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12장 신실하고 불변하신 대제사장 (김영희)

강대식 2020. 6. 30. 20:26

12 장 신실하고 불변하신 대제사장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2:17-18)

 

-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를 받을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찰해야 하는 이유와 복음에서 절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들을 알려 준다. 즉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이다. 인간의 메시지가 아니다. 일개 철학이 아니며, 세상살이의 필요에 대해 사람들이 내놓은 사상이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며,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대로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보응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2:3) 우리가 복음 메시지를 고찰해야 하는 것은 복음이 제시하는 구원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이같이 큰 구원을 다소 객관적으로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과 함께 영광 가운데 거하며 세상을 다스릴 백성을 친히 만드시려는 것이다. 2장은 히브리서 전체의 훌륭한 요약이자 사실상 기독교 신학의 개요로서, 하나님의 장대한 계획과 목적 및 이 방법으로 구원 계획을 이루신 이유를 밝혀 준다.

 

그뿐 아니라 복음의 놀라운 특징도 알려 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살펴볼 때는 항상 객관적인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주관적인 체험이나 삶의 큰 변화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진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신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들은 것‘(복음)에 유념하라는 말로 2장을 시작한다.

 

- 이처럼 객관적 진리에서 출발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구원에는 주관적인 요소도 있다. 단순히 구원의 계획과 개요만 살펴보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복, 복음이 즉시 주는 복 또한 고찰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음 깨달은 순간부터 최종적 영광에 이르는 그날까지 우리 혼자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구원의 측면들, 세상의 부를 다 합친 것보다 비할 수 없이 큰 복들이 있다. 이 또한 이같이 큰 구원의 필수요소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점을 강조하고자 애쓴다. 박해 받고 문제에 둘러싸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들에게 장차 받을 복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얻을 수 있는 복이 무엇인지 일깨우고자 애쓴다.

 

바울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는 표현을 쓴다.(8:23) 구원의 본체는 장차 올 영광 가운데 얻을 것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지금부터 주시는 맛보기와 첫 열매가 있다.

 

이 복들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이론적으로 아는 바가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독신앙의 영광이 여기 있다. 이 복들은 생명을 주는 생명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고 즐기며 누리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승리의 삶, 풍성한 삶을 그려 준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 앞에서도 사도 바울처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 복들을 경험하고 있는가?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즉시 찾아오는 복이 무엇인가?

1. 첫 번째,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복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이다.

1)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 주님이 오신 이유이자 목적이다. 죄인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이 일을 하고자 대제사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형언할 수 없는 죄인이요 지옥에 떨어짐이 마땅한 자임을 깨달은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일을 하셨다.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알며, 그럴 자격이 없음을 참으로 깨달은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일을 하셨다.

 

전에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을 대면하기가 두려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한 자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며 본인도 그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한다. 신약 서신서들은 이 확신을 주고자 기록되었다. 바울은 사도들이 화목케하는 일을 맡았다고 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라고 말한다.(고후5:19-20) 이것이 복음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0:19)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거룩한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갈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기에 그 앞에 나아가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2)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 우리는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다. 이것이 무엇보다 놀라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거룩해졌다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특별한 소유가 될 백성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업은 성도이다.(1:18-19)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재산이다.(벧전2:9)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우리를 구별하셨고,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특별한 대상이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 특별히 아끼시는 대상이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여러분을 구별하셨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여러분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며, 그가 모르시거나 허락지 않으시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8:28)

 

우리는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이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자, 예비하신 영광을 위해 준비시키고 정결케 하시며 온전케 하시는 자이다. 그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행하게 하신다.(2:13) 때로는 징계하시지만, 그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가고자 채찍질하시는 것이다. 징계야말로 우리가 그의 자녀라는 증거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고난당할수록 더 감사드릴 수 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2:14) -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구별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신다. 우리를 자신처럼 만들기 위해 자신은 우리처럼 되셨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딸로 삼기 위해 육신이 되시고 사람이 되셨다. 자신의 본성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입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벧후1:4) 우리는 그를 영접했고, 그는 우리 안에 찾아와 거하고 계신다.

 

우리가 이런 사실들을 참으로 안다면, 기독교회는 오늘날과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형제자매라고 부르신다는 사실, 우리가 그의 본성을 가졌다는 사실,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지금 이곳에서 이미 그의 영광에 참여할 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늘 처소에 앉아 있다는 사실, 결국 그와 함께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을 붙잡는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2. 두 번째 복은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1)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여러분은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신약성경은 거듭 이 말을 반복한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참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더 이상 사탄의 종이나 노예나 포로가 아니다. 사탄의 권세를 무시하면 안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12:11) 우리는 믿음으로 두려움 없이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나온 확신이다.

 

그리스도인도 죄에 빠진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한 탓에 죄에 빠질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로 그 대책을 또한 마련해 주셨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에 대한 중대한 가르침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이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자기 자신에게 정죄감과 자괴감이 찾아올 때,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여러분을 알고 이해해 주시는 대언자, 중보자가 계신다. 여러분의 죄를 인정하고 문제를 맡길 때 풍성하고 온전하며 값없는 죄 사함을 보장해 주시는 분이 계신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험을 받을 때도 도와주신다. 혼자 버려두지 않고 늘 곁을 지켜 주시는 분이다. 그는 자신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자를 능히 지켜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신다. 그가 여러분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 능히 붙들어 주시며 힘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에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또 그는 항상 동일하시며 불변하시다. 우리는 시시각각 기분이 바뀌는 가변적인 피조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은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 히브리서의 중대한 주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13:8)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끝까지 구원하실 것이다. 신자의 영원한 안전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가장 영광스러운 복이자 확신을 주는 복이다.

 

2) 이처럼 우리의 필요는 전부 채워졌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충만히 주어졌다. 우리가 미처 필요를 깨닫기도 전에 미리 예견되고 채워졌다. 그런데 죽음은 어찌되느냐고, 복음이 죽음에 대해 해주는 말이 있느냐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14-15) 죽음을 생각하며 무서워하지 않을 자는 없다. 불신자에게 죽음은 섬뜩한 것이다. 죽으면 끝이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6) 이 말은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지은 자가 죽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는 뜻이다. 이것이 죽음의 쏘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권능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그같이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음을 겁내는 것이다. 율법이 형벌을 선고하는 순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며 죽음을 생각하기만 해도 겁을 먹게 된다.

 

그런데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처리하심으로 죽음에서도 구원하신다고 말한다. 그가 우리의 죄를 지고 죽으셨기에, 적극적인 순종으로 율법을 만족시키셨기에 죽음의 쏘는 것은 힘을 잃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대해 하신 일을 깨닫는 순간 죽음의 쏘는 것은 제거되며, 바울처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고전15:55) 하나님께 감사드리라.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음의 공포가 사라질 뿐 아니라- 오히려 죽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더 좋은 일임을 깨닫는다.

 

-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복을 알고 있는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무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대신 필요한 일을 해주신 분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제껏 살펴본 복들은 전부 하나님의 선물이다. 여러분은 이 복들을 누리고 있는가? 그 빛 안에서 살고 있는가? 그 빛으로 이 어두운 세상에서 미래의 삶을 맞이하고 있는가? 이 모든 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다. 장차 온전하고 충만하게 누릴 놀라운 영광의 맛보기이자 첫 열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