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청교도신학의 패러다임, 1662년! 그 위대하고도 탁월했던 목사들이 남긴 유산을 기려야 한다/ 로이드 존스

강대식 2019. 6. 25. 23:46

1662! 그 위대하고도 탁월했던 목사들이 남긴 유산을 기려야 한다/ 로이드 존스

 

1662년은 약 2,000명에 달하는 국교회 목사들이 영국 국교회로부터 축출당해야 했던 사건이 일어났던 해이다. 우리는 당시의 그 위대하고도 탁월했던 목사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기려야 한다. 이 글의 제목을 ‘1662, 그리고 1962이라고 붙인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위대한 사건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만 인식하거나 옛것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그 일을 통해서 오늘 이 시대에 실존하는 문제와 어려움들을 직시하는 데 도움을 얻게 될 때에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 가운데 무기력에 빠져 있던 우리가 자극을 받아 각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능력 가운데 우리를 다시 소생시키시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662년과 1962! 이 시대보다 더 악했던 적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사기 2:10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이 묘사하는 모습은 오늘날 이 시대의 모습과도 완전히 똑같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었던 진정한 지식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우리가 모든 세대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매우 뿌듯해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20세기라는 것에 대해서도 자긍심을 느끼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과 지성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한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은 지금이 이전의 그 어떤 시대보다 훨씬 탁월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662년과 뉴델리는 결코 서로 동반자가 될 수 없다. 역자주- 이 강연을 하기 전인 1961년에 인도의 뉴델리에서 제3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열렸다. 그러므로 여기서 로이드 존스는, 성경적인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경건한 목사들이 국교회로부터 축출당했던 1662년의 사건이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주장하기 위한 명목으로 진리를 왜곡해 버린 세계교회협의회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662년에 발생했던 사건을 분파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분파주의가 아니다. 분파주의와 분리는 서로 다르다. 분파주의는 혐오스러운 죄악이지만, 분리는 때때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결행해야 하는 일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개혁조차도 교회의 역사 가운데 유감스러운 한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1662년의 사건도 교회의 역사 가운데 유감스러운 한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면서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사상과 신념을 추구하고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복음주의서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1662년에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일이 없었더라면 복음주의서회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복음주의도 없었을 것이며, 만약 복음주의서회에서 청교도들이 직접 저술한 책과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저술한 책을 없애 버린다면 남을 책이 얼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서회는 기독교회의 역사 속에서 위대하고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사건을 어느 누구보다 특별히 기념해야 한다.

 

1560년부터 1660년까지의 기간이 어떤 관점이나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우리 영국의 전체 역사 가운데 가장 특별한 기간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일반 역사학자들 대부분의 견해이기도 하다. 순수하게 문화의 측면에서나 위대한 이 나라의 정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 기간은 눈에 확 들어오는 100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위대한 역사가 없었다면, 이 사건이 없었다면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될 수 있었을까? 미국이 시작된 것은 필그림 파더스가 결행한 행동의 결과이다. 이 필그림 파더스는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사람들의 조상이요 선구자이며, 1662년에 국교회에서 축출된 그 사람들과 동일한 이유로 대서양을 건너 지구의 서반구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꽃피웠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중요한 나라를 건설했다. 현대 사회를 이루어낸 모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역사적이고도 위대한 시기에 대해서 고찰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작업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 세기인 18세기를 주목하라. 이 나라에서는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와 다니엘 로우란즈와 하웰 해리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였고 미국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참여했던 영적 대부흥복음주의 영적 대각성에 주목하라.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기념하는 바로 그들(청교도들)의 작품을 늘 가까이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했다. 이들의 일기 속에는 자신들이 청교도들의 저작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청교도들이 남긴 설교문을 그대로 전했던 것에 대해서도 서로 지적하는 모습도 기록되어 있다.

 

18세기에 일어났던 복음주의 영적 대각성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1662년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바로 이 사건이 그 위대한 부흥의 주요한 원인이요, 최소한 그 부흥의 불길이 더욱 타오르도록 기여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세기를 살펴 보더라도 동일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찰스 스펄전도 말 그대로 청교도들과 더불어 살았던 사람이다. 청교도들의 작품에 대해서 스펄전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라일 주교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청교도들을 칭송하는지 알 것이다. 영국 국교회에 있는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탁월했던 그도 스펄전만큼이나 청교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당시 이 사건의 당사자였던 청교도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청교도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우리가 구약시대의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히브리서 11장의 가르침과 동일한 이치이다. 여기에 17세기를 살았으나 구약에 등장하는 영웅들과 동일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신앙을 자극하고 신앙에 힘을 불어넣는 데는 이 영적 거성들을 바라보면서 죄악되고도 잔인하며 적대적인 세상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행동했는지 살펴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 로이드 존스, 타협할 수 없는 진리, PP 179-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