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8/13 주일설교,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롬 3:21-26

강대식 2023. 8. 13. 14:00

2023-08-13 주일설교

본문: 3:21-26

제목: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1.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3:21)

 

율법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기록하여 주신 책이다.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7:12)

 

그래서 이 거룩하고 의로운 율법의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10:5)

 

모세가 기록한 율법은 레위기 18:5이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8:5)

 

문제는 이 율법을 받은 사람 중에 그 의를 다 행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7:1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7:18-19)

 

사도 바울은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다가 멸망을 당했다.

 

하나님께 열심인 것과 하나님의 의로 사는 것과는 별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열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의로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또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 받은 줄로 착각하고 천국을 따논 당상으로 여긴다.

 

인간이 만든 율법의 지식, 성경의 지식은 자기 의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율법 지식을 그 성경 지식을 최고로 여기고 안심한다.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가 하나 같이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소위 개혁주의도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다. 자기들은 올바른 지식을 따르고 있다고.

 

행함은 믿음에서 나와야 하고 그 믿음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로 선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이어야 한다.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율법 지식이나 교리 지식이나 하나 같이 구원을 착각하게 만든다.

이신칭의 교리를 깨달았으니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 역시 바리새인의 의일 뿐 그 의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아브라함도 단지 율법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4:18-22)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은 우리도 위함이었다.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 것이다.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도 위함이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육체는 없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이다.

이 율법이 초등교사(몽학선생)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인도하는 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초등교사 아래 있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다.

 

그 믿음이 올바른지 여부는 오직 한 가지로 밖에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7:20)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그들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의 지식으로 교리로 율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7:18-19)

 

주신 믿음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분이셨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로 오시는 분이셨다.

창세기 3:15에서부터 그분이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줄곧 예언하여 왔다.

이사야 53장은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구원 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 율법 외에 한 의로 보내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았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의 복은 바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구원의 복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3:14)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2)

 

하나님의 의가 누구나 차별 없이 임하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이다.

아무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세력을 가지게 되면 그 세력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도 쉽게 만들어 낸다.

로마교회가 그랬고 이를 개혁한다는 교회도 5백년 동안 그렇게 했다.

 

교회만 오면 되고, 영접기도 한 번 따라서 하면 된다.

간단한 교리 공부 좀 하면 성숙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이 보장되었다고 한다.

 

믿음의 지식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님에도 믿음의 지식만 좀 있으면 된다.

변화는 없어도 되고 성숙은 없어도 그만이다.

여러분, 지식으로 교육으로 사람이 변화되고 성숙하는 것 보았는가?

 

소위 예수 믿고 여러분, 얼마나 변화의 열매가 있었는가?

믿음이 오면 회개부터 하게 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는 못된 나무가 좋은 나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느냐 나쁜 열매를 맺고 있느냐 그 열매로 판단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열매는 맺지 못하고 나쁜 열매만 맺고 있다면,

그는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것이다.

그가 지식으로 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의 구원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는 것은 교리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약속된 성령을 받아 그 성령으로 믿을 때만 그러하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말씀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되어야 한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가 되어야 한다.

 

아무 변화도 열매도 없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한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고, 그 의를 믿음으로 받은 사람이,

어떻게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인가?

 

변화의 열매가 없다면 거짓 목사이고 거짓 성도일 뿐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지 못하였고 회개 이전 상태일 뿐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그 믿음의 진위를 판단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말뿐이고 지식뿐이고 교리뿐인 것이 아니다.

이신칭의가 종교개혁 교리다? 루터의 발견이다?

 

웃기지 말아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교리는 로마서 앞 부분만 읽어도 다 아는 교훈이다.

그 교리 지식을 새롭게 지식으로 책으로 전파했다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

 

여러분, 교육으로 지식으로 사람이 사회가 세상이 바뀌는 것 역사상 보았는가?

지식쟁이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그 지식으로 특권과 이익을 누릴 뿐이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교리 지식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의 변화된 성품과 능력으로, 삶으로,

민족과 사회와 세상이 충격을 받고 놀라서 변화된 것이다.

자기들의 목숨과 재산을 다 뺐겨도 놓지 않는 그 믿음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로마제국이 초대교회를 본받고 변화 되었는가?

교황 세력을 키웠을 뿐이었고, 그들은 초대교회 전통을 이어받은 발도인들을

밞고 또 밟아 죽이고 학살과 화형과 고문으로 말살하려고만 하였다.

그러면서 교황 세력의 교회는 화려한 교회 건물을 짓고 수를 늘리고 탐욕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면 이를 개혁한다고 나선 개혁주의자들은 정말로 교회를 개혁하였는가?

나도 그들이 개혁한 줄 알고 16년 동안 청교도 책들에 묻혀 살았다.

발도인들의 참 교회 역사를 알고 나서야 이제야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다.

 

루터 칼빈 그리고 그들의 스승인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전통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초대교회의 전통과 영성과 살아 있는 믿음을 이어온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로마교회 교황 세력들에 의해 쫓기고 쫓겨 알프스 높고 험한 피에몽 계곡에 살면서도

오직 선교와 복음으로 유럽 전체를 13세기에는 폭발적으로 변화시키고 르네상스를 낳았다.

 

그 바탕과 여파로 16세기 종교개혁이 문서로 성공한 것이지,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뿌리를 이어받은 발도인들을 찾지도 않았고

소문을 듣고 찾아 왔을 때 그들은 오히려 알량한 지식으로 가르칠려고만 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가? 머리 숙이고 배워야 할 자들이 가르치는 망발을 하였다.

더 안타깝고 한심한 사실은 어렵게 발로 뛰며 피땀 흘리며

참 교회 역사를 발굴하여 알리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루터 칼빈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 발도인들을 겨우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준비한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다.

그들을 머리로 하는 개신교 5백년 역사가 정말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로마교회 교황세력이 맺은 열매와 다른 열매를 맺고 있는가?

기독교국가라는 유럽과 미국이,

그 안에서 세력을 잡고 있는 개혁교회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초대교회를 이어받은 참 교회 역사는 끊어진 적이 없다.

우리가 루터와 칼빈에 속아, 그 개혁주의 세력에 5백년 동안 속아,

초대교회의 참된 뿌리와 영 줄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발도인들의 역사를 통해 이를 되찾고 이를 이어가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우리는 보여주어야 한다.

그 믿음의 열매를 보여주고, 맛보아 알게 해주는, 성도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정말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죄 사함과 주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해야 한다.

 

3.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이다.

십자가의 피가 없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죄가 가로막혀 바리새인의 의로는 개혁주의의 의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없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시고 그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쏟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는 곳이고, 죄의 속량이 실현되는 곳이고,

비로소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보좌인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되는 줄을 확실히 알게 된다.

할례자도 이방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인 율법을 비로소 굳게 세우고 지켜 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