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비잔틴 교회 및 기존 교회사에 알려진 바울인들의 정체
1) 유럽으로 진출하는 바울인들
코카서스 이남, 소아시아 북쪽 지역에 펴져 있었던 아르메니아의 바울인들이 유럽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8세기 중반 콘스탄틴 코프로니무스 황제가 헬라 교회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던 바울인들을 이주시킨 것이 계기가 되었다. 10세기에도 아르메니아 출신의 황제 요한네스 1세 치미스케스가 20여 만 명의 바울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그리하여 그들의 중심은 플로브디프 근교가 되었다.
그들은 발칸 반도에 정착한 불가리아인들과 형제 관계를 맺었고, 그들을 바울인들의 신앙과 사상으로 개종시켰다. 불가리아의 한 왕자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도 했는데 훗날 보고밀인들로 불리게 되는 그 공동체의 원류가 되었다.
한편 당대에 비잔틴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는 불가리아인 용병들을 동원하여 제국의 속령으로 되어 있었던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10여 만 명에 달하는 바울인들을 살해하거나 익사시키거나 교수형으로 처형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야기하기도 했다.
2) 기번의 바울인들에 대한 평가와 서유럽으로 진출 과정
바울인들이 비잔틴의 깃발 아래 트라키아와 불가리아에서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그리스 속주 지역들로 강제 이주된 경우가 있었다. 그곳에서 바울인들은 낯선 사람들이나 현지 토착민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로마, 밀라노,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왕국까지 그들의 사상을 퍼뜨리게 되었고,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로마 교회 신자들은 로마 교회가 ‘마니교’라고 지칭했던 그 사상과 신앙을 수용하게 되었다. 또한 로마 교회의 우상 숭배와 교황의 절대 권력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은 오히려 상당수 주교들과 사제들로 하여금 동조하게 하고 동참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번이 주장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바울인들이 1,200년 이후 프랑스 남부 알비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려 ‘알비인들’을 형성하였다는 견해이다. 그의 기록에 따라 우리는 유럽에서 초기 바울인들이 마주했던 상황을 추측할 만한 충분한 시사를 얻게 된다.
“바울인들의 세력과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유혈 진압을 했는데, 이는 동방 테오도라 황후의 학살을 훨씬 능가할 만큼 혹독함과 범위에 있어 더욱 잔혹하고 충격적이었다. 이로 인하여 ‘알비인들’이라는 새 이름으로 지칭된 ‘바울인들’은 그의 무자비한 폭력, 불과 칼에 의해 근절되고 말았고, 살아남은 소수의 세력은 도피하거나 신분을 감추고 숨어 버리거나 이것도 아니면 로마 교회로 개종하여 흡수되었을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그럼에도 바울인들을 통하여 일어난 불굴의 정신만은 여전히 서방 세계에 살아남아 숨 쉬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들과 교회들, 심지어 수도원에도 바울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로마 교황청의 전횡에 저항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들 신앙의 유일한 토대로 받아들였으며, 이 성경을 공부하고, 배우고, 해석하고, 가르치면서, 그들의 신앙에서 영지주의적인 모든 교리와 흔적을 제거해 나갔던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 교회사 교수인 사무엘 밀러(1769-1890)는 “바울인들과 발도인들은 공통의 기원과 동일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바울인들이 선구 개혁자인 근거
1. “바울인들은 성경을 그들 신앙의 유일한 근거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신앙에서 모든 영지주의 교리의 흔적을 제거하였다.”- 에드워드 기번
2. “바울인들과 발도인들은 공통의 기원과 동일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사무엘 밀러
3. “정착민의 발도인들과 새 정착민인 바울인들 사이에 신학적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브로킷
4. 「진리의 열쇠」(The Key of Truth)의 자체 증언
19세기 미국 감리교 교회사학자 브로킷(1820-1893) 역시 바울인들이 피에몽 계곡으로 모여들어 정착하게 되었을 때를 묘사하면서, 기존 집단인 보두아(피에몽 계곡에 있던 발도인들 즉, ‘계곡 사람들’)와 새로 정착하러 들어온 바울인들 사이에 신학적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 이미 상호간에는 충분히 동화되어 신앙과 신학이 공유되었던 것으로 쓰고 있다.
브로킷은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1,220년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 동안 보스니아 지역에 편만해 있던 바울인들의 계승자인 보고밀인들은 선교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불가리아의 보고밀인들 형제들과 어느 정도 교류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독교 신앙은 순수하고 단순하며 매우 엄격하였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피와 눈물을 아낌없이 드리고 자기 생명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며 진리와 복음을 사수하려고 충성을 다했던 순교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예로서 사도적 신앙으로 현실을 끊임없이 개혁하는 전통을 이어받았음을 알지 못하고 자라났다. 그 정도가 아니다. 아무도 우리 선조들의 신앙과 신학에 관하여 바르게 알려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악랄한 의도를 갖고 모함하고 무고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선조들을 오해하며 경멸하도록 유도했던 자들이 역사의 처처에 깔려 있었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교회사 판 ‘김익순 설화’를 만들어 퍼뜨렸고, 새싹처럼 일어나는 신앙 후예들의 머리마다 이단의 이름들을 써 붙인 카다란 삿갓 하나씩을 씌워 주었던 것이다.
더 아픈 비극은 여기에 끼어 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들의 공작에 홀딱 속아 넘어가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주억거리며 찌그러진 삿갓들을 받아 쓰고 돌아다녀 버린 것이다. 온 난장판이 모두 삿갓 판이 되어 버린 이 비극의 세월이 자못 일천 년이 되어 버렸다면 ---.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최소한 우리의 족보를 다시 살피고, 조상들의 이름자를 되짚어 보며, 선조들의 피와 눈물의 뜻을 새겨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와 자손들은 더 이상 부끄러워해서도 안 되고, 서글퍼 해서도 안 되며, 고개를 숙이고 숨으려 해서도 안 된다. 선조들이 지키고 물려준 복음과 진리의 진면목이 무엇이고, 이것들을 전달할 도구의 고갱이(essence)가 무엇이며, 우리와 우리의 후예들이 반드시 이르러야 할 본말(本末)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밝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p 377
3) 바울인들의 복음 증거와 대조되는 로마 교회의 십자군 운동
바울인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유럽의 복음화를 위해 떠났던 그 동일한 경로를 따라 진행했다. 그들은 죽임을 당면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신자로서의 삶의 모범을 보이면서 그들의 교회를 세워 나갔다.
반면, 로마 교회는 서유럽으로부터 초기 바울인들이 거주하였던 방향으로 되짚어 내려오면서,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칼을 들고 십자군을 동원하여 학살과 착취라는 방법으로 자기네들의 왕국을 확장하려고 했다.
결국 바울인들이 전했던 순수한 복음의 흔적들을 허무하게 지웠을 뿐 아니라 처처에 그리스도교 교회에 대한 악감정을 심어 놓았다.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에서 십자가는 감격스러운 구원의 표징이 아니라 침략자들의 잔혹함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그리스도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런 역사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역사적 역할의 대조 즉, 방향과 활동과 삶의 대조를 그림처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의 표면에서 이기는 자, 성공하는 자, 부와 귀를 모으는 자, 힘을 갖고 주도하는 자, 그리고 승리의 깃발을 세우는 자의 이름은 결코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진리를 수호하는 자의 것이 아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며, 사랑을 품은 자의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역사 속에서 항상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며, 앞으로도 상당히 그러할 것이다.
바울인들과 같은 우리 선조들의 정의로웠지만 가난하고, 진리를 가졌지만 연약하며, 거룩하고자 했지만 모욕과 경멸을 면치 못하였던 흔적이 이를 분명하게 증언하여 준다. 이들은 왜 오늘까지도 오해받으며, 이 순간이 되도록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참고 견뎌야만 했을까? 이 땅 위에서 바른 신앙을 소유한다는 것, 자신과 주변을 개혁하고 새롭게 하는 삶을 산다는 것, 참 교회에 속하고 또 이를 세우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아니하는 고통을 지불하고 감내한다는 것 -- . 이것들이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이들의 역사에서 다시 한 번 에누리 없이 보고 있을 따름이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370 -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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