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6 주일설교
본문: 신 30:15-20
제목: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1.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택하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15절)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19절)
오늘 내 앞에 생명과 복, 사망과 화가 놓여 있다고 하신다.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오늘 내 앞에 놓여 있다고 하신다.
내가 택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된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무엇을 택하였느냐
오늘 교회 백성 이스라엘은 무엇을 택하고 있느냐
생명과 복을 택하지, 사망과 화, 사망과 저주를 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에는 조건과 행함과 책임이 따른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거룩함의 열매는 영생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2-23)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먹으면 죽으리라 하였음에도 선택하고 사망에 이르렀다.
그 죄책을 후손들에게 그대로 넘겨 주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망에서 건져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문제는 생명과 복을 선택하고서는 그에 따른 조건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과 복을 구하느라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고 탑을 밤새워 돌고 정한수 떠놓고 새벽에 비빈다.
금식기도 하고 철야도 하고 고행도 한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사58:3-5)
사람들은 금식하면서 하는 이들을 보시라.
종교적인 행위와 형식을 잘 지키면서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호와가 그 금식을 기뻐 받으시겠느냐 하신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6-7)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8)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어떤 것이라고 하시는가?
흉악한 결박에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고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라고 하신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골육(부모와 자식,형제자매,가까운 혈족)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하신다.
왜? 그 선하고 공의로운 일들이 금식일까?
내 쓸 것을 줄이고 금하여야 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면, 네 병들고 아픈 몸이 급속히 치유된다고 하신다.
사람들은 병원에다 돈을 갖다 바치고 의술에만 의지하는데, 여기 급속한 치유법이 나와 있다.
이 기뻐하는 금식은 또 네 빛을 새벽 같이 비치게 하고,
그것이 바로 네 공의가 앞서 행하는 것이라 하시며,
그러할 때 여호와의 영광도 그 뒤에서 호위하게 한다고 하신다.
빛이 되고 공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호위하는 놀라운 금식의 행위들이다.
하나님은 이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다시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0-11)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움직이고,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해주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된다고 하신다.
내 인생이 낮과 같이 밝아지고 확 달라지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다.
그뿐인가? 주리고 괴로워하는 자를 네가 돌보면,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할 것이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해주고,
네 뼈를 견고하게 해 줄 것이다. 여기에 또 건강하고 튼튼해지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내 환경이 물 댄 동산 같이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이 된다고 하신다.
하버드 의대팀 연구 결과,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면역력이 높고 건강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 기뻐하는 금식과 얼마나 먼 삶을 살았는지요.
내 어둠을 밝히고 뼈를 견고하게 하며 치유를 급속히 하기 위해
영혼의 평안을 얻기 위해 돈과 정력을 쏟지만, 별 효과가 없지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착한 행실이 사람 앞에 비치는 빛이 되게 한다.
그러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천사가 이방인인 고넬료 가정을 찾아 왔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12)
그 선한 행실들이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게 될 거라 하신다.
네게서 날 자들도 너를 본받아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다.
그래서 너를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할 것이다.
사람들에 의해 오래동안 황폐된 곳, 파괴된 기초들이, 이 비추는 빛으로, 선한 행실들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으로, 다시 세워진다는 말씀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무너진 데를 보수하고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방법이라고 하신다.
황폐하고 기초가 파괴된 원인이 이 금식행위들의 부족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지 않았기에
유다가 망했다고 한다.(22장)
다윗이 헤브론에 올라 한 일이 바로 이러한 일들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를 흑암 중에 빛이 되게 한 것은 이러한 일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헤브론에 오르게 하신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게 해준다.
생명과 복을 구한다면 이 이사야 58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유념하고 명심하자.
2.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그를 의지하라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6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네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한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19-20
생명과 복을 선택한 사람이 행해야 할 일이고 조건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다른 것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은 여기서부터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길로 행하며
세상이 원하고 내가 원하는 길로만 가는 사람들은 전혀 관계가 없는 말씀이다.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성경을 덮어 놓고 살고,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
좀 들어 알더라도 자기의 길과 행위를 가는 데 있어서 조금도 고려 사항이 아닌 사람,
이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여호와를 사랑하는가? 그의 말씀을 청종하는가?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이 사항들에 문제가 있다면, 그는 복과 생명을 기대할 수 없다.
복과 생명을 선택했을지라도 그가 받을 것은 사망과 화와 저주이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마음과 생각을 아시고 시작과 종말을 동시에 보시는 분이시다.
그 순결함과 거룩함 앞에서 죄는 그냥 드러나고 숨기고 감추는 것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부르며 사랑하는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인 사람,
그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처세술을 청종하는 사람,
하나님보다는 사람과 재물을 더 의지하고 그에 좌우되는 사람,
그 사람은 생명과 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들로, 유대 성전과 회당, 로마 교회 성전들은 오랜 세월 가득 찼고,
현대 교회들도 그에 뒤질세라 그들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마음과 뜻을 다해 세상과 일과 재물을 사랑하고 있다면 돌이켜야 한다.
복과 생명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한다.
성경을 읽지도 않는 사람은 듣는 것부터 청부터 이미 하지 않는 사람이다.
‘청’하지 않는 사람이 ‘종’할 리 없다. 하나님과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할 수 없다.
내 마음과 손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참고서인 경건서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어떤 환경에도 위기에도 그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믿음은 전적 의탁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없어질 것들이고 썩어질 것들이다.
하나님과 말씀과 영혼만이 영원하다.
3.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이러한 단호하고 결정적인 선언을 듣고도
마음을 돌이켜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을 쫓아가서 절하고 섬기다가 반드시 확실하게 망하고 말았다.
포로로 끌려가고 모든 나라에 흩어지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하였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서도
교회는 다니면서도, 여전히 다른 신들을 마음 속에서는 절하고 섬기고 있다.
돈 신이요, 출세와 성공의 신이다. 부자와 축복의 신이다.
교회는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곳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주님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곳이다.
교회는 말씀학교여야 한다.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도, 로마 교회의 화려한 성전들도, 예식은 있었지만 말씀은 없었다.
살아 있고 영원한 말씀,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말씀이어야 한다.
영이 되고 생명이 되는 말씀이어야 한다.
그 말씀과 영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있을 수 없고 사망과 저주와 화가 있을 뿐이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
그 교회는 이미 음부의 권세가 이긴 교회이고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내 충성된 중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계2:13)
유대 교회가 그랬고, 로마 교회가 그랬고, 현대 교회가 그러하고 있다.
진정으로 생명과 복을 원한다면,
참으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그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마음을 돌이켜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망하고 살 날이 머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말씀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
성경을 멀리하는 자, 하나님을 멀리 하는 자이다. 입술이 뭐라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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