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형제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2:11)
- 히브리서는 위로의 편지이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와 오해와 비방과 위협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실망에 빠진 자들도 생겨났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 믿었다. 그런데 당장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결과는 주로 곤경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이 때문에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이다.
이 서신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단 하나의 주제, 하나의 메시지만 전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푸는 단 하나의 해결책, 곧 우리 주와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이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곤경에 빠진 것은 오직 우리 주와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첫 장 첫 두절부터 시작하여 매 장에서 그 진리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보고 그에 관한 진리를 알며 그와 자신의 관계만 알면 어떤 문제에도 더 이상 지배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광스러운 믿음의 중심으로 돌아가 기쁨으로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주님의 뛰어나심은 이 긴 서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중대한 주제이다. 이 사람의 전적인 주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야말로 인생에서 중요한 단 한 가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신약성경 도처에 나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복음의 영광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뛰어나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문제 모든 난감한 상황의 해답이 여기 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이 말씀을 분명히 깨달았을 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라고 말하는 행복한 자리에 참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시118:6) 그는 우리를 도우실 뿐 아니라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이 말씀만 올바로 알면 다른 문제는 절로 해결된다.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고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고 해도, 자신은 “이같이 큰 구원”에 참여한 자임을 알고 있는가? 그가 우리를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이 사실에 모든 해답의 핵심이 있다.
1. 그의 위격 – 히브리서 기자는 이분부터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① “한 근원”, “형제”- 라는 말 자체가 서로 간에 공유하며 일치하는 특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용어들을 얼핏 보면 나사렛 예수도 사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자들은 예수는 위대한 종교적 스승이자 위대한 도덕적 본보기였다고, 정치 등에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그가 당시에 가르친 내용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용어들을 좀 더 유심히 검토해 보면 그와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의 차이가 있다. 형제들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이다. 이 차이를 보지 못하면 이 일의 영광을 또한 볼 수 없다.
②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여기에서도 차이를 알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낱 인간에 불과하시다면 굳이 이렇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말 자체가 그와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것이 경이로운 말인 것은 그가 우리와 같으면서도 영원히 다른 분이시기 때문이다. 동료 인간을 형제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분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③ “한 근원에서 난지라”,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라는 표현들을 같이 묶어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세상이 이제껏 알았고 앞으로 알게 될 모든 비밀 중에서도 가장 큰 비밀과 경이, 즉 성육신이라는 중대한 교리 앞에 서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 우리처럼 진정한 인간이 되셨다는 점에서 우리와 “한 근원에서” 나셨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 그러면서도 우리와 영원히 다르시다. 성육신하시기 전에는 우리와 하나가 아니셨기에 우리를 형제라 부르실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가 되셨기에 형제라 부르신다.
이것이 2장이 특히 명확하게 강조하는 주장이다. 이처럼 예수를 바라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예수를 완전히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 봐야 소용이 없다. 복되신 분의 영광과 뛰어나심은 바로 이 사실, 그가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참된 인간이시라는 사실에 있다. 그는 우리와 영원히 다르시면서도 몇 가지 측면에서 우리와 하나가 되셨기에 우리를 형제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2.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대상은 누구인가?
예수는 모든 사람을 형제라 부르지 않으신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별된 특정한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오직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2:13) 그리스도께서 형제라 여기시는 대상은 오직 그를 믿는 자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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