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5 가정주일설교, 최초의 선물, 가정

강대식 2013. 5. 5. 17:43

1.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최초의 선물이다.

 

(창1: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가정)를 창조하시고

 

가정은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기초를 이루는 생활단위이다.

기초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운 건물은 무너지거나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얼마 안가 무너지고 힘을 잃게 된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진리부터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이 없고 사람들만 있는 가정과 사회는 바로 설 수가 없다.

경제와 과학의 발전을 자랑하는 21세기지만 가정은 무너지고 사회는 날로 악해가고 있다.

 

왜 그럴까요?

경제와 과학과 정치와 문화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 사람이 문제이다.

 

문명을 세운 사람들은 가인의 후손들이었다.

야발은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발자 돌림이죠?)

 

그러나 종교와 윤리를 세운 사람들은 아벨 대신 주신 셋의 후손들이었다.

셋도 아들을 낳고 에노스라 하였고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운 사람들은 셋의 후손들이었다.

 

가인의 후손들은 경제와 문화(수평)를 자랑한다.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과 제사(수직)를 자랑한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제사를 드렸다.

 

오늘날 사람들은 경제와 군사, 문화와 교육만 세우면 지상 천국을 이룰 줄 안다.

그런데 경제와 군사가 발전할수록 지식이 발전할수록 지상에 지옥이 세워져가고 있다.

인간들이 자기들의 지혜로 세운 바벨탑들은 무너지는 것이 그 운명이고 종착역이다.

 

돈만 있으면 지위와 권력과 명예만 쥐면,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번성할 거 같지만

소프트 웨어 없는 하드 웨어들은 외양만 근사할 뿐 폐허가 된 유적지를 낳을 뿐이다.

속이 텅비고 기초가 함몰되어 가는데 그 위에 세운 건물들이 안 무너진다면 그건 기적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무조건 동물들의 개체수를 늘리라는 뜻이 아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많을수록 죄를 더 많이 짓고 가정과 세상을 어지럽게 할 뿐이다.

셋의 후손이 많아져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가정과 세상은 질서와 축복을 가져온다.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은 200년 동안 600여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부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가장 부유했던 양조장 주인 쥬크 박스(?)의 후손들은 배 정도 되는 1200여명,

그런데 그 중에 300명 정도가 영아 사망, 대부분이 창녀들, 범죄자들이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교회 수, 교인들이 많아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독교라는 조직이 세상을 움켜 쥐고 흔들었던 중세 천년은 암흑시대를 만들었다.

 

지금도 그 환상을 못 버리고, 교회와 지도자들이 세계 기독교 조직을 만들고,

정당을 만들고, 권력을 쥐고 세상을 흔들어 볼려고 한다.

그것은 역사를 모르고 하는 짓이다. 탐욕에 급급하여 참혹한 비극만 반복할 뿐이다.

 

루터가 한 말이 있다.

무슬림 터키족들이 유럽을 침략하고 뒤흔들 때 한 말이다.

“차라리 나는 부정직한 크리스천보다는 정직한 터키인의 지배를 받기 원한다”.

 

기독교 천년이 로마 천년보다 훨씬 더 악하고 잔인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도 겨우 20년 정도 유지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정치 권력을 잡아서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처럼 수평 지향, 옆으로 많이 충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땅과 재물과 사람을 많이 가져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수직 지향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하나님의 통치가, 그 중심인 것이다.

우리 개인의 구원도 사회의 구원도, 수평적으로 도성을 건설함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구원도 사회의 구원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으로 오는 것이다.

 

3. 5대 문화명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들에게 주시는 복이고 명령이다.

(산상수훈도 마찬가지다.)

 

이 명령을,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가인의 후예들이 수평적으로만 적용하다 보니

전쟁과 십자군 운동과 식민지 쟁탈전으로 번져나간 것이다.

 

기독교와 선교를 앞세우며 전쟁과 식민지 수탈을 서슴치 않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고문 도구들을 창안해 내고, 마녀와 이단 사냥의 만행을 저질렀다.

완장부대들만 양산해 낸 것이다. 성직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앞장 섰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렸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재물과 숫자와 힘만 키워서 세상을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릴려고 한다.

그 힘의 논리가 가정에 적용되면, 정복하고 다스리니, 무질서와 가정 파탄을 불러올 뿐이다.

그 힘의 논리가 교회지도자들에 적용되면, 비윤리와 방탕과 뇌물과 권력남용에 빠지게 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것이, 정치든 교회든 종교든 사회든, 만고의 진리이다.

힘은 쥐면 부패로 간다. 힘을 갖기 전에 노래하던 온갖 진리와 명분은 온데 간에 없어진다.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5대 문화명령은 육신에 취하여 악한 나라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에게 복으로 주신 명령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 이 명령의 주인공이 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이지, 문화명령이 먼저가 아니다.

형상의 회복이 먼저이지,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회복된 형상인지 아닌지 우리는 구별해야 한다.

알곡과 죽정이는 구별되어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은 구별되어야 하고, 교인과 그리스도인은 구별되어야 한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적은 사람들은 구별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잡족들이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했다.

거짓 선지자들과 참 선지자들, 거짓 제사장들과 참 선지자들은 구별되어야 한다.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은 구별되어야 한다.

거짓 복음과 참 복음은 구별되어야 한다.

혼잡한 말씀과 순전한 말씀은 구별되어야 한다.

 

가인의 나라와 셋의 나라는 구별되어야 한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는 구별되어야 한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조화를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은 일치할 수 없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다.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은 겸하여 마시지 못한다.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은 겸하여 참여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으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가인의 후예들이 아벨의 후예들을 압도하고 괴롭힐 것이다.

그것도 5대 명령으로 말이다.

주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너희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4. 나부터 형상을 회복해야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있다.

 

가정의 행복과 번성을 원하시는가?

원수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야 한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붙들고 성결한 삶을 살고

주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의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원수 탓만 하고 온통 적중심으로 살아서는 내 마음에 평안도 믿음도 자리잡을 수 없다.

내 마음에서부터 원수와 사탄과 세상과 육신과 죄를 몰아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면 원수도 화목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내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가정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도록 해드려야 한다.

내가 다스리고 정복할려고 해서는 가정의 평화와 번성은 기대할 수 없다.

 

5. 형상을 회복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함으로 가정을 세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길만이 가정의 평화와 번성을 가져올 수 있다.

(엡5: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상하관계에서 경외와 복종이 자리해야 한다.

부부는 돕는 배필로 만난 것이다.

혼자로는 부족하고 외로우니까 서로 도우라고 서로 배필로 주신 것이 부부이다.

(마19:04-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방법을 성경은 말씀한다.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이다. 주께 하듯 복종하라고 하신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함으로’ 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함으로’이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신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고 하신다.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음으로’ 이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신다. (성질대로 감정대로 하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이 명하는 질서이고 방법이다.

어떤 관계에도 ‘주께 하듯’, ‘그리스도가 자신을 주심같이’ ‘주 안에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질서와 방법은 직장이나 단체에서도 상하간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우리 가정에 자리잡아야 한다.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남편과 아내의 마음과 삶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내 육성과 내 감정과 정서가 경외함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6. 경외함이 자리 잡으려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안에서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다투고 있다.

그 갈등은 거듭남의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의 육신의 소욕이 충만하여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소욕을 물리칠 때

사탄은 우리의 마음과 가정을 다스리고 지옥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술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5:18)고 하신다.

 

술 취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리며 육신에 취하는 것을 대표한다.

육체로 충만한 사람은 항상 자기가 중심이고, 자기 의견만 내세운다.

내 감정, 내 생각, 내 결론이 최고이다.

육체로 충만해지는 것은 술에 취한 것과 같다.

 

내가 육신에 취할 것인지 성령에 취할 것인지는 나의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성령의 충만은, 결정의 주체인 내가 육신과 죄의 충동과 감정들을 적극 피하고,

오직 성령과 말씀에 순종함을 택하는 결단의 삶 속에 이루어진다.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그런 뜻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위에서 성령이 쏟아 부어져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성령의 감동과 지시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확신과 소망과 위로를 위해 위로부터도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다.

회심과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역사도 일으키실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7.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 가정을 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본이 되어야 한다.

세상과 교회가, 가정의 달, 가정 주일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운명이 이 가정의 행복과 번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가정을 세우는 진정하고 확실한 방법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거듭남과 회심을 통해, 회복한 사람들이

그 방법을 가르쳐 주고 본을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의무로 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선물로 주신 가정의 품에서 사람들은 안식하고 성숙할 수 있다.

사람은 그렇게 외로움을 혼자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우울증과 자살이 많은 것도 가정이 무너지고 가정의 안식과 평화를 잃은 데서 온다.

대가족제도에서는 없었던 증상들인 것을 보면 핵가족시대의 산물인 것이 틀림 없다.

내 가정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함으로 세우고,

이웃을 대가족으로 품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살고 번성하는 길이다.

 

내 가정, 내 자식들만 잘 키우면 될 것 같지만,

이웃과 사회가 병들고 피폐해지면, 내 가정, 내 자식들도 그 폐해를 고스란이 받을 수밖에 없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크고 첫째 되는 계명과 둘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 가정과 사회가 살 길이다.

(마22:37-39)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의 다른 표현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가정과 우리 자신과 교회를, 하나님을 경외함과 피차 복종으로 세워가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세워가자.

 

이를 위해 성령을 의지하고 구하고 순종하시기 바란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진리인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시기 바란다.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영과 진리로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을 세워가야 한다.

 

오직 순전한 영과 진리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세워가자,

하나님이 복주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