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을 위한 투쟁은 엘리자베스 통치 말년에 시작되어 17세기 초반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청교도들은 잉글랜드에 일요일을 주었다. 하루 전체를 예배와 교제를 위해 쓰도록 한 것은 엄청난 유익이었다.
무디(D. L. Moody)는 청교도 전통을 따른 사람이 아니지만 오늘날 주일 문제의 실제적인 중요성을 예시하기 위해 그의 말을 인용한다. “내게 안식일을 내던진 나라를 보여 주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부패의 씨앗을 품은 나라를 보여 주겠소.” 복음의 원수인 볼테르(Voltaire)는 “기독교를 죽이고 싶으면 일요일을 폐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쇠퇴하는 기독교의 회복은 주일의 회 복과 동일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패트릭 콜린슨(Patrick Collinson)의 주장이다. “초기 청교도 안식일주의의 핵심은 넷째 계명이 창조에서 기원한 도덕법이며 모세법보다 먼저 시작됐다는 확신이었다. 일요일을 기독교 안식일로 보는 것은 교회의 전통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도들을 통해 정한 것이라고 변호되었다. 또한 안식일주의는 하루가 노동이나 게으름 혹은 레크리에이션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온전히 공사(公私)간의 종교 활동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확신을 낳았다.
니콜라스 바운드(Nicholas Bownde)는 쉬라는 명령은 도덕적이고 영구적으로 준수해야 할 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주일날에 공부, 세상 비즈니스, 사격, 매(鳥) 놀이, 테니스, 펜싱, 볼링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손에 활과 화살을 쥐고 교회에 와서는 안 된다.”
존 웰즈(John Wells)는 1668년에 낸 책, <실제적 안식일주의자>에서 주장한다. 주일날의 스포츠나 레크리에이션은 성경 말씀의 단맛을 앗아가고 영적 자비들을 천박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자연의 법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배정되고 성별된 시간에는 갖가지 노동과 쾌락에서 완전히 떠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주일의 핵심은 다른 날과 성별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날짜를 정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 날을 정하시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날을 준비해야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십자가에 마지막까지 있었고 주님의 무덤에 제일 먼저 가지 않았는가? 웰스는 주일의 즐거움을 이렇게 강조하였다. “성도들만큼 기쁨을 누리기에 적합한 자가 없고, 안식일만큼 더 기쁜 날도 없다”(267쪽). 이 말을 지지하기 위해서 그는 시편 118장 24절을 인용한다.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그는 아침과 저녁 예배 사이에 ‘달고 거룩한 말씀’에 열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일 준수에 관한 전형적인 권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기도와 묵상으로 주의 날을 준비하라. 스윈녹(Swinnock)은 말한다. “당신이 토요일 밤에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 두면 주일 아침에 주님에게서 도로 찾게 될 것이다”.
“정시에 자고 주일에 졸지 않도록하라”.
2. 가장들은 자기 가족들을 주일 아침에 늦지 않게 모으고 하루 종일 영적 교훈을 모두 충족하게 받도록 준비시키라.
3. 가장들은 설교 말씀을 가족들이 기억하도록 하라. 그리고 식사 때 자유로운 토론을 하게 격려하고 설교의 대지들을 반복하게 하라.
4. 주일날에 받은 가르침과 은혜들을 주중에도 지니도록 하라.
청교도 주일 교육의 장점은 주일에 대한 즐거움과 열정의 표현들에서 드러난다. 주일을 잘 보내는 데서 오는 유익은 매우 크다. 토마스 왓슨은 이것을 ’영혼의 장날’ 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다음 인용에서 왓슨이 주일에 대해 가졌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안식일은 영혼의 장날이며 최선의 시간이다. 이날에 주님이 무덤에서 일어나셨고 성령이 땅에 강림하셨다. 주일은 향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의 달콤한 향수로 뿌려진다. 이날에 천사들의 음식인 만나가 떨어진다. 이날은 영혼의 축제일이다. 이날에 은혜가 작용한다. 다른 날들은 땅에 대한 날이고 이날은 하늘에 대한 날이다. 주중에는 짚을 거두고 주일에는 진주를 거둔다. 그리스도는 이날에 영혼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변모의 영광을 보여 주신다. 이날에 주님은 자기의 신부를 데리고 포도주 저장실로 가서 그의 사랑의 기치를 세워주신다. 그리고 신부에게 최상품의 포도주와 석류 주스를 따라 주신다(아2:4,8:2). 주님은 주로 지신을 주일에 더 많이 계시하신다.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었다(계1:10). 그는 이날에 하늘로 이끌려 갔다. 신자들은 이날에 영혼이 고조된다. 하나님과 함께 걷고 하늘의 교제를 맛본다(요일1:3). 이날에 거룩한 사랑이 깨어나고 은혜의 잔고가 올라가며 부패가 줄어들고 사탄이 말씀의 능력 앞에서 번개처럼 떨어진다. 그리스도는 안식일에 대부분의 기적을 행하셨다. 이러한 기적은 지금도 일어난다. 죽은 영혼들이 일어나고 돌과 같은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렇다면 이날을 우리가 얼마나 존중해야하겠는가! 이날은 루비보다 더 귀중하다. 하나님은 주일을 다른 날 위에 올려놓으시고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셨다. 안식일에 우리는 천사들의 일을 한다. 우리의 혀는 하나님의 찬송에 맞추어진다. 지상의 안식일은 우리가 하늘에서 체험케 될 것으로 소망하는 영광스런 안식과 영원한 안식에 대한 예표이다. 이날에는 하나님이 성전이 되시고 어린양이 그 성전의 빛이 될 것이다(계21:22-23).”
- 에룰 헐스,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pp 19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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