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26 주일설교, "하나님은 빛이시라"

강대식 2013. 5. 26. 17:11

본문: 요일 1:5-7

 

1. 하나님은 빛이시다.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이 한 마디 말씀은 하나님의 완전한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전하는 소식”이다.

 

하나님의 모든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빛”이라고 표현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영이시고, 순수하시고 지혜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시다.

그분에게는 어떤 흠이나 불완전함도 없으시다.

 

그분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순수하고 완전한 빛이시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다.

 

이 빛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생명을 주시는 빛이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9-12)

 

이 참 빛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는 혈통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다.

 

이 그리스도의 빛을 영접한 자들을, 성경은, 빛의 자녀들이라고 부른다.

빛의 자녀들은 빛이신 하나님을 닮아 어둠이 조금도 없어야 한다.

빛이시고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 더욱 그렇다.

 

2. 빛의 자녀들은 어둠에 행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어둠에 행하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둠에 행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5:3-5)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6-8)

 

불순종의 아들들이 있고, 빛의 자녀들이 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 이 세 가지는 어둠의 열매들이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는 자들의 특징들이다.

탐욕을 버리지 못하면, 음행이나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것과 똑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탐욕은 보이지 않으면서, 음행과 더러운 모든 죄의 근원이기도 하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탐욕을 못 잡으면, 그때부터 죄는 날개를 타고 제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

 

바리새인들은 겉에 보이는 음행과 더러운 짓은 안하면서도

속에는 탐욕과 방탕, 죄악과 위선이 가득했다.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였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원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탐욕이요, 우상숭배이다.

탐욕은 제1계명,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를 어기는 것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영적 간음이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119:36)

 

빛의 자녀들은 이런 어둠에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이러한 불순종의 아들들이, 어둠의 아들들이 많이 있다.

 

3. 빛의 자녀들은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어둠의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요,

성품과 삶으로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5:6-11)

선(착)해야 하고 의로워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이 열매들은 자연적인 본성으로 맺을 수 있는 열매들이 아니다.

거듭나지 못한 본성의 아담의 후손들이 맺을 수 있는 열매들이 아니다.

 

세상도 이 열매들을 도덕으로 높이면서도 그것은 말 뿐이다.

이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남에게는 이 도덕으로 살라고 하면서 자기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그렇게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다.

‘공자왈 맹자왈’은 입술에서만 놀고 출세의 수단이었지, 통치와 삶의 중심이 된 적이 없다.

 

항상 좋은 지식과 종교는 이 이율배반이 문제이다.

속사람이 성령과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진리를 살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중심에 오시지 않고서는 맺을 수 없는 것이 빛의 열매이고 빛의 행함이다.

 

빛이 들어와야, 빛이 어둠을 몰아내야, 밝아진 속으로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좋은 나무가 되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6)

 

속을 깨끗이 해야 겉도 깨끗해질 수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5-26)

 

무엇으로 속을 깨끗이 하고 나무를 좋은 나무로 만들 수 있나요?

오직 “그 아들 예수의 피”이다.

성령은 이 예수의 피를 적용하여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 아들 예수의 피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

그 피를 믿음으로 먼저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빛 가운데서 행하며 빛의 열매들을 맺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이러한 자들의 모든 죄를 깨끗이 하여 성화를 이루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그리스도의 피로 죄와 싸워 이겨간다.

빛의 자녀들은 착해야 한다. 선해야 한다. 선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고 그분의 뜻을 말씀을 통해 알고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

 

의로워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알고 그 공의가 우리의 성품과 삶 가운데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고 우리도 충성스럽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세 빛의 열매가, 균형과 성숙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욥을 칭찬하신 말씀대로, “순수하고 정직하고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4. 우리의 사귐(이웃 사랑)도 빛 가운데, 진리 가운데, 행해야 한다.

 

빛 가운데 행하면 서로 사귐이 있고

 

사도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함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고 했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1:9-11)

 

빛 가운데, 진리 가운데, 행하는 자들과 우리의 사귐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훈과 진리를, 지나치고 벗어나는 자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하신다.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웃 사랑도, 원수 사랑도, 교훈과 진리와 빛 안에서 이다.

어둠과 악한 일에 참여하면서, 어둠의 열매들을 함께 맺으면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진리와 교리를 희생하면서까지, 연합과 사랑을 하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진리와 교훈을 벗어나서,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보다, 둘째 계명만 앞세우는 사람들은,

동기와 목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다. 탐욕과 불법을 감추고 외식하는 자들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신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라고 하신다.

 

빛과 어둠의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빛이신 하나님은 흑암과 혼돈과 공허의 땅에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빛과 어둠을 제일 먼저 구별하고 나누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빛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한, 우리 빛의 자녀들도, 그분을 본받고 닮아가야 한다.

빛이시고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빛 가운데 행하고, 빛의 열매들을 맺어가야 한다.

 

어둠의 일들은 근처에도 못오게 하고, 악은 그 모양부터 예수의 피로 잘라 버려야 한다.

음행과 더러운 것들과 탐욕들은 헌 옷 벗듯 벗어버려야 한다.

그러한 어둠의 열매 맺는 자들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한다.

 

5. 악인들의 어둠과 구별할 것이, 의인들의 연단과 고통의 어둠이다.

 

다윗은 빛이 안 보이고 그 어두웠던 연단의 시절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했다.

악인들은 자기 의의 불꽃과 영광의 횃불을 높이 쳐들 때,

의인들은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으며 만물의 찌끼 같은 취급을 받았다.

아브라함과 욥과 모세가 그랬고, 요셉과 다윗이 그러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와 같은 흑암 중에 빛이 없는 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준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50:10)

 

여기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는 믿는 자들 중 연단의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말한다.

그 연단의 어둠 중에 있는 자가 의지할 곳은 오직 그 어둠을 주신 여호와와 그 이름 뿐이다.

악인들에게는 환난과 고통으로 갚으시고, 의인들에게는 연단 후에 위로와 영광으로 갚으신다.

 

이어서 이사야 선지자는 악인들의 의지하는 불꽃과 횃불이 맞을 결말을 말씀해 준다.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사50:11)

 

전도서도 말씀한다.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전7:6-7)

 

탐욕과 뇌물로 우매하게 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며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는 소리로 끝날 날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들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여기지 말자.

그 끝에 오는 영광과 축복을 소망으로 붙들자.

 

어두운 연단의 시절을, 오직 빛이신 하나님께 의탁하자.

하루 하루를 믿음과 인내로 즐거워하며 평안함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