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7/28, 주일설교, 큰 광풍과 믿음

강대식 2013. 7. 28. 19:27

본문: 마가복음 4: 35-41

 

주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큰 광풍이 일어나 파도로 물이 차서 죽게 되었다.

주님은 여전히 베게를 배고 주무시고 계신다.

제자들이 다급해서 주님을 깨운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다.

그런 연후에 주님이 제자들을 나무라신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들은 오히려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말한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1. 큰 광풍과 파도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큰 고난과 위기로 죽은 것 같은 광풍과 파도를 만난다.

모든 상황으로 판단하건데, 어떤 타개책이 없으면, 이젠 그대로 죽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 광풍과 파도를 무서워하고 염려해서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믿음이 흔들리고 없어지니 무서워하고 염려한다.

 

모든 일은 하나님 손 안에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한다.

감당 못할 시험을 주지 않으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그 새를 못참아서 비명을 지르고, 오두방정을 떨지 말아야 한다.

상황이 지나고 나면, 부끄럽고 얼굴을 못들 뿐이다.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신다. 환난도 짓고 평안도 창조하신다.

형통과 환난을 섞어 주셔서 함부로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신다.

 

일의 되고 안 되고에 매달려 살면 세상의 노예가 되고, 일의 노예가 되고 만다.

계획과 작정은 사람이 할지라도 사람의 길은 결국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만, 안 될 때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광풍도 파도도 순종케 하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무서워하지 말라. 믿음을 잃지 말라.

주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환경이나 소유로 살지 않는다.

 

일의 성공도 다가 아니고, 일의 실패도 다가 아니다.

바람처럼 파도처럼 스쳐가는 일회성일 뿐이다.

우리는 수많은 바람과 파도를 지나 영원한 생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가는 광풍과 파도로 시험을 해보면 알 수 있다.

평소에는 내 소유와 환경에 별 문제가 없을 때는 담대하고 믿음도 굳건해 보인다.

그러나 내 가정에나 하는 일에 큰 광풍과 파도가 일어나면 달라진다.

 

남이 위기가 닥칠 때는 조언도 잘하고 믿음을 가지라고 격려도 잘 하던 사람이,

자기에게 동일한 위기가 닥치면 믿음을 다 잃고 우왕좌왕하고 낙심하여 절망하고 만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24:10)

 

큰 광풍과 파도가 밀려왔을 때, 욥과 그 아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믿음을 보였다.

십남매가 하루 아침에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욥은 어떻게 하는가?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0-22)

 

더 나아가 사탄이 욥의 몸을 쳐서 온 몸에 종기가 나게 하였을 때 아내가 하는 말이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2:10)

큰 광풍과 파도 앞에서 어떻게 믿음에 차이가 나는가?

믿음이 의지하는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직 땅의 것, 소유와 환경을 깔고 앉은 믿음과 하나님께만 소망을 둔 믿음의 차이이다.

 

자기를 위해 땅에 보물을 쌓아 둔 믿음과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둔 믿음의 차이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긴 믿음과 오직 하나님만 섬긴 믿음의 차이이다.

큰 광풍과 파도 앞에서 우리의 믿음의 실상은 여실히 드러나고 만다.

 

우리 주님은 나무라신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예레미야 선지가 하나님께 따져 물었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12:1)

 

하나님의 대답은 어떻게 보면 동문서답이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렘12:5-6)

 

보행자와 달리는 수준의 시련에서도 피곤해 하면

말과 경주하는 수준의 시련 앞에서는 어찌 감당하겠느냐?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겠지만, 요단 강 물이 넘치는 광풍의 파도 앞에서는 어찌하겠느냐?

 

그런 위기가 닥치면 형제와 부모도 믿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라고 하신다.

정말 광풍과 파도의 위기가 닥치면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오직 입김일 뿐이고, 안개와 같이 사라질 뿐이다.

애굽도 의지하지 말고, 혈육도 재물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우리의 믿음은 보이는 것에 두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

 

2. 큰 광풍과 파도는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우시는 것이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고 하셨다.

어떤 광풍과 파도가 닥쳐와 죽게 되었을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나 믿음은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난다.

말씀과 기도가 멀어지면, 어느새 믿음은 쫄아들고 미약해지고 결국에는 없어지고 만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의인은 말씀으로 산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말씀이 없으면, 믿음도 없다.

긴 인생길, 광야생활 중에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시는 것은

말씀으로, 믿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믿음은 꾸준한 경건생활, 기도와 말씀의 생활 중에, 환난을 통해, 다져지고 굳건해 진다.

 

말씀은 언제 듣는가? 특히 주일 예배를 통해 듣는 것이 최상이다.

그래서 주일성수는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쇠태를 좌우하는 핵심인 것이다.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모든 영성의 어머니이다”(루이스 베일리).

“경건의 생명력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유지되고 보존된다”(윌리엄 가우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한 주간이 세속적인 삶으로 채워진다”(토마스 멘튼).

 

토마스 왓슨, “주일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장날이며, 모든 날 중에서도 가장 복된 날이다.

이날은 영혼의 축제일이다. 평일에는 짚을 주울 뿐이지만, 주일에는 진주를 얻게 된다.

이날에 거룩한 정서들이 우리 마음에 일어나고 은혜가 점점 쌓이게 되며,

마음에 쌓인 부패가 약해지고 사탄이 말씀의 권위 앞에서 번개처럼 떨어진다.

그리스도는 주일마다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시고 돌같이 굳어진 미음을 살같이 부드럽게 하신다.

우리가 이 날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고 경외해야 하겠는가!

주일은 세상에 있는 모든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날보다 주일에 더 많은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신다.”

 

큰 광풍과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무엇보다 주일 예배와 말씀의 은혜 가운데 자란다.

십계명에서 처음 3계명을 실천하는 첫 계명이 바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이다.

 

큰 광풍과 파도가 위기로 닥쳐도 낙심하거나 믿음을 잃지 않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우리의 믿음을 두어야 한다.

항상 광풍과 파도에 요동치게 되어 있는 우리의 소유와 환경에 믿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큰 광풍과 파도의 위기는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무서워하고 믿음을 잃었던 제자들도 시련을 통해서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폭풍에 시달린 나무가 튼튼한 제목이 될 수 있다.

수많은 파도와 싸운 경험이 있는 사람이 훌륭한 항해사가 될 수 있다.

많이 얻어 터지며 맷집이 걸러진 사람이 훌륭한 권투선수가 될 수 있다.

 

어떤 환경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이 믿음의 대장부가 될 수 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1-13)

 

일체의 비결을 배운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셔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

모세의 능력은 일체의 비결을 배운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내가 가진 것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40년 광야 생활 중에 그가 가진 능력은 다 내려 놓았다.

 

3. 큰 광풍과 파도는 믿음으로 영광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예수의 생명이 나타날려면 우리는 수없이 죽음에 넘기워져야 한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11)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그 잠시 받는 작은 고난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룬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우리가 겪는 광풍과 파도의 고난들이 영원한 영광을 이룸을 믿고 확신해야 한다.

잠시 머물 이 땅에서의 영광에 연연하거나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맡긴 바 사명대로 구하고 열심히 일하되,

그것을 하는 목적이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만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욕심으로 죄를 잉태하고 그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으라고 축복하지 않으신다.

사탄은 자기 노예 만들려고 일시적으로 축복해서 영원한 멸망으로 끌고 가는 수법을 쓰고 있다.

자기에게 절만 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주님을 유혹하던 자가 사탄이었다.

 

오늘날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 세상 영광을 얻고자 한다.

우리 주님은 죄짓는 손과 발과 눈을 갖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그것들 없이 영생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의인은 믿음(말씀)으로 산다’의 의미를 큰 광풍과 파도 앞에서 다시 새겨 보아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믿음이고

내가 믿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는 증거가 믿음이라는 것이다.

 

큰 광풍과 파도에도 무서워하지 않고 믿음을 보여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그분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