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6/2 주일설교, "주의 얼굴의 광채"

강대식 2013. 6. 2. 17:16

본문: 시 80:1-7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 하나님은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이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떼이고 하나님은 이 양 떼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

 

다윗의 시 23편의 찬양이 우리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1-2절)

 

다윗 또한 목자로서, 하나님께서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고 이끌어 내셔서 왕이 되게 하셨다.

그랬더니 그가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다.

그가 목자로서의 삶을 통해 그의 성품이 완전해지고, 그의 능력이 능숙해진 것이다.

 

예수님도 오셔서, 우리를 양으로, 그분을 목자로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그러나 삯군은 목자도 아니고,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래서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해치게 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다.

우리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셨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하셨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6)

 

성도들은 맹목적으로 목자에게 충성하면 안 된다.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고 분별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오직 충성!’ 하면서, 열매는 보지 않고, 화려한 양의 옷만 보니 문제이다.

 

베뢰아 성도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성경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없으면,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를 구별할 수가 없다.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고, 그 도움을 위해 경건 서적들을 구입해서 읽으라.

모르면 당하게 돼 있다. 모르면 바른 길을 갈 수도 없다.

정확한 성경 지식이 없으면, 도둑과 이단의 먹이가 되고 만다.

삯군들과 도적들은 성경을 쉽게 잘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서 유혹을 한다.

거리에서 체육관에서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쳐준다는 곳에 함부로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경건한 스승이나 그 가르침으로 무장하고 훈련된 사람을 목자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들이 있지만,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비는 많지 않다고 하였다.

 

말세가 되면,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하였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는 이르지 못하는 “얀네와 얌브레들”이 많이 있다.

 

우리 주심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기 사욕의 스승이 아니라 아비 같은 스승을 만나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고 성숙해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성장과 성숙이 우리와 자녀와 가정의 복과 영생의 복을 좌우한다.

 

성공과 관계만을 삶의 푯대로 삼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성결과 의로움을 삶의 푯대로 삼으시라.

참으로 복과 형통을 가져 오는 것은 탐심을 향한 야망과 질주가 아니고, 믿음과 성결이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 복을 가져온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 떼처럼 보호하시며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기 바란다.

선한 목자이신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 하나님은 그룹 사이에 좌정하고 계신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는 이여”

 

시은좌 또는 속죄소는 그룹 사이에 있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보좌는 또한 우리의 죄를 속해주시는 곳이었다.

법궤 위 보좌에 좌정하시고, 그 법을 어긴 죄를 용서하시고 그 법에 따라 은총을 베풀어주셨다.

 

하나님의 법이 우리 양심과 삶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신앙과 인생의 형통하는 길이고 복의 길이다.

이 법을 어길 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이 법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수시로 나아가 이 법을 범한 죄를 회개하고 은총을 구해야 한다.

회개할 줄 모르고 은총을 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 힘으로 살 수 있다고 교만을 부리는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를 능력으로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안다면, 능력으로 구해 주실 분은 하나님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을 의지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저주를 약속하고 계신다.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의 세 지파만을 거명한 것은, 그들이 북 이스라엘을 대표하였고,

성막을 가장 가까이서 호위하던 지파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인 우리 영적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이스라엘을 양 떼 같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

그분은 그룹 사이에 좌정하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우리를 능력으로 모든 역경에서 구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긍휼을 받기 위해서 보좌에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란다.

 

2. 현재의 슬픔과 곤경을 하나님께 고해야 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좀 먹고 살만 하면,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예배하고

마음은 세상을 향해, 우상을 향해, 쾌락을 향해 달려갔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서 경고하고 돌이키고 회개할 것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더욱 목을 곧추 세우고 대적하였다.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마침내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 부어졌다.

 

그들이 환난 중에 기도를 하여도 하나님은 얼굴을 감추시고 듣지 아니하셨다.

죄악을 품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

죄를 회개하고 나서, 진노를 거두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분의 법도를 순종하는 것은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자는 그분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분의 법도를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마음으로부터 경외하는 자이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5:29)

 

같은 고난이지만, 의를 위한 연단은, 믿음과 인내로 견디며,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많은 눈물을 양식처럼 먹게 하셨고, 많은 눈물을 음료처럼 마시게 하셨다.

영원히 기쁨 중에 살게 될 자들 중에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슬픔 중에 보내는 이들이 많다.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눈물로 통과해야 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2-3)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보이질 않는다.

환경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입술이 닳도록 드리는 기도는 응답할 조짐이 없다.

하늘은 칠흙같이 어두울 뿐, 큰 비를 불러올 손만한 구름은 보이질 않다.

오히려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고, 원수들이 비웃기만 한다.

“우리를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어찌 이리도 내버려 둘 수가 있느냐고 비웃는다.

내가 잘 돼 있으면, 쉽게 다투거나 함부로 비웃지 못할 것이다.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이 의기양양하며, 자기들의 형통을 자랑하며 의인들을 조롱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법도를 지켜 행하는 중 오는 고난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그 고난의 종착지가 크고 영원한 영광이고, 그 고난이 인내와 연단을 이루고서는,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내 기업으로 받기 때문이다.

 

3.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회복하여 주시길 구해야 한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오직 그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음으로 붙들고, 자신을 깨끗이 하며,

은혜의 보좌 앞에, 자주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우리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우리가 이렇게 구하는 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한 사랑의 끈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잃지 않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신뢰가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고난의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춰주시는 것이다.

 

나의 죄가 하나님의 ‘진노의 어둠’을 불러왔다면 회개하자.

기억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솔직히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자.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이다.

 

선을 행하는 중에 오는 ‘연단의 어둠’이라면,

그 종국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케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때를 기다리자.

 

우리가 바로 여호와께서 심으신 작은 가지인 것을 믿자.

여호와의 때가 되면, 속히 이루실 것들이 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힘들 때 마다 이 시편 80편의 간구를 우리 입술로 드리자.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9절)

우리의 돌이키심과 회복과 구원이 오직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춰주심에 달려 있다.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춰주실 때, 우리를 가로막은 홍해와 요단은 갈라질 것이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 올 것이다.

어둡던 이 땅이, 내 인생이, 우리 교회가, 밝아질 것이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고,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이 흐르게 될 것이다.

마른 땅에 샘물이 터지고, 사막에 물이 흐를 것이다.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기쁨으로 찬송 부를 것이다.

 

우리를 괴롭게 한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년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실 것이다.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구원과 기적을 나타내실 것이다.

주 우리 하나님이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주실 것이다.

우리 손이 행하는 일을 견고하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그 날은 ‘한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는 날이다.

“내 마음이 여호와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삼상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