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이며, 그분의 뜻이 역사의 열쇠가 되는 우주의 주권자이심을 믿는다.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존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도 독립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심을 믿는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처음과 마지막을 아심을 믿는다.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며 보존하며 통치하며 명령하심을 믿는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완전히 드러날 것임을 믿는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하나님의 주권을 전횡적이며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주권으로 이해할 때, 바로 이 주권이 교리적 칼빈주의의 정수가 된다. 벤자민 워필드는 예정론에 대한 그의 논문에서 말한다. “성경 기자들은, 사건의 과정과 결정과 그 모든 결과들이 의로우며 거룩하고 신실하며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보증과 확신 안에서 끊임없이 그들의 위로를 발견했다.-- 신적인 예정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바로 이것을 통해서 가장 은혜로운 행위로서의 예정이 비롯되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삼위 하나님이다. 즉,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성적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 그 자체인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 버렸다.
개혁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만물을 향하여, 모든 피조 세계에 대하여, 모든 피조물들의 노력에 대하여, 그리고 신자의 삶의 모든 국면에 대하여 포괄적이고도 주권적이며 부성적인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의 지배적인 사상은 바로 창세기 장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이라는 말씀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오직 권리와 권세만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주권적이고도 은혜롭게, 오직 언약의 방식으로만 스스로 의무에 묶이시고, 언약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지신다. 물론 그것은 제1원인이시오 만물의 궁극적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손상시키지 못한다. 우주는 우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주권적인 법칙에 의해 통치될 뿐이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존재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오직 의무만 가지고 있을 뿐 청구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을 거스르는 그 어떤 행위도 심판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국면에 대하여 법을 제정하시고는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을 다 동원하여 예배를 통하여, 매일의 삶을 통하여, 매 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개혁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의 철저한 특징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삶을 ‘코람 데오(coram D대) 즉,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론 즉 하나님에 대한 교리(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성적이며 주권적이신 하나님)는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이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들을 모든 교리를 하나님 중심으로 정의한다. 죄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독하게 혐오스러운 것이며,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에 지극히 훌륭한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만유 가운데 만유로 계시는 곳이니 영광스러운 곳이며, 지옥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진노를 나타내는 곳이기 때문에 참으로 지독하게 끔찍한 곳이다.
성경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교리서인 바울 서신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은혜나 신앙이나 계명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다. 로마서에 등장하는 위대한 신학적 진술들은 대부분 ‘하나님’으로 시작된다.
칼빈주의자로서 우리는 하나님께 푹 빠져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아름다움과 거룩하심과 은혜에 압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그분의 임재를 간구하며, 그분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오직 하나뿐이다. 곧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께 영광돌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최대 목적이다.
잃어버린 자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 왕국의 도래를 가져오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사회의 정화는 천국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일을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성경 공부와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 조엘 비키, 『칼빈주의』, pp 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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