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4 주일설교
본문: 마 24:23-25
제목: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
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24절)
11절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했다.
거짓 그리스도들은 메시야 행세를 하는 교주급 이단의 괴수이고,
거짓 선지자들은 그 수하이거나, 거짓을 설교하는 목사나 교사일 것이다.
구약 예언들은 유대의 멸망 기사와 세상의 멸망 기사가 중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시성이라고 한다.
구약 선지서의 책망과 경고들은 오늘 우리 시대의 목사와 장로와 신학교수에게도 해당된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주도한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렘8:8-12)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서기관(신학교수)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은 버리고, 그들의 가르침과 책들이 거짓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람의 계명과 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하였다.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게 이르기까지 다 거짓을 행하였다.
하나님의 자기 딸 내 백성에게 상처를 주어 징계하고 계신데도,
회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평강하다. 평강하다, 문제가 없다고 하나 평강이 없다.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평강을 노래하며 탐욕과 방탕에 끌려가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얼굴도 붉어지지 않으면서 낮짝이 두꺼워서 행악을 밥먹듯이 행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그 모양이니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한다.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민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는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해 벌을 받는다고 하신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을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는데
내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으니 마지막에는 어찌 하려느냐고 하신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섭고 놀라운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들은 무사태평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와 세상을 어지럽힌 주범들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기에
그들에 대한 심판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선언하고 있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고,
사람의 지혜로 합리화하면서 탐욕과 정욕을 추구하고 미신과 우상을 숭배했다.
분별력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에 미혹되어 추종했다.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는 사탄과 귀신들이 자리하고서
그들을 조종하고 그들에게 능력을 부여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능력과 표적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인도한 것이다.
2. 그들은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할 것이다.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했다.
이단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의 기독교 주류를 이끄는 무리들이
큰 성 바벨론을 형성하여 세계와 민족들을 지배한다.
호튼 목사는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는 책을 썼다.
그는 1차 대각성과 2차 대각성을 구별한다.
1차 대각성 곧 참 부흥은 진리의 복음 전파와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이루어졌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휫필드의 사역이 그러했다. 전도도 진리 중심이었다.
그러나 2차 대각성 곧 부흥주의는 태크닉과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인간의 역사로 이루어졌다.
복음주의 신학과 교리는 부인되었고, 수단과 방법이 최우선이고 회심자의 숫자가 그 증거였다.
찰스 피니와 무디의 사역이 그러했다. 기업화된 기독교의 테크닉 중심의 다양한 쇼의 전도였다.
이들은 1차 대각성과 2차 대각성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 선상에 있는 것으로 알고 선전한다.
1차 대각성은 성령의 역사이고, 2차 대각성은 사탄의 역사인데도 말이다.
치유 사역자들도 우리의 믿음이 ‘우주적 파워의 스위치를 누르는 손가락’이라고 한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 전해 주는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예를 들어 스크린 위에 손을 올려 놓는다든지,
많은 돈을 헌금한다든지, 한 가지 기도를 반복한다든지, 기도할 때 부여잡고 있었던 광목천으로 환부를
쓰다듬는다든지 하는 것들), 하나님의 치유력은 이에 호응하여 반드시 작용할 것임이 보장된다.
그들은 현장에서나 티비에서 손짓 하나로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진동하게 하며
치유가 일어난다고 하나 그 확실한 증거들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표적과 기사를 흉내내며 조작하지만 미혹되는 사람들은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뿐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진리를 믿지 않는데 대한 심판이라고 하신다.
어떤 사역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번영의 법칙”을 활용하라고 권한다.
하나님도 이 법칙에는 꼼짝없이 따른다고 한다 .
“그것은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나 텔레비전의 채널을 맞추는 것과 같아서
바른 주파수를 맞추면 그 프로그램을 잡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한다
청교도가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가 타락하여 사탄의 보좌 역할을 하고 있다.
신비주의 광신주의 은사주의가 티비를 통해, 초배스트 셀라의 책들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특히 곧바로 직행하고 있다.
거짓 적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표적과 기사를 동원하여 펼치는 ‘거짓 쇼’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복을 주시지,
이들의 표적과 기사에 의지하여 행함으로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성품이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잊고 있다.
이러한 미국제 복음주의,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런 교회는 ‘그리스도 없는 교회’이고, ‘세상에 사로잡혀 포로가 된 교회’이다.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
거룩과 진리가 없는 곳엔 미혹과 부패와 탐욕이 있을 뿐이다.
미국제 영성에는 힌두교의 구루들이 활동하고 있다.
실용성과 테크닉에 의존하여 넒은 길, 큰 문, 많은 무리들로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끈다.
우리 주님은 구원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물음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은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다.
내 말과 명령과 법도대로 행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일관된 선언이고 약속이다.
3. 그들은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도 이들의 쇼에 미혹을 당하기도 한다.
하나님과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급히 욕심을 이루고자 할 때
하나님은 내버려 두시고 몸으로 겪고 난 후 정신을 차리게 하신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세월을 낭비하게 마련이다.
땅 위에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쌓는 자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질을 당하게 하신다.
복 있는 사람은 재물과 권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사랑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이다.
그러나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면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교훈을 받게 하신다.
사람은 어리석게도 미혹을 경험하고서야 진리에 눈을 뜬다.
된장인지 뭣인지 꼭 자기 혀로 맛을 보고서야 알아차리는 것이 어리석은 인생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주님은 요약을 해주셨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회개하여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는다.
세상과 일에 바치는 시간의 7분의 1이라도 바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해야 한다.
주의 날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니 7분의 1이다.
땅에다가 아무리 재물을 모으고 성을 높이 쌓아도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 번 후- 불으시면 다 날라가고 마는 것들이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습관을 본받아야 한다.
인생은 이 땅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생과 영벌이 기다리고 있다.
빠르고 쉬운 길을 가려다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고 만다.
성경은 하늘을 구하면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신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하신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이 길을 가라고 하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떡이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운명을 결정한다.
말씀으로 살 때 풍족하게 되고 떡으로 살 때 오히려 주리게 된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른다고 하셨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하셨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가장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시작하여 나사렛과 갈릴리를 거쳐서
예루살렘의 십자가를 거쳐 부활하고 보좌 우편에 이른다.
주님이 가셨던 자취를 우리도 본받게 하신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우리 주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눅9:23)
그런데 하루 아침에 복을 받아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밥이고 먹잇감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영생을 준비시키고 천국을 살 수 있는 훈련과 연단을 하신다.
금방 몇 가지만 하면 소원 성취한다는 미혹에 넘어가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도대체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니까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게 미혹 당해서 있는 것 없는 것까지 다 빼앗기고 만다.
다 진리를 사랑하고 믿지 않고 불의를 사랑하는 데서 기인하는 심판이다.
오늘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욕심을 버리고 거룩해지는 것이 축복의 비결이다.
성공을 쫓아가면 멸망에 이르고, 성결을 쫓아가면 천국과 영생에 이른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오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가져온다.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은 생각의 결과라고 하신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게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8-9,11)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
3백년 동안 암흑시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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