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벧전 4:12-19
1. 이상히 여기지 말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에게,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 곧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난의 불시험이 올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시험이 올 때마다 낙심하고 원망하고 대적하였다.
물이 없어도, 고기와 부추와 마늘이 없어도, 아낙자손과 철옹성을 보고도, 원망 대적하였다.
조금만 부족하고 불편하고 두려워도 원망과 대적으로 치달았다.
어떤 집사님은 부가세미납으로 인해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자 교회를 그만두었다.
사업이 망하니까, 건강을 잃으니까, 자녀가 대학에 불합격하니까, 취직이 안되니까, --
교회를 열심히 다니더니, 고난이 닥치니까, 그만 두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무조건 교회 끌어들이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 전도방법에 문제가 있다.
예수 믿으면 복받고 문제 해결된다고만 믿고 나왔다가 닥친 고난에 실망한 것이다.
기복신앙은 미신이고 사기일 뿐인데도, 그 희생양들이 되고 있다.
고난이 닥칠 때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기복신앙은 놀라고 이상히 여길 것이고,
참신앙은 이상히 여기지 않고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적으로 믿는 것이지, 내 사고방식과 세상 가치관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오직 성경을 통해, 오직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분별해야 한다.
영도 다 믿지 말고 성경으로 분별해서 믿어야 한다.
(은사자들은 흔히 성경 위에 가 있는 것을 본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고난 없는 복과 영광을 말하는 곳이 없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극심한 고난을 겪지 않은 인물이 없다.
아브라함, 욥, 요셉, 모세, 다윗, 바울, 사도들을 보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고 경계이다.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는 것은,
성경대로 믿지 않고, 잘못된 기복신앙, 믿음신학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믿은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신학, 형통신학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광야의 고난과 연단을 통과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으로,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기 전에 반드시 연단하여 그릇을 만들어서 쓰신다.
먼저, 예수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고, 그 의를, 고난의 연단을 통해 성품과 삶에 이루신다.
믿음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구원이 있고, 성품과 삶에서 이루어가는 구원이 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연단은 금광석에서 금을 뽑아내기 위해 용광로의 불로 잡석들을 녹이는 작업을 말한다.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만 순금이 나오는 것이다.
연단의 불시험도 이와 똑같이 우리의 성품 속의 잡석들을 녹이는 작업인 것이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시66:10)
이러한즉, 연단하러 오는 불시험을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 못할 불시험을 주시지도 않고, 당한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2. 즐거워하라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연단의 목적과 그 결말을 알면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한량 없는 은혜 아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존재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즐거워할 수가 없다.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니 당연한 결과이지요.
오직 성공과 성취를 향해 욕심을 내고 달려갈 뿐이다.
연단하러 오는 고난의 불시험은 믿음으로 받아서 인내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 연단을 통해 우리의 잘못된 성품, 잘못된 습관들은 녹아지고 떨어져나가게 된다.
연단의 불시험을 통과하면서, 순금의 성품과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그리스도인을 온전하게 하고 굳건하게 하는 것은 오직 고난의 연단을 통해서이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우리가 장차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우리의 고난은 잠깐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그 잠깐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특권과 영광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하는데도 땅의 것만을 찾는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우상숭배인 탐심을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진노가 나타난다.
진노로 인해 임하는 고난은 연단의 불시험이 아니다.
죄에 대한 채찍질이요 징계일 뿐이다. 불신자들에게는 예비 심판이요 형벌일 뿐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15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21)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고난은 그리스도인이기에 받는 고난이다.
하나님께 그 이름으로 영광을 돌려야 할 고난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6절)
그 치욕적인 고난은 복 받을 고난이요, 영광의 영이 위에 계셔서 함께 하는 고난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14절)
죄로 인한 고난은 회개해야 하고, 복과 영광이 함께 하는 선한 고난은 즐거워해야 한다.
연단의 불시험은 그리스도의 남겨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님은 구원을 위해서는 남겨논 고난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서는 고난을 남겨놓았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선을 행함으로 받는 연단의 고난은 우리를 정결케 하는 고난이요, 교회를 정결케 하는 고난이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5:27)
연단의 불시험은 나를 거룩하게 성화시키는 연단인 동시에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연단이다.
우리 자신과 교회를, 잘 되고 못 되고로 재는 세상의 잣대로 재지 말고,
순금이 되고 못 되고로 재는 거룩과 연단의 잣대로 재자.
3. 의탁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19절)
연단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다.
선을 행하는 가운데 받는 고난이다.
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행과는 다른 것이다.
고난은 불시험이어서, 고통스럽고 슬프고 외로워서, 낙심하고 좌절하기가 쉽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만, 그 작은 가지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신다.
그 때가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라고 하신다.
의탁은 의지하고 맡기는 것이다.
고난 중에 우리 영혼을 의탁할 분은 미쁘신 창조주 밖에 없다.
미쁘시다는 것은 신뢰와 의지에 있어서 신실하심을 의미한다.
사람이나 재물은 우리의 의탁할 곳이 못 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렘17”5-6)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힘을 삼는다는 것은 벌써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났다는 증거이다.
사람 좋아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는 사람이 없고 좋은 일, 물이 없는 광야에 거하는 것이다.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11:28)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시52:7)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49:6-20)
심판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먼저 하신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디에 서리요?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17-18절)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자기 백성부터 하셨다.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사10:12)
성도들에게 먼저 하신 심판은 다름 아닌 연단의 불시험이요, 고난의 연단이다.
성도들을 거룩하고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불시험의 연단을 하실진대
복음을 순종하지 않은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이 오죽하겠는가?
의인들이 이렇게 해서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사람과 재물을 의지하며 마음껒 죄를 지으며 하나님을 대적한 불신자들의 심판이 오죽하겠는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그 종말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1:6-9)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에 따라 복과 저주로 오늘도 임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불의에 대해서는 진노와 저주로, 선에 대해서는 복과 영광으로 갚아 주신다.
불시험으로 연단된 그릇은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축복하신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의인들도 정결케 하기 위해 불시험으로 연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물며 죄를 회개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인들이 받을 불심판은 오죽하겠는가?
마지막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과 영벌의 고통과 목마름의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악인들은 이런 사실을 생각함으로써 회개하고 자기들의 불경건을 고치지만, 다른 악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며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다”(롬2:4,5).
어거스틴,“덕과 악덕은 비록 같은 고난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동일하지 않다. 금을 빛나게 만드는 그 동일한 불은 왕겨가 연기를 내도록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도리깨가 쭉정이를 떨어져 나가게 만드는 동시에 알곡을 걸러내기도 한다. 같은 압착기에서 눌린다고 하여서 기름이 찌꺼기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구정물통을 혼들어 보아라. 그러면 더러운 악취가 풍길 것이다. 이제 향료를 흔들어 보아라. 똑같은 동작이지만, 이때에는 향기로운 내음이 솟아오를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악행에 대해 모두 벌이 가해진다면,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 날 심판할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분께 구하기만 하면 다 주신다면, 탐욕스러운 돼지들만 교회 안에 우글거릴 것이다.
불시험의 연단 속에서도 선을 행하며 그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의탁한 사람에 대한 복이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5-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이 땅에서의 축복은 맛배기이고, 진짜는 저곳에서 영원히 누리는 천국의 축복이다.
악인들도 이 땅에서의 저주는 맛배기이고, 진짜는 저곳에서 영원히 받는 지옥의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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