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발생한 ‘사도들’‘천사들’의 후예인가?/ 권현익
‘세상과 세속에서 핍박당하지 않는 자는 결코 의로운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선언하는 구절을 당신은 지금 몇 개 정도나 찾아낼 수 있는가?
그러나 그렇게 줄줄 찾아내고서도 ‘의로운 자들, 바른 신앙을 지키려는 자들이
박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빠져나갈 소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의 우울한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직접 시작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른다.
여러 세기 동안 이런 핍박과 순교와 유랑을 자신들의 숙명 정도를 넘어,
주어진 삶의 형식과 전통으로 수용할 정도에 이르렀던 이들이 있었다.
이런 놀라운 열조들의 이름을 찾아가다 보면
바울인들, 알비인들, 발도인들, 롤라드인들, 후스인들과 같은 이름들이 나타나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사의 구석으로 내몰려
얼어붙은 응달의 뒤안길을 헤매던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받은 전통과 전승이란 것들을 살펴보면, 실제로 그것들은 그들 삶의 현장에서는
‘엄청난 박해와 핍박 외에 다른 의미가 아니었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들은 항상 세력과 폭력을 가진 자들에게 학살의 대상이었고,
소위 ‘그리스도의 교회 혹은 그리스도교 교회’라 자처하는 이들과
이들의 후예들에게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학대와 박해의 대상이기 일수였다.
그래서 세대를 넘어서도 적그리스도 세력의 폭정에 맞섰던
개신교회의 후예 교회들 가운데, 비이트 폰 레베르가
‘바울인들’을 정(定)히 포함시키고 있음을 우리는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교회의 역사 해석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자기 이후의 기독교회사 저자들과 독자들이 방향을 설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바울인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면서
‘바울인들’에게 ‘마니교’라는 허울을 씌워 버렸다.
“마니교의 한 지파인 바울인들은 7세기 중반에 들어와
서방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종교개혁의 씨앗을 뿌렸다.”
20세기 교회사 연구가 코니베어는 바울인들의 신앙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들의 교리서와 신앙고백서인 『진리의 열쇠』 아르메니아어 원본을
영어로 번역하여 서방 독자들에게 최초로 소개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비잔틴 교회는 ‘마니교’라는 단어를
이단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 쓰고 있었다.
또한 바울인들은 “정통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저자들에 의해 ‘신종 마니교도들’이라 불렸고,
바울인들을 비판하였던 포티우스 역시 ‘마니교’라는 용어를
자신들의 교리에 반하는 모든 반대파에게 적용한 남용된 용어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번 류의 ‘바울인들에 관한 마니교적 편견’이
이후의 다수 개신교 역사가들에게조차 확인 없이 수용되는 ‘기본 입장’이 되어 버렸고,
이것이 그 이후 세대에도 결정적 흐름이 되어
‘별 이견이 없는 역사적 사실’로 변경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살펴보면,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16세기 종교개혁과 이 선조들이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음이 여러 증거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 문제가 사뭇 복잡하고 심각한 논의에 부딪히게 되었다.
요컨대, ‘16세기 종교개혁의 신앙적 선조에 저 바울인들이 있었다’라는 사실은
자칫, ‘종교개혁의 신학은 마니교 사상에 그 상당한 뿌리를 두고 있다’라는
희한한 논리로 귀결되어 난감한 결과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번은 다음과 같이 썼다.
“1,200년 대 이후, 프랑스 남부 알비 지방에 바울인들이 갚이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이 ‘바울인들’은 ‘알비인들’로 불리기도 하면서
그들의 집회가 ‘불과 칼에 의해’ 근절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그들의 무리한 관점과 주장을 서양 교회사 일반의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확정시켜 버린 것은
로마 교회의 힘과 그들의 자위 세력이 가진 영향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에 이런 로마 교회 역사가들의 견해가 역사적 사실에 합치하는 것이라면,
그들이 처음부터 계속 외치는 것처럼 로마 교회만이 유일한 정통 교회가 되고,
유럽의 모든 개혁주의는 마니교를 근간으로 하는
이단 집단의 동류 내지는 그런 이단 집단의 후예들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진술 위에서라면, 오늘에 와서 유럽, 특히 서유럽에
어떤 개혁 교회가 발견된다손치더라도 그들은 최근에
다른 어느 지역에서 유입 발생한 신흥 개혁 교회 집단이 되거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발생한 ‘난데없는 사도들’의 후예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500년 동안 이를 악물고 걸어 왔다며
우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부들부들 외치는 16세기 개혁자들은
또 어디서 나온 ‘천사들’의 후예가 되는 것일까?
‘그냥 어느 날 루터가 로마서 몇 구절을 읽다가 불현듯이 깨달음을 얻어
불같이 일어나 개혁 교회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뽀족하게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자 이 난감하고 한심한 우리 자신의 불합리한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로마 교회 역사가들의 자료와 해석에 목을 맨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희한한 역사적 역설을 수백 년 동안 반복해 왔다.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346-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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