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7 주일예배
본문: 마 16:15-18
제목: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 주님은 공생애가 끝나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날이 가까이 다가옴을 알고 계셨다.
‘사람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1.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16:16)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토대이고 믿음의 기초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
이 고백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믿음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이고 아니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하나님의 아들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자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다.
이 구원자가 오실 것을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때가 차매 그분이 여인의 몸에서 나신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아담이 범죄함으로 잃어 버린 것은 통치권과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 통치권을 회복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왕 노릇 하고 아들 안에서 형상을 회복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영광과 통치권보다 훨씬 나은 영광과 통치권을 누리게 된다.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회복이고, 성령을 받은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영광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메시야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보았지,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한 사람도 드물었고,
더욱이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 없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영을 받아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것만을 인정한다.
세상의 영을 받고 사람의 지혜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장로의 전통만 아는 사람들이,
유대 종교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이 되어서,
하나님을 헛되게 예배하고, 오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오늘날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이다.
천년의 암흑시대 끝에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에는, 성령의 지혜를 회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고백하다가,
또다시 교회는 유대교의 실상으로, 카톨릭의 암흑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
사람의 계명이 무엇인가?
사람이 만든 생각 철학 사상 사고방식 가치관을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아서, 그 영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게 되어 있다.
사람의 지혜로 뛰어난 자들이 종교계의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의 지혜로만 무장한 백성들은 그들을 좋게 여기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무섭고 놀라운 일들을 벌리는 것이다.
그들의 눈과 지혜로 보기에는 예수는 신성모독자이고 율법을 어기는 자였을 뿐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믿었다.
오늘날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지 않고, 성령의 가르치신 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기독교의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성령이 가르치신 전통은 16세기 개혁자들과 17세기 청교도들에 의해서 흥왕하다가
사그라지고 그 명맥을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처럼 극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영적인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들만이 분별할 수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한다.
이는 그것들이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이다.
2.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셨다.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다정히 부르시면서 축복하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이 신앙고백을 분명히 할 때 똑같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주님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깨닫게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그렇다.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 중심으로부터,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말미암아, 이 고백이 나와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받아서, 이 고백이 영혼 중심에서 나와야 한다.
사람의 지혜의 가르침이냐, 성령의 지혜의 가르침이냐,
사람의 지혜인 세상의 영으로 섬기느냐, 하나님의 지혜인 성령으로 섬기느냐,
이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너무도 중요한 구별이다.
우리 주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셨다.
성령의 가르치심은 성령을 받아서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을 세상 지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할 뿐이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평생을 교회 다니며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다면 어찌 되겠는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은 철학이고 헛된 속임수일 뿐이다.
성령의 가르치심을 배우기 전에는 우리 머리와 마음 속에는 이것들이 사로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인들은 성령의 가르치신 것을 배우기를 싫어한다.
세상의 영만을 받아 놓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기가 일수이다.
그것은 참으로 무섭고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는가?
성령이 가르치시는 것을 새롭게 배웠는가?
성경이나 설교를 그냥 타고난 지혜와 교육으로 적당히 이해하고 만족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는 물어보고 회개해야 한다. 빨리 돌이키고 회개할수록 좋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는 말씀은 무서운 말씀이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신다.
내 아버지의 뜻은 성령만이 가르쳐주실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가르치신 전통으로 다시 새롭게 말씀을 배우기를 시작하시기 바란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을 받았다면 더욱 그러하고,
그렇지 않다면 성령을 받는 것부터 구하시기 바란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다.
위로부터 내려 온 지혜와 땅 위의 지혜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땅 위의 지혜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고 하신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속하셨다.
성령을 받고 이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게 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은 곧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그 심판으로
미혹의 역사를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3.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여기서 음부는 저주받은 자들이 죽어서 가는 곳을 가리키지 않는다.
음부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히2:14)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이 반석 위에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이다.
이 반석이 무엇인가?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는 고백이다.
주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확실히 믿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것도 걱정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
만왕의 왕이신 분이 나의 주님이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주님이신 것을 믿는다면,
성경이 약속하는 그 많은 복과 은혜들을 나의 몫으로 믿을 수 있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을 성령 안에서 누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신앙고백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함으로 모든 것을 더해 받아 누릴 수 있다.
땅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된다.
이 신앙고백이 분명하지 못한 교회는 주님의 세운 교회가 아니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고 지배하는 교회이다.
그 교회는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
선지자는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그 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면서, 그 교회는 부패와 멸망으로 치닫는 교회가 될 것이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서 재물과 권력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멸망으로 끝날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은 항상 멸망 당하기 전까지는 자기들의 반역과 교만을 몰랐다는 것이다.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착각과 교만들이 최후 심판의 날에는 얼마나 비참한 결말을 맞을지 무서울 뿐이다.
이 땅에서 아직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동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영적으로 분별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인지, 음부의 권세에 사로잡힌 교회인지,
영적으로 분별하는 분별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세상과 자기 일에만 몰두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잊고 살 때가 아니다.
우리의 마지막도 세상의 마지막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도둑 같이 온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영혼은 남은 다섯 처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별이 안 되는 교회가 교회일까요?
큰 문, 넓은 길, 사람 많은 것 좋아하다가, 재물과 권력을 주로 섬기다가,
자기 교회가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인지 모르고 속해 있다가,
멸망의 지옥에 떨어지고서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이 얼마나 많을꼬?
성경의 경고를 우습게 알고 성경의 명령과 교훈을 우습게 여기다가
표면적 유대인으로 표면적 그리스도인으로 만족하다가
성경에 정해진 운명은 어김 없이 다가올 것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라 하신다.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인데도 사나운 이리가 들어와 그 양 떼를 아끼지 않으며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신앙고백이 분명한 우리가 되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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