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이여’라고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 진정으로 존재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께 우리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고백하여야 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주는 나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의 합법적인 소유자이자 통치자이시고, 하나님과 우리가 맺은 언약에 의해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관계를 영원히 지속하리라는 결단 속에서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는 큰 기쁨으로, 하나님께는 감사한 마음으로 말해야 한다.
“내가 주를 찾나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자기 하나님께 구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을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일로 여겨서 구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귀어야 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구하여야 한다.
“여기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그가 그곳을 그렇게 여긴 것은 그 곳이 광야였기 때문이 아니라 법궤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 말씀과 성례전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 이다. 이 세상은 고단한 땅(원어는 이런 뜻이다)이다. 이 세상을 통과해 가는 경건한 자들에게도 이 세상은 고단한 땅이다. 이 세상은 눈물 골짜기인 것이다.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앙모하나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자,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는 그의 소원은 극히 강렬해졌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이 시내를 갈망하듯이, 그는 몹시 목이 말라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였다. 하나님의 임재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그의 갈증은 채워질 수 없었다. 그가 다시 자유롭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예배를 드리게 될 때까지는 그의 갈증은 계속될 것이었다. 은혜를 받은 영혼들은 이 세상을 거룩한 경멸로 내려다보고, 하나님을 거룩한 소원으로써 올려다본다는 것을 명심하라.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그의 간청은 그가 성소에서 주를 보았던 것처럼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적인 예배를 통한 은택을 박탈당하였을때, 우리는 우리가 성회에서 누렸던 것과 같이 지금 있는 이곳에서도 하나님과의 교통을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애써야 한다. 골방은 작은 성소로 변할 수 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전능자의 환상들을 보았고, 요한은 밧모섬에서 전능자의 환상들을 보았다. 우리가 홀로 있을 때에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의 영광을 보고자 하는 것은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고자 하기 위한 것이다(고후3:18), 다윗은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았듯이”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를 보았듯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속성들과 완전함들을 믿음으로 봄으로써 하나님을 보게 된다. 다윗은 여기에서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봐온 경험들을 회상하면서 기뻐한다. 은혜받은 영혼들이 성회에 참석하여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 그의 권능과 영광을 보는 젓이다.
- 『메튜 헨리 주석』, 9권, 시편1, pp 73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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