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12 주일설교, "위로부터 난 지혜"

강대식 2013. 5. 12. 15:01

본문: 약 3:13-18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고보 사도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아래로부터 난 지혜를 구별하고 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과 은사로 받는 참 지혜를 말한다.

이 지혜는 부족하거든 누구든지 구하여 받으라고 사도는 1장 초두에서 말씀하였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선물과 은사로 주시는 이 참 지혜가 다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구하지 않느냐?

이 지혜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무의식 중의 교만 때문이다.

이 지혜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심지어는 이렇게 구별되는 지혜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무지함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위로부터 난 지혜와 아래로부터 난 지혜를 구별하고 구하시기 바란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보장하고 있다.

 

한 노교수가 회의를 하는데 놓여진 종이에 무엇을 쓰면서 입술을 소리없이 움직이더라고 한다. 회의가 끝난 후에 그 종이를 버려두고 갔는데 보니까, “지혜를” “지혜를”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나님께 위로부터 난 지혜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혜를 구하는 방법도 야고보 사도는 말씀해 주고 있다.

(약1:6-8)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믿음으로 이 지혜를 구하고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받은 것으로 살기를 힘쓰는 것이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온다.

그분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는 분이시다(약1:17).

 

1. 위로부터 나는 지혜의 특징은 세 가지이다.

 

(13절)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 “선행”으로 말미암는다. 대화의 선함을 말한다.

활기를 돋우어주고, 치유해주고, 선한 말을 하는 것이 이 지혜의 표시들이다.

이러한 표시가 없는 대화는 위대하게 보일지라도, 자신과 남에게 악을 행하게 된다.

선하지 못한 것은 악이기 때문이다.

 

2) 행함으로 보인다.

생각을 잘 하거나 말을 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행함으로 그 선을 보이는 것이다.

이 지혜를 가진 자들은 생각은 물론이고, 바르게 살고 잘 행동하는 것이다.

 

3) 온유한 정신과 성격을 통해 나타난다.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온유할려면 솟구치는 자신의 분노를 제어해야 한다.

지상에서 가장 온유했던 모세도 므리바에서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 분노를 인하여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분노는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콘트롤하기가 어렵다.

참고 참으며 마음 속에 모여서 쌓여져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이 분노이다.

분노가 나타날 때마다 이 지혜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자.

 

잠언에, 우리가 묵상하며 실천하기를 힘써야 말씀이 있다.

(잠16: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이 지혜의 온유함에는 다른 사람의 분노를 끈기 있게 견디고 참는 것도 포함된다.

내 자신의 분노는 참고 억제하고, 다른 사람의 분노는 끈기있게 견디는 것이 지혜의 온유함이다.

온유함의 실체를 알았으니, 지혜의 온유함으로 이번 한 주간과 남은 생애를 승리하자.

 

2. 아래로부터 나는 지혜의 특징도 세 가지이다.

 

(14-16절)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런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시기와 다툼은 온유와 반대되는 것들이다.

같은 열정인데도 거룩한 열정과 독한 시기는 천사의 화염과 지옥의 불만큼이나 다르다고 한다.

 

1) 시기와 다툼이 있다.

시기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그것은 다툼으로 나타난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자리잡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일으킨다.

시기는 다툼으로 나아가고, 결국은 삶과 관계에 무질서와 혼란을 가져온다.

그 혼란은 모든 악한 일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 결과 악한 열매들을 맺게 된다.

그것이 순서이고, 원인과 결과이다. 결과를 잡을려면 처음을 잡아야 한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사람일수록 헛된 자랑이 많다.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잘한다.

바리새인의 특징이 자기 의를 자랑하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는 것이다.

 

3) 이 지혜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다.

다른 번역은, 세속적, 육적, 악마적이라고 한다.

위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세속적인 원리들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오직 세속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동하고, 세속적인 목적들을 추구한다.

 

은사는 영적인 것 같은데, 오직 세속적인 것이 기준이 되고, 세속적인 것들을 자랑하는 것은,

그 속에 영적인 것과 진리가 없고, 온통 세속으로 그 마음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런 은사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자랑하면서도, 은혜와 겸손이 없고,

오직 씨름꾼 같은 인상만 주고, 삶은 무책임하고 무질서하고 미성숙 투성이라면,

그 사람 속에는 육신의 부패가 세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명한 조짐이라고 한다.

그 기도 자체에 영의 생각이 부족한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으로 기도하고 사느냐, 영의 생각으로 기도하고 사느냐는

생과 사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롬8:6-8)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땅 위에서 난 지혜는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것이 특징이다.

육체에 탐닉하고 육체의 정욕과 욕망들을 채우려고 안달을 한다.

세속적인것들을, 이생의 자랑들을 채울려고 안달을 한다.

초자연적(영적)인 조명을 전혀 받지 못한 동물적인 지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배후에 마귀와 귀신들이 자리잡고 있다.

불신자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그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른다.

그 영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게” 하고,

“세상 풍조를 따르”게 한다.(엡2:2-3)

 

세속적인 원리와 가치 기준들이 마음과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그래서, 세상 풍조를 따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일이 많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마귀들의 지혜를 따르고 세속의 지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3. 위로부터 난 지혜,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에는 아름다움과 열매들이 있다.

 

(17-18절)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맺느니라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과 은사이기에 우리가 구해서 받아야 한다.

그래서 위로부터 난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이 지혜는 세상의 지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가르침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1)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첫째 성결하다.

부정한 것들이나 더러움들이 없고, 어떤 죄들도 허용하지를 않고,

마음과 생활에 성결함을 추구하고 살려고 하는 지혜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고 하신다.

거룩함이 모든 것의 으뜸이고 먼저이다.

 

(고후7: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 약속은,“의와 불법이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요,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의 약속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첫째이고 으뜸이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첫째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 먼저이다.

 

2) 위로부터 난 지혜의 둘째의 요소가 화평이다.

화평은 성결을 따르고 성결을 의지한다.

성결이 화평의 열매를 맺도록 우리는 힘써야 한다.

인자와 진리, 사랑과 공의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성숙이다.

 

화평을 앞세워 성결을 희생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이며,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러나 성결이 화평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또한 반쪽만 이룬 셈이다.

그저 화평,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반도 못 이룬 사람이다.

 

법도에 어긋나는 화평, 연합은 육신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이다.

영적인 화평과 연합이요, 교리적인 화평이고 연합이어야 한다.

성결 없는 화평, 교리가 다른 화평과 연합은 아니함만 못하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와 둘째를 순서대로 요구한다는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하신다.

화평을 심는 목적은 의의 열매, 성결의 열매를 거두기 위함이다.

화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성결은 화평으로 심어 그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32:17)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3) 위로부터 난 지혜의 남은 요소들은 결국 첫째와 둘째 요소의 상세라 할 수 있다.

관용적이라는 것은 재산 문제들에 있어서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않고 온유함을 말한다.

믿음의 선진 가운데는 재판을 해서 소유권을 확실히 하고서는 다 주어버린 이들이 있다.

 

자기 의견을 주장할 때도 부드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비난의 관점에서도 엄격하게 하지 않기를 힘쓴다.

격렬하게 하거나 무섭게 몰아치지 않는다.

 

양순함은 약하고 잘못된, 비난받을 양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양순은 분명하고도 악한 죄를 방치하고 방조하고 죄의 종노릇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양순은 비겁함의 도피처도 아니고, 행동할 줄 모르는 양심의 위장막도 아니다.

 

양순은 진리와 함께 하고 공의와 함께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면들과 동료들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위로나 요청들을 잘 따르는 것을 말한다.

논쟁을 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논쟁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포함한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고 하신다.

긍휼은 친절하고 선한 성향을 지니고 사는 것을 말한다.

선한 열매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잘못을 범한 자들을 용서하며, 선행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편견과 거짓이 없다고 하신다.

편견이 없다는 것은 원어의 뜻으로 의심이 없고 말다툼이 없는 것을 뜻한다.

순전히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비난자와 논쟁자가 되더라도 그 범위를 아주 최소화시키기를 힘쓰는 것을 말한다.

 

거짓이 없다는 것은 위선이나 위장이나 기만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진실하고 열려 있고, 변함이 없고 한결같고, 그리고 모순이 없다.

우리 모두 이러한 지혜의 인도를 받자!

 

우리도 사도 바울 같이 말할 수 있도록 힘쓰자.

(고후1:12)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