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4 주일설교
본문: 막 13:35-37
제목: 깨어 있으라
1.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13:35)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주의 약속이고 예언이다.
성경이 수없이 주님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은 엄청나게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체 성경의 30분의 1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언급이라고 한다.
구약에서부터 주님의 초림에 대한 언급 1번에 재림에 대한 언급은 8번의 비율이다.
주님 자신이 재림을 가르치시고 강조하시고 자주 언급하셨다
마 24장과 25장은 이 재림의 문제만을 다룬다.
막 13장, 눅 21장이 그것이다.
사도들도 주님의 재림을 가르쳤다
사도행전 첫 장에서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 천사가 말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절)
“이 후에 인자가 --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계 1:7)
서신서에서도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바울서신, 야고보서, 요한서신과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30)
성경에서는 주님이 오시는 날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날’(벧후3:12), ‘주의 날’(살전5:2,벧후3:10), ‘주 예수 혹은 그리스도의 날’(고전3:13).
주의 재림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2-3)
주의 재림은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이다. 만왕의 왕, 주의 주로, 심판주로 오신다.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0-31)
주님 오시면, 구원 받은 우리도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된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4-17)
그런데 그 날과 그 때는 오직 아버지만 아시고 아들도 모르신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1:7)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32-33)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바 아니고,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고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기독교 역사에서 재림의 날자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교회를 어지럽혔다.
베드로의 말처럼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벧후3:16)
이런 터무니 없는 가르침 때문에 재림에 대해 관심과 논의를 피하는 경향도 생겼다.
원수는 어떻게든 우리가 주님의 재림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게 애를 쓴다.
우리를 낙심시키는 환경 때문에, 일로 가득찬 생활 때문에 재림의 소망을 잊고 살게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재림의 시기를 확정하는 일에 집착하다가,
영적인 삶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하게 되기도 한다.
주의 재림에 대해서는 성경을 읽고 책들을 균형 있게 읽으며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그 결과 재림의 날자가 더 불확실해졌다면 제대로 공부한 것이고 기뻐할 일이다.
재림에 대한 관심은 핍박과 환난의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의 헛됨을 알게 될 때만,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미래의 소망은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이 되어야 한다.
“때”라는 용어를 사람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들은 재림이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의 세대에 일어날 일이라고 믿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그런 인상을 주기도 하나, 그렇게 가르친 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때에 관해서는,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벧후 3:8)
우리는 이미 말세에 살고 있다.
신약에서 사용되는 “말세” 혹은 “말일”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 주님의 초림부터 시작해서 재림까지 이어지는 신약시대 전체를 말한다.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에는 원근법과 통시성이 있다.
구약의 예언들을 읽어보면, 선지자들이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한 호흡’으로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한다.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파괴와 세상 끝의 심판 날에 대한 언급이 서로 중복되어 있다.
재림에 관한 장(마24-25장,막13장,눅21장)을 읽을 때는 이 원리를 유념해야 한다. .
그리고 주님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에 앞서 특별한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방인을 다 부르셔야 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3-14),(막13:10,롬11:25, “이방인의 충만한 수”)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6)
‘온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총 수로 보아야 한다.
구원은 혈통이 아니고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기 때문이다.
그 날은 세상의 마지막 날이고 심판의 날이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는 날이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1-15)
이 날은 양과 염소의 무리로 나뉘어지는 날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왼 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또 왼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31-46)
2.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13:36)
자연의 잠도 있지만 영혼의 잠이 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영혼의 잠에서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주님이 홀연히 오셔서 우리가 영혼의 잠을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잠자는 것으로 표현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깨어 있는 것으로 표현하셨다.
오늘 본문에서 밤의 네 경점만을 언급하시지만,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잠자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심판하러 오실지를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주님께서 언제 오시든 영접할 준비를 갖추어 놓기 위하여
그들 자신을 지켜 범죄하지 않도록 늘 부지런히 힘쓰고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있다면 그 상태가 바로 잠자고 있는 것이다.
“깨어 있는” 것은 잠자고 있는 것과 반대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들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해 준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잠자는 것은 어둠의 일에 빠지는 것이다. 빛의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지 않는 것이다.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하고 호색하는 것이다.
다투거나 시기하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을 잠 재우는 것은 너무나 많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21:34-36)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이 영혼의 잠을 자는 것이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빠져 있는 것이 영혼의 잠을 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들어도 열매를 못 맺게 하는 가시떨기라고 하셨다.
떡으로만 살고 말씀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잠자는 사람이다.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그 날은 덫과 같이 임하여 그를 사로잡고 말 것이다.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 영혼의 잠을 자는 것이다.
그것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하여 잠들게 한다.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영혼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을 즐거워하여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며 복 있는 자의 길을 가지 않고,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며
악인의 길을 가는 것이 잠자는 것이다.
3.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37절)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말씀으로 살며 깨어 있어야 한다.
성경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거룩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죄와 육신과 세상과 사탄을 대적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재림에 대한 소망은 모든 시대의 교회에서 순교자들과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것은 복된 소망이자 동시에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되어 주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9-14)
주의 날은 더딘 것이 아니라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이르고 모든 일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 하신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하셨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하셨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마24:42)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44절)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거룩한 삶을 촉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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