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일으킨 변혁’은 예수님의 초자연주의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워필드

강대식 2021. 9. 23. 08:47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일으킨 변혁은 예수님의 초자연주의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워필드

 

예수님의 초자연주의를 떠나서는 기독교의 기원과 이후의 발전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세상에 들여온 새 생명,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과 사역으로 산출한 새로운 피조물, 이런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가장 뚜렷한 신임장이다.”

 

먼저 객관적 측면을 생각해 보자. 하르낙의 기독교 확장이나 폰 돕슈츠의 원시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같은 책(두 책 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을 읽어보라. 그런 다음 신적 능력보다 못한 능력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지 질문해 보라. 게다가 이런 일들은 이천 년 전, 이교 세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후 모든 세대에 반복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세상을 대대로 정복하고 또 정복한 것은 기독교뿐이다. 기독교 복음이 벌판의 불길처럼 세상을 어떻게 삼키며 퍼져 나갔는지 생각해 보라.

 

주관적 측면을 생각해 보라. 보든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변혁시키는 힘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고, 따라서 맹인이 했던 추론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9:30). ‘온유한 성향, 고결한 동기, 큰 소망의 왕국 아래 살아가는 삶에 나타난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마음-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을 감화시킨 분이 하나님이라는 남아 있는 증거다.”

 

워필드의 결론이다. 각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신성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그 자신이 경험한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내적 경험이다.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내적으로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적 강제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직관적으로 알고 본능처럼 인정한다. “주님의 재창조 능력을 겅험한 사람은 태양의 온기를 느끼는 사람이 태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에게 능력을 베푸신 분이 자신의 주님이며 자신의 하나님임을 안다.”

 

고전 1:18-31을 연상시키는 논증이 위필드의 글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변화는 이런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할 수 있는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다. 워필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곳마다 일어난 변화된 삶에 대한 명백한 기록들은 달리 설명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결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비평학이 역사적 원천에서 어떤 예수님을 추출해 내든지, 실제 존재한 예수님은, 예수님이 세상에 초래한 결과를 설명해 주는 예수님이다.” 자유주의 비평이 고안한 예수님이 죄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가? 근대 합리주의가 고안한 예수님에게 우리 필요를 채워 줄 능력이 있는가? 인류 전체에 공통된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를 처벌하지 않고 간과하시리라는 자기 확신으로 죄책감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진실한 종교 경험에 주된 요소롤 자리 잡고 있는 깊은 도덕적 정죄감은 죄책감을 달래 보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한다.”

 

기독교가 본질상 구속 종교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할 때만, 신적 그리스도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대한 다른 대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과 죄인들의 화해가 필요한 한, 기독교가 죄인의 종교인 한, 그 구속자는 역사에 실제 존재한 유일한 구속자이자, 우리와 같은 인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구속자여야 한다.

 

프래드 재스펠, 한 권으로 읽는 워필드 신학, PP 392-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