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애가 1:1-7
1. 즐겁던 성이 슬픈 성이 되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이 성이 어떤 성이었는가?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기업으로 준 땅의 성이었다.
모세가 인도하고 여호수아와 다윗이 정복하여 굳건히 세운 나라의 성이었다.
솔로몬 이후 몰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슬픈 성이 되고 말았다.
그 많은 선지자들이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경고를 들려줬지만,
끝내 돌이킬 줄을 모르고 경고하신 말씀대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망하고 말았다.
예레미야애가는 그 비참한 종말을 슬퍼하는 노래이다.
“슬프다, 이 성이여.”
이 슬픈 성의 운명이, 내 인생, 내 가정, 내 직장, 내 사업, 내 민족의 운명이 아니길---.
이 성이서 어떤 성이었는데? 열국 중에 크던 나라였는데, 과부 같이 되고 말았다.
열방 중에 공주였는데,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비극이 닥치면, 제 한 목숨 연명하기 바빠서 사랑하던 관계고 친구고 다 소용이 없다.
1:16)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예루살렘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20-21)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내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나이다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
2:5)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분이시다)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억하였도다
슬픔과 멸망의 원인은 하나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은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 줄을 모른다.
그 범죄가 얼마나 비참한 결말을 가져오는지를 모른다. 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런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그런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세운 이스라엘 민족도 큰 딸 시온도 예루살렘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무한정 참고 기다리실 수가 없다.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같이 망하리라’고 하신다.
(고전10:5, 11-12)그들이 ---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예루살렘은 70년 포로생활 후에 돌아 왔지만,
여전히 죄악에서 돌이킬 줄을 몰라, 우리 주님은 이 성의 멸망을 슬퍼하셨다.
(마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슬픔과 멸망을 당하는 날 옛날의 즐거움을 기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왕년을 기억하고 얘기해 봐야 누가 들어주는가?
영광이 슬픔과 멸망으로 끝나면 위로해 줄 자도 들어줄 자도 없다.
그러나 고난이 영광으로 끝나면 그것은 너무 좋은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려고 귀를 기울이며 부러워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지니라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
즐겁다가 슬픔으로 끝난 이야기가, 영광이 멸망으로 끝난 이야기가
성경에는 역사적 사실로, 교훈으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40년 동안 왕 하다가 사울왕은 세 아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40년 동안 사사 하다가 두 아들 죽은 소식을 듣고 엘리 제사장은 목이 부러져 죽었다.
죄악이 관영하던 세상은 홍수로 종말을 고했다.
범죄와 환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멸망 당하고 황폐해졌다.
로마 천년도, 중세 천년도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고 역사는 말해 왔다.
요즘은 기법들이 잔인하고 교묘해서 수십년도 가지만 결국은 멸망을 가져온다.
(지금 악독을 부리는 시리아의 대통도 비참하게 물러날 날이 올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으로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 갔다.
이가봇.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죽으며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2. 심판은 대적들을 통해서 하셨다.
(애1: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이것이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심판하는 방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징벌하실 때마다
원망하고 불평을 일삼았다.
고난과 징벌이 큰 줄은 알고 하나님께 지은 죄의 큰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죄의 엄청난 죄악됨을 더 철저하게 깨닫는 것이 더 높은 거룩에 이르는 첫 걸음이다(라일).
흔히들, 재앙과 비극 앞에서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느냐? 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잔인한 부족신이어서 믿을 필요 없고
자기들은 예수님의 사랑신을, 신약의 하나님만을 믿는다고도 한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이 한 쌍을 이루는 서로의 짝인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사랑과 자비의 신, 축복의 하나님만을 좋아 한다.
공의와 공평의 하나님, 심판의 거룩한 하나님은 싫어한다.
그런 신앙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 제사장들이고, 타락한 백성들이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섭고 놀라운 일을 하게 되면, 무섭고 놀라운 일이 닥치고 만다.
딸 시온의 영광이 떠나고 재앙들이 쏟아지게 된다.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하게 되어 환난을 겪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앗수르를 불러 환난을 겪고 망하게 하셨고,
오늘 본문의 유다는 바벨론을 불러 망하게 하셨다.
남은 자들은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다시 종살이하게 하셨다.
사사시대에 하나님은 대적들을 강성하게 하여 그들을 징계하셨다.
(삿2:13-15)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괴로움이 심해지면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사사를 세워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였지만 그 악순환은 300년을 암흑시대로 채웠다.
대적들에게 식민지 생활을, 메소포타미아 구산 왕에게 8년, 모압 왕 에글론에게 18년,
가나안왕 야빈에게 20년, 미디안의 손에 7년, 블레셋과 암몬 자손의 손에 18년,
다시 블레셋에게 40년을 식민지 종살이하게 하셨다.
우리 주변에서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원수들이 형통할 때에,
우리도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우상들을 더 섬기고 있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법도보다는 세상 지혜와 방법을 더 좋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회개하여야 한다.
원망 불평부터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을 보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권사님이 자기들은 예수 잘 믿는데도 어렵고 힘들기만 하는데,
자기 형제간들은 예수 믿지도 않는데 다 출세하고 너무 잘 산다는 한다.
돌이키면 하나님은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대적들을 물리쳐 주신다.
대적들의 악행은 그대로 갚아 주신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 주신다.
(렘51:24)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주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50:31-32)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내가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리니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키리라
유다의 범죄에 대한 징벌의 도구로 쓰여졌던 바벨론은 그 영광이 멸망으로 끝이 난다.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정결하게 된 유다는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고 옛 기업을 회복한다.
택한 백성의 고난은 성결과 영광을 위한 것이다.
죄로부터 성결하여지면, 하나님은 영광과 축복으로 관씌워 주신다.
(롬2:9-10)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3. 하나님과 그분의 법도로 돌아가야 한다.
사도 바울이 다시는 못 보게 될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부탁한 곳은
오직 주와 그 은혜의 말씀이었다.
(행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유다가 환난과 멸망을 당한 것은 주와 그 은혜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경고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그들은 태평과 번영만을 믿고 선지자를 죽이고 거짓 선지자의 감언이설을 따랐다.
거짓을 설교하고 권력으로 다스리고 그것을 좋게 여기는, 무섭고 놀라운 일이
오늘날 이 땅의 교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것은 거짓 평화와 안식이요, 멸망을 불러오는 거짓 번영과 형통이다.
오직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로 돌아가야 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주와 그 은혜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참 자유와 안식을 준다.
범죄로 재앙과 멸망이 오고, 의와 성결로 축복과 영광이 온다.
딸 시온의 영광이 떠나간 것은 지도자와 백성들이 하나같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서야 이 진리를 깨닫게 될 때는 때는 늦으리이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욕심부터 잡고, 죄가 장성하기 전에 잡자.
원함으로도, 달음박질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축복이고 영광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과 성결함 만이 축복과 영광을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공의와 공평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회개하고 돌이키면 회복해주시고, 원수와 대적들은 때가 되면 갚아주심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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