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중생의 기적은 자아사랑 밑에 있는 도덕의 뿌리이다 / 존 파이퍼

강대식 2012. 10. 24. 21:14

에드워즈는 심지어 그 자체로 악하지 않으며, 행복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중립적인 자아사랑도 단지 인간적이며 자연적 특성일 뿐이라고 못박아 말합니다. 중립적인 자아사랑은 영적이지 않습니다. 중립적인 자아사랑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중립적인 자아사랑은 특별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에드워즈는 어떤 특별한 구원과 변화시켜 주는 은혜가 없으면, 즉 성령의 각성시켜 주는 사역이 없이 자아사랑만으로 행동하게 되면, 자아사랑은 불가피하게 하나님의 영광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적인 유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단순한 자아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은 맛보지만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는 맛보지 못합니다. 에드워즈는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만큼만 그리고 그 동안만 자기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것은 매우 신앙적이기는 하지만 참된 도덕은 아닙니다. 에드워즈는 이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위선자의 기쁨과 참된 성도의 기쁨 사이의 차이이다. 위선자는 자신을 기뻐한다. 자아는 위선자의 기쁨의 첫 번째 원천이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을 기뻐한다 ...... 참된 성도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들의 영광스럽고 바람직한 특성에 대해 달콤한 생각을 가지며 즐거워한다. 이것이 참된 성도들의 기쁨의 근원이며, 즐거움의 원천이다.... 그러나 위선자는 반대의 순서를 취한다 ...... 위선자들은 먼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좋아하며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러한 것들을 좋아한다.

 

중생은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영혼 안에서 행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로서 사람의 영혼에 실재적이며 그 자체로 즐거움의 대상이 되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회심하거나 성화될 때 사람 안에서 변화되는 것은 자기 행복에 대한 사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대한 사랑의 추구 대상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자아사랑은 이제 참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영적이며, 초자연적인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자아사랑은 이제 하나님께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 존 파이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pp 164-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