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의 자기애(self-love)/ 조엘 비키
예수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사랑에 관해 설교할 때, 우리는 사람들을 속박하고 있는 많은 윤리적인 신화를 내어 쫓게 된다. 오늘날 ‘사랑’은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가장 오용되는 단어 중 하나다. 그 단어는 온갖 종류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오해되며 왜곡되고 있다.
하나님 주신 율법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가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 있음을 설교할 때, 여러분은 ‘사랑’과 ‘율법’ 모두의 의미를 회중에 뚜렷이 전달할 수 있다. 회중이 공허하고 추한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이때 그들에게 윤리적인 의무는 가장 감미롭고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여러분은 또한 신자들의 자기애(self-love)를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떠난 상태에서, 우리의 본성적인 자기애는 우리의 시선이 스스로를 향하도록 돌려놓음으로써 자신을 파멸시키는 폭군이 되었다. 현대의 자기존중의 신학에서는 이 폭군이 요구하는 것을 내어줌으로써 그를 달래 보려고 한다.
그러나 에드워즈에 따르면, 타락한 인간이 지닌 사랑은 “작은 점에 이르도록 축소되고 말았으며, 그 자신의 내부로 제한되고 철저히 갇힌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배척하게 되었다.” 인간의 자기애는 한때 하나님을 섬기는 종의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자리를 찬탈하고 영혼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리의 자기애 역시 선하고 유익한 종의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여러분이 사랑의 법을 선포할 때, 회중은 거룩한 행동에 나서도록 자극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랑이 능동적인 은혜라는 데 있다. 왓슨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 자체의 영역 안에서 적극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사랑은 부지런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경우, 그의 머리는 그분을 연구하게 되고, 자신의 손으로는 그분을 섬기며, 자신의 발로는 그분의 계명들을 좇아 행하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 이는 곧 ‘사랑의 수고’로 불린다(살전1:3).
또한 여러분은 신자들의 영혼이 진정으로 위대한 상태, 더욱 온전하고 참된 인간성을 지닌 상태로 자라가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회중이 성경적인 사랑의 개념을 깨달을 때, 그들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하나님을 닮은 자들로 성숙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엘 비키, 「설교에 관하여」, pp 65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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