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전 7:13-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토마스 보스톤이라는 유명한 청교도는 이 말씀으로 한 권의 책을 썼다.
제목이 <내 몫에 태인 십자가>(Crook in the Lot)이다.
“삶을 찌르는 가시와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는 분들이 읽으면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서 굽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몫으로 주신 십자가를 말한다.
고난 중에 있는 환경, 관계,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되는 곤고한 날들을 말한다.
우리는 원치 않는데, 우리는 벗어나고픈데, 그 짐이 벗겨지질 않고 지속된다.
그것이 곤고한 날들이고, 그것을 행하시는 분이, 굽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능히 곧게 하실 수 있다.
고난은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이고, 하나님만이 곧게 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굽은 것에 대하여, 삶을 찌르는 가시와 고통에 대하여, 분노를 하고
그 굽게 하신 분께 원망하고 대적하게 된다.
(9절)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내 몫으로 주신 십자가, 굽은 것을,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내 관점으로, 남과 비교하는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분하고 원통하고 마음의 평정을 가질 수 없고, 해결이 아니라 더 꼬이게 만든다.
고요하고 만족할 만한 심령 상태를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굽게 하신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고, 그 고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을 땅에서 하늘로 바꾼다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관점을 땅에서 하늘로 바꾸지 않고서는 마음의 평정도 해결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관점을 바꾸는 일은, 우리의 이성과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데 관건이 있다.
또 이 믿음은 말씀의 빛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형성이 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그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나고 형성이 된다.
나의 고난을 바로 보고 거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와 의도들을 보게 되는 것은 말씀의 빛으로만 가능하다.
나에게 닥친 고난들을, 오래 지속되는 괴로움들을, 말씀에 의한 믿음의 눈으로 보고
그것들을 숙고할 때에만 그것들에 대한 바른 관점, 하늘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
그 관점을 가질 때에만 격하게 요동치며 솟아오를려고 하는 분노와 원망을 평정할 수 있다.
말씀과 예배와 멀어지면, 믿음도 쫄아들고, 우리의 관점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다.
요셉은 나이 열 일곱에 형통하기만 하던 날에 갑자기 그의 몫으로 굽은 것이 나타났다.
하루 아침에 아버지 야곱에게서 편애와 특권의 품에서 떠나 이국 땅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그것도 형들이 작당을 해서 그를 노예상인에게 팔아먹었다.
요셉이 이제껏 살아왔던 관점으로 보면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예고도 없이 찾아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어릴 적부터 말씀으로 형성된 믿음이 없었다면, 그것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믿음의 관점으로 하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고난을 보고 숙고할 수 없었다면,
아마 그는 우울증으로 폐인이 되거나, 요즘 걸핏하면 굽은 것 한 두가지에 하는 자살을 하거나
절망적인 노예로 소망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고난 중에도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하나님의 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예생활 중에서도, 억울한 감옥살이 중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곧게 하시는 날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날은 13년의 고난 끝에 찾아왔고, 곤고하던 날들이 형통한 날들로 바뀌었다.
굽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고, 곧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내하였지만, 확실히 깨달은 것은 형통이 이루어진 다음이었다.
창45:5-8)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굽게 하셔서 곤고한 날들 중에서도 하나님은 그에게 형통을 주셨다.
노예로서 가정의 총무가 되게 하셨고, 죄수로서 감옥의 총무가 되게 하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합당하게 정하신 그 굽게 하신 것의 목적을 달성하기 까지는
그 굽은 것은 결코 온전히 펴지질 않았다.
억울한 감옥살이에서, 사람을 의지해서 굽은 것을 곧게 펼려고 한 것이 2년을 더 연장케 했다.
창40:14-15)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은 만 2년 후에 굽게 하신 것의 목적을 달성하시고 요셉을 총리로 세우셨다.
창40:23,창41:1)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
그 굽은 것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요셉의 성숙한 믿음이었다.
온 백성을 하나님의 법도인 공의와 사랑으로 통치할 그릇을 만드시는 것이었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는 관점을 알게 하시고
굽은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합당한 목적을 이루는 연단이다.
성경과 굽은 것을 통해 우리의 관점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으며, 그 믿음은 어디에다 쓸 것인가?
예수님의 3년반 공생애 중에 제자들에게 하신 책망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인가?
“믿음이 작은 자들아”이다.
우리가 오랜 교회 생활 중에 이 작은 믿음을 말씀을 통해 키우지 못한다면,
오직 그 목적으로 주신 우리 몫의 굽은 것은 곧게 펴질 날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몫의 굽은 것, 자기 십자가만을 요리 조리 보며 애만 태운다.
어떻게든 스스로 그것을 펴 볼려고 온갖 발버둥을 치며 세월과 없는 자원만 까먹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할 수 있겠는가?
관점의 변화만이 그 굽은 것 속에서도 우리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복종하게 한다.
그것이 믿음의 성장이고, 굽은 것을 펴게 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 굽은 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그 굽은 것의 날들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성품을 견지할 수가 있다.
관점의 변화만이 다음과 같이 찬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능치 못한 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고난을 보는 관점이 땅에서 하늘로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변화된 사람의 고백이다.
빌4:11-12)어떠한 형편에도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3절 말씀은 12절의 단련을 받은 사람의 귀결이다.
12절 없이 13절은 있을 수 없다.
모세의 40년 광야의 굽은 날들은 12절의 배움의 날들이었고,
모세의 쓰임 받은 형통한 날들은 13절의 날들이었다.
굽은 40년이 곧은 40년을 가져왔다.
다윗에게서도 우리는 동일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의 관점이 굽은 것의 날들을 통해서 얼마나 성숙하게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처량하게 쫓겨가는 다윗을 향해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저주를 퍼붓는다.
돌을 던지며,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라고 한다.
옆에 있던 아비새 장군이 말한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사울왕도 죽이려 했다.)
다윗이 손짓만 하면 아비새가 그 앙갚음을 해줄텐데 그렇게 하질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개 갚아 주시리라
시므이의 저주만을 보면 그는 아비새의 칼에 당장 죽어야 할 굽은 것이다.
아비새는 그의 관점에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다윗의 다른 점은 그 굽은 것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본 것이다.
말씀의 빛 속에서 성장한 그의 믿음이 이 선택의 순간에 위력을 발하는 것이다.
아비새는 그 저주에 분노로 폭발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평정을 유지한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고 한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고,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실 것을 바라본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의 저주에 폭발하는 아비새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 사람의 저주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인내함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선으로 갚아주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다윗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굽게 하신 목적을 알고 그 뜻에 복종하고 인내하며 성숙하고
처분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찌르는 가시와 고통의 굽은 것들은,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감정으로 우리의 판단으로 보는 한,
그곳에는 평화와 해결책이 없다.
우리의 죄로 오는 굽은 것이 있다면,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없는 고난이 지속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눈을 하늘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성경을 통해, 우리의 거울과 경계로 주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그 뜻에 순종하고 인내하기를 배워야 한다.
어떠한 형편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가야 한다.
해결되지 않는 고난들은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이 목적을 달성하시고 그 굽은 것을 곧게 하실 날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묵묵히 그 십자가를 지고 요동하지 않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굽게 하신 하나님이 능히 곧게 하실 날이 올 것이다.
요셉의 날들이 모세의 날들이 다윗의 날들이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가시와 고통에 시달리며 훈련받은 작은 가지들이
하나님의 때가 되면 속히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룰 날들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할 일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는 것이다.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되돌아 보는 것이다. 말씀의 지혜로 되돌아 보는 것이다.
장래 일을 알려고 하지 말고,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선한 목적을 알려고 해야 한다.
우리 몫으로 주신 굽은 것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내하며 성숙을 배우노라면,
하나님은 목적을 달성하시고 선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날이 올 것이다.
어떤 형편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노라면
주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를 괴롭게 한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실 날들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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