2019-05-26 주일설교

본문: 요일 3:3

제목: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1.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져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요일3:3)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를 향한 소망이 있다.

지금의 상태와 환경과 형상이 나의 전부가 아니고 끝이 아니다.

주를 향한 우리의 소망은 주와 같아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3:2)

 

우리의 성품과 형상이 주님과 같아진다는 것이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 18)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던 아담보다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와 같이 된다.

바울은 마지막 나팔 소리에 우리가 홀연히 변화될 것이라고 하였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15:51-52)


바울은 또 로마서에서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하여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고 했다.(8:29)

다 똑 같아진다는 것은 아니고 우리 각자가 주와 같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다.

 

이 생은 그 아들의 형상과 영화를 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를 향한 우리의 소망이라면 어떤 환경에서도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질려면 세상을 향하여 소망을 갖지 말아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주와 원수가 된다고 하셨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일 뿐이다.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그분의 뜻과 섭리 가운데서 우리의 걸음과 환경을 인도하신다.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신다.(16:25-28)

 

그분이 우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신다.

우리의 출생과 생명의 유지, 우리의 종말과 연한이 그분의 손 안에 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16:6)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산다.

밤마다 하나님은 내 양심을 통하여 훈계하신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16:8)

 

그래서 주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고 하신다.

 

우리가 구할 것은 따로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6:33)

 

성경은 하늘을 구해야 땅을 얻는다고 하신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시며 인생길을 평탄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그래서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은 성경을 즐거워하고 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다.

무엇을 즐거워하고 어떤 심령으로 사느냐가 복과 형통을 결정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피조물들을 사랑하고 돈과 권력만을 사랑하고

심령에 있는 정욕과 탐욕과 부패와 오염들을 제어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4:1-2)

 

바리새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채웠다.

사두개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속은 세상으로 가득 채웠다.

이러한 누룩들이 내 속에 있는지 살펴보고 버려야 한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 있는 자이고 반석 위에 집은 지은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다.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는 주를 신뢰하고 의지한다.

사람과 소유와 환경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사람이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118:6-9)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아야 한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졌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2. 그의 깨끗하심과 같아야 한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주님의 깨끗하심은 바로 주님의 거룩하심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속성 중 으뜸 속성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인간의 죄를 차마 볼 수 없고 죄를 용인할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거룩을 모르니까 아담의 지은 죄가 왜 그 후손에게 원죄로 이어지는지를 의아해 한다.

마지막 아담이 오셔서 죄를 처리하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다시 화목할 수가 없다.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구체적 표현이다.

 

하나님은 정의로 법을 세우시고 공의로 심판을 행하신다.

아담의 후손들은 자기 힘으로 죄로 인한 공의의 형벌을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다.

 

거룩하시고 죄가 없으신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 모든 죄를 지고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았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고 교제하고 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게 되었다.

 

구약시대 내내 짐승에게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키고 피를 뿌리고 바를 때 죄사함을 받게 하였다.

그것은 피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음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을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 하였고,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단 한번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영단번의 제사를 드리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자기도 의로우시며 예수 믿는 자들도 의롭다 하시는 은혜요 능력이다.

하나님의 사랑만 알고 그 거룩하심을 모른다면 그 사랑은 인간이 지어낸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 허망한 사랑 타령, 저주 받을 미혹에 넘어가지 말라.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다.

주님은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 하신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명령과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3.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자기를 깨끗하게 할려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우리의 혼자 힘만으로는 온전히 거룩함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평강의 하나님도 친히 우리가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도록 도우시고 역사하신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3-2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얼마나 다른지 놀라고 마음 깊이 새겨야 사항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한 거룩함을 원하시고 온 영과 혼과 몸의 깨끗함을 원하신다.

하나님이 친히 도우심으로 이를 이루고자 하신다.

낮추기도 하시며 주리게도 하시며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이 여기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첫째 목표도 온전한 거룩함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온 영과 혼과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물로 씻고(주의 피로 씻은 자에게 주시는 세례)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기를 원하신다.

티나 주름 잡힌 것도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다.(5:26-27)

 

우리에게 고난이 많은 것은 연단하신 후에 순금 같이 되어 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는 것이다.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고 하신다.

 

이러한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회와 교인들은 축복과 형통을 구하기에만 급급하다.

구약 사천년 동안 세운 이스라엘 교회의 마지막 모습은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이었다.

중세 천년도 그러하였고, 종교개혁 후 500년의 개신교의 모습도 그러한 것을 알아야 한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야망을 향해 빨리 달려간다고, 성공과 축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여 잠시 이룰 수 있어도,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 이내 무너지고 만다.

 

오늘 말씀은 참으로 우리가 축복 받고 형통하는 비결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거룩함 곧 성결이 우리의 성공과 축복을 이룸을 말씀해 주고 있다.

 

주와 같이 영광스런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사는 것을 가장 큰 소망으로 삼고,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 자신의 온 영과 혼과 몸을 깨끗이 하는 것,

그것이 축복과 형통, 가나안 기업을 얻는 첩경이고 비결인 것이다.

 

주의 형상을 닮기 위해 주님은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부르셨다.

티나 주름 잡힌 것도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주님은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우리가 온전한 거룩함 곧 온 영과 혼과 몸을 깨끗이 해야 하고 주님 또한 그렇게 만들어 가신다.

 

성경은 우리가 거룩하고 깨끗해지는 방법을 말씀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진다고 하신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요, 말씀으로 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영의 생각으로 기도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 따라 사는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하셨다.

주를 봐야 축복도 형통도 오지요.

 

우리의 거룩함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우리를 마음껒 축복하게 하신다.

 

주를 향하여 주와 같이 될 소망을 항상 붙들고

오늘 주어진 환경에서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으며,

때가 되면 이루실 것을 믿고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가 되자.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함, 곧 성결과 성화를 이루는 것이.

온 영과 혼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성공과 형통과 영광을 이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