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편을 쓰는 목적은 참신앙보다 더 문제 되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 시편은 참경건한 삶의 영광과 유익을 찬양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입니다. 다윗은 이 점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로 시작해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로 시편을 마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벌써 여러 번 이것을 반복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중대한 주제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축복 아래 사는 삶의 중요성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하여 이런 격려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신앙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러 가지 생각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경우,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동떨어졌으며, 그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이 구절들에 비춰 보았을 때 정 반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이 사실로 시작하여 참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알립니다. 참신앙은 하나님에 관한 것을 아는 것이 아니며 삶에 관하여 어떤 전망을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것들은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본질은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그분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84: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없다고 말합니다. 참신앙은 도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을 종교의 목적으로 삼았을 경우는 신앙의 중심을 박탈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곳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아는 것 없이, 기독교의 유익에 관하여 고려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곳은 제단입니다. 희생의 제단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단 위에 올라간 희생물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여호와께서 ......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렸도다”(사53:10). 요한복음 14:6에는 예수님이 친히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능력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여기서 대로(ways)라고 사용된 단어의 참뜻은 “만들어진 길” (a made road)입니다. 심사 숙고하여 만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대로를 만든”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 로이드 존스,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 pp 7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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