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들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제물과 제사를 하나님의 전에 바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올바른 태도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지자들의 책망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물과 제사를 오용하며 남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물과 제사를 오직 외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오늘은 제물과 제사를 드리는 날이므로 가서 제사를 드려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제물과 제사를 바쳤지만, 차라리 집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것을 전적으로 형식적이며, 기계적인 태도로 드렸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인가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는 데도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종교적인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한 가지 일일 뿐이야!". 그리고 제물을 드린 후, 자신들은 공로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시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됐어! 하나 님의 전에 제물과 제사를 드렸으므로, 우리는 용서받았고 예전처럼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들은 제사가 자신들을 위해 공로를 얻게 했으므로 자신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악해져서 자신들이 가져온 제물과 제사로 하나님에게 유익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예배를 드림으로 공로를 얻는다고 느끼지 않는가? 주일 아침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예배를 마쳤으므로 이제 그들은 가서 자신들이 원하는 일들 곧, 가족에게 펀지를 쓴다든지, 신문을 읽는다든지, TV에서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등등의 일들을 한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다녀왔으므로, 모든 것을 다 마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은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것에 불과했으나 그들은 예배가 공로를 이룬다고 믿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지요. 우리는 예배에 참석합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과 그의 전에 형식적으로만 나아가면서 하나님에게 유익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보다 10배나 더 나쁜 것이다.
“예배를 드렸으므로 우리는 참으로 선한 사람들이지요”. 일주일에 한번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럭저럭 우리는 하나님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문제였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태도와 자세는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려야만 한다고, 하나님의 전에 가야 한다고 설득 당한다. 따라서 교회에 가면 큰 희생이나 치른 것처럼 느낀다.
사람들의 문제는 종교를 자기 스스로가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중심이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참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 자신들이 모든 것을 주관하며, 결정한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이것이 이들에게 주어지는 책망이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된 태도로 행하여졌다는 것이다.
- 로이드 존스,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 pp 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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