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8/18 주일설교, 오직 믿음의 법으로

강대식 2013. 8. 18. 16:28

본문: 롬 3:27-28

 

1.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다.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다.

율법은 가정교사가 되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주신 것이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신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대로 다 행하면 의로울 수 있지만,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 이를 지킬 수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이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죄를 깨달을 뿐이지 의롭게 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큰 죄를 짓지 않았으니, 감옥에 간 적 없으니, 그런대로 나는 의인이라고.

내놓고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 오셨을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사고 방식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눅18:11-14)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교인들 중에 이런 바리새인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님 오셨을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이 오늘날 교인들의 모습 그대로인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내가 큰 죄를 짓지 않아서 의인이 아니라, 내가 죄인인 줄 알아야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

저 바라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죄인인 줄 안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 갔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저들의 누룩(사상, 교훈)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바울도 말씀한다.

(고전5:8)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이 누룩을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교회도 많고, 교인도 많지만, 세상은 조금도 변하질 않고 더 악해만 갈 뿐이다.

 

그들과 뭐 다른 게 있어야, 함께 속해 있는 세상에 변화가 오지요.

세속에 물들어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세상이 변할 수가 없지요.

교회가 세상이고, 세상이 교회인 셈이지요. 경계가 없어진 셈이다.

 

세상에서 큰 소리치는 사람들, 교회 와서도 큰 소리 치고, 머리를 쳐들고 특권을 누린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교회 와서도 버림받고, 머리를 들지 못한다.

세상으로부터 따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아니고, 세상과 함께 온 사람들이다.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함을 받은 흔적이 없는 것이다.

애굽 땅 왕 모습 그대로이고, 애굽 땅 종 모습 그대로가 현대 교회이다.

 

진정한 교회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분리되어 나온 사람들이다.

교회는, 율법의 행위로 의인임을 자랑하고, 폼 잡는 곳이 아니다.

영으로 거듭나고 죄를 회개해서 심령이 변화된 사람들의 모임이지요.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 밖에 없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 죄를 대신 속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가 나의 죄를 처리한 것을 믿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나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의를 보고 나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다.

 

단순히 내 입술이 내 생각이 한번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했기에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율법만 법이 아니라, 믿음도 법이 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믿음의 법은, 무엇을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의 법이다.

 

- 먼저, 무엇을 믿느냐의 믿음의 법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면,

먼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보내셨음을 믿어야 한다.

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보내셨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죄가 속량되고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은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은 의롭다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죽으신 그리스도는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아버지께로 받아 지금도 만물을 통치하시고

영원히 통치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때가 되면 이 땅에 재림하시고 최후 심판을 하시고

영생과 영벌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사실은 내가 믿기로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믿어지는 것이다.

 

- 어떻게 믿느냐의 믿음의 법이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려면, 우리 편에서는,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가슴을 치고 회개하던 세리처럼 성령을 통해 내가 죄인인 것을 알아야 한다.

죄인인 줄을 알면 지난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게 된다.

그것을 회심이라고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마음 중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는 것이

구원받는 믿음이다.

 

이와 같이 믿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의 법이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바로 이 믿음의 법을 고백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법정적 선언이지, 실제로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에게 형벌을 선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에 대한 형벌은 없다. 그 벌을 십자가에서 주님이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나서 짓는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자녀의 불순종이다.

부모는 자녀가 잘못되면 죄를 형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매를 때리는 것과 같다.

죄를 지었다고 자녀가 아니고 부모가 아니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3. 믿음으로 회심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율법으로 행위로 변할려고 해도 안 되던 변화가, 심리학적으로 해도 안 되던 변화가,

성령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바울과 베드로가 되고, 어거스틴이 되고, 루터와 칼빈이 되고, 청교도들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이다.

(딤전1:13-14)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꼭 극적인 변화만 변화인 것은 아니다.

점진적으로 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가 근본적으로 시작된 것은 확실해야 한다.

 

하나님이 오셔서 한 인간 안에서 역사하셨는데 그 전과 같을 수가 없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 변화가 순간적으로 완전한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된 것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이전 것들은 지나가고 점점 새 것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를 성화라 한다. 주님의 성품과 삶을 점점 닮아가는 것이다.

(의롭다 하심과 성화는 분리될 수 없다.)

주님과 닮아가는 부분이 없고 오히려 마귀를 닮아가고 있다면, 그 출발이 의심스럽다.

나는 잘 모르는데 옆에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돼 있다.

자녀는 부모가 누구인지 그 부모를 닮아가게 돼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이 변화를 도우시고 이끌어 가신다.

우리의 사랑과 순종이 이 변화를 또한 이루어가는 한 축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한다.

 

회심도 아니 한 사람이 회심한 것으로 어물정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성령을 통한 회개와 믿음의 확실한 변화가 없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이제라도 그 은혜를 구하면 된다.

 

요즘은 심리학적인 변화가 교회 안에 만연하고 있다.

상처가 치유되고 외적인 변화가 좀 보이면 회심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성령에 의한 변화처럼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고, 일시적이고 외적인 변화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로 인해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돌이켜 다 구원받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시다.(출34:6)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은혜로 거저 주시는 은사이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회심하였다고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죄를 짓지만, 고의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는 않는다.

우리는 육신을 벗는 날까지 죄와의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거듭나고 회심한 사람은 성령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과 갈등이 일어난다.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주님과 함께 성령을 힙입어 죄와 싸워 이겨가는 것이다.

 

4.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정결케 하는 작업을 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사생아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의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고, 출생시켜 놓고 나서, 진정한 의인을 만들어 가신다.

 

그렇지만 우리의 고난과 연단의 끝은, 목적지는, 영광이고 영화이고 영생이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 영광을 바라고 고난 중에도 우리는 즐거워하는 것이다.

고난이 인내를 이루고 인내가 연단을 이루고 연단이 소망을 이루게 된다.

(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를 받을 수도 있다.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의 고난을 받을 수도 있다.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l에 비하면

우리의 현재의 고난은 잠시요 경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

 

말과 경주해도, 요단 강물이 넘쳐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비천과 궁핍과 배고픔에도 자족하고 견딜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가야 한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셔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간다.

예수 죽인 것을 날마다 지게 될 때에도, 예수를 위해 우리가 날마다 죽음에 넘기울지라도

그것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함인 것을 말씀을 통해 우리는 믿어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의지하고, 돈과 권력을 의지하고,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을 심판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복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