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 1:1-6
시편은 신구약 성경의 집약 또는 요약으로 불리워 왔다.
구약과 신약의 진리와 복음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 시편이다.
기도와 찬송이면서도 놀라운 진리들이 간결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1편은 또 그 전체의 축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의인들과 악인들의 영원한 운명이 몇 마디 간결한 문체로 기술되어 있다.
성경은 양분이지 중간이 없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양의 무리와 염소의 무리, 천국과 지옥이 있을 뿐이다.
의인은 여자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이다.
악인은 뱀의 후손이요, 마귀의 자녀요, 지옥 백성이다.
악인이 점차 진화하여 의인이 되는 법은 없다.
지옥도 아닌 중간 정거장인 연옥에 있다가 천국에 가는 법은 없다.
복 있는 사람이 의인이다.
저주와 심판을 받는 사람이 악인이다.
의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에 복 있는 사람이다.
의인이 되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행20:21)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다.(막1:15)
의인은 회개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다.
의인은 하나님과 화평하고 은혜로 살며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5:1-2)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는 의인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인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는 큰 죄들을 짓지 않았으니 자기는 의인이라고 생각들을 한다.
또 웬만한 교양을 갖추고 재물이나 지위가 있으면 의인이거니 한다.
감옥에 가고 드러나기 전까지는 학력과 경력을 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더러운 옷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시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심령 가운데서 역사하시기까지는 검은 것을 희다 하고 산다.
성령이 오셔야 검은 것이 검은 줄을 알고 흰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요3:3,5)
예수의 이름 외에 다른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행4:12)
교회 오래 다녔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복음 전도는 이런 점에서 유사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내가 영으로 거듭나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의인이 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가는 줄로 안심하고 있다가 지옥 입구에서야 아차 하게 된다.
그 때는 돌이킬 수도 없고,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다섯 처녀의 운명이 되고 만다.
복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의인이다.
의인은 복 있는 사람이다.
이 의인은 무엇보다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와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다.
악인은, 확실한 목표나 원칙도 없이 욕망과 유혹에 따라 행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죄인은, 죄를 행하기로 결심하고서 죄짓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는 자들을 의미한다.
오만한 자들은, 하늘에 대고 욕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의인의 영혼에 끊임없이 괴로움을 주는 자들이다.
의인은 그들을 볼 때마다 피한다. 의인은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의인은 그들이 행하는 것같이 행하지 않는다.
악인의 꾀가 장성해서 죄인의 길로, 오만한 자의 자리로 가게 한다.
악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습관들을 잡지 못하면 죄인의 길에 서서 함께 가게 된다.
죄인의 길에 서다가 결국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면, 악을 행하면서도 평안하고, 양심이 화인 맞은 것을 즐기게 된다.
이들은 공개적인 재판석에 앉아서 의인들을 오히려 고압적으로 단죄하게 된다.
악인의 사고방식이 죄인의 길에 서게 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한다.
영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 이전 것을 버려야 한다.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것들이 바로 모든 죄악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이전 것의 사고방식과 가치관들을 버리지 않으면, 죄인들의 조언을 곧이 듣고 어울리게 된다.
철학과 속임수에 걸려 들고 온갖 교훈의 풍조에 휩쓸리게 된다.
미혹의 영에 끌려서 진리와 복음과 멀어지게 된다.
배우긴 배우는데 진리의 지식에는 이르지 못하는 ‘얀네와 얌브레’들이 되고 만다.
이들은 목자와 진리를 대적하고 그 마음이 부패하여 믿음에서 버리운 자들이 되고 만다.
저는 이 과정을 35년 정도 걸어 왔다.
철학과 속임수와 온갖 교훈의 풍조와 미혹의 영에 걸려들어 25년을 살았다.
돌아와서 목사가 되고서도 내부에 있던 동일한 것들의 미혹을 따라,
진리를 옳게 분별 못하고 미혹의 영을 따라 10년을 살았다.
진리의 영과 복음을 확실하게 붙들고 살게 된 것이 이제 7년 쯤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런 나를 보면서도, 아니라고, 더 좋은 길을 발견했다고 가는 것이다.
그 길이 철학과 속임수의 온갖 교훈이고 미혹의 영의 길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 길이 의인의 길이 아니고, 악인의 길,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길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의인은, 그러한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한다.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으나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비는 적다고 했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스승이 되는 데는 수십년의 광야생활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복 있는 사람은,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사랑한다.
세상에 있는 재물보다 명예보다 권력보다, 성경을 사랑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통치하심을, 유일한 복의 길을 계시하고 있다.
율법, 곧 성경은, 멍에이기는 하지만,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기 때문에
의인은, 속사람을 따라서, 기꺼이 거기에 동의하고 즐거워한다.
우리 주님은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마11:29)
그것이 진정한 자유와 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그것을 즐거워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으면 멀리하게 되고 귀찮게 여기게 된다.
사랑하면 항상 가까이 하게 된다.
사랑하면 그것을 생각(묵상)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의 증표이기도 하다.
의인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주(晝)와 야(夜)로 말씀을 묵상할려면, 최소한 낮의 시작인 아침과 밤의 시작인 저녁에
말씀의 묵상을 시작해야 한다.
묵상하는 것은 그대로 살기 위함이다.
그 묵상이 낮 동안의 일과 교제, 밤 동안의 일과 휴식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인들의 행위의 준칙이다. 위로와 소망의 원천이다.
우리의 성품과, 생각과 행동을, 끊임없이 습관적으로 거기에 비춰 보아야 한다.
우리의 본보기요, 거울이요 경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이것을 마음 속에 확실히 심기 위해 광야 길을 걷게 하신다.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셔서, 이 진리를 마음 속에 심고 행위로 살게 하신다.
그것이 복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다. 의인의 길이고 복 있는 사람이 가는 길이다.
율법, 곧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자.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기록된 대로 묵상한 대로 지켜 행하자.
정말 자녀를 사랑하고 가정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돈 좀 더 벌어서 좀 더 해주고 좀 더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씀을 따라서 거룩한 삶, 성결한 삶을 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복은 받을 수가 없다.
악인들의 꾀를 따라서는, 죄인들의 길에 서서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서는,
결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이나 가정이 될 수 없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과 가정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바람에 나는 겨’로 판가름이 나고야 만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로 세워진 사람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게 된다.
경건한 삶을 산 결과이다.
말씀은 진액과 피가 되어서, 그를 아름다운 열매 맺는 좋은 나무를 만들어 준다.
하나님의 말씀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선한 말과 일에 좋은 나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서 우리를 다스린다면, 철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이다.
결코 시들지 않는, 월계수 잎과 같은, 위로와 명예를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전혀 그럴 수가 없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70인 역은 이렇게 번역한다.
“그들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며,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지도 않고, 그것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소돔의 포도열매들만을 맺을 뿐 다른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들은 땅을 못쓰게 할 뿐이다.”
바람에 나는 겨는, 겨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것,
타작마당에서 주인이 날려 버리기를 원하는 티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티끌을 말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무리 높게 여기고 소중히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겨와 같다.
그들은 속이 텅 비어 있다. 그들 속에는 알갱이도 견고함도 없다.
그들은 바람과 유혹이 불어 오는 대로 이리저리 쉽게 몰려 다닐 뿐이다.
그들의 종말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회리 바람과 불 앞에서 겨처럼 되고 말 것이다.(시5:5)
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치는 증거들은 너무도 명백할 것이고, 그에 대한 심판은 공정할 것이다.
그들이 성품과 몸으로 지은 죄들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역자들은 속아도, 그리스도께서는 속지 않으실 것이다.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를 정확하게 골라 내실 것이다.
그 날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날, 모든 것이 구별되는 날, 최종적으로 분리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의 특권과 유전무죄는 그곳에서는 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장래는 다시 번복될 수 없는 선고에 의해서 영원히 결정되게 될 것이다.
지옥이 없다고 큰 소리치던 입술은 닫히고 실제 지옥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악인들은 이 땅에서는 그럭저럭 의인들의 회중에 섞여서 잘 살았지만,
하늘에서의 장자들의 총회에는 결코 끼지 못할 것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의인들의 길을 인정하신다.
그 길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기 때문에, 은혜로, 의인들은 형통하고 그 끝이 좋게 될 것이다.
고난의 시절이 지나고 여호와의 때가 되면 영광과 존귀로 관씌워 주실 것이다.
철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될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산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위로 받으며 달려갈 길을 간다.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달려갈 길과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다.(행20:24)
복 있는 사람, 의인은, 자기 생명을 전제와 같이 다 붓는 사람이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는 사람이다.
그 의인이 세상 장막을 벗고 가는 날,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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