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9/1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강대식 2013. 9. 2. 22:47

본문: 고전 3:1-11

 

1 육신에 속한 자에서 신령한 자로 성숙해야 한다.

 

(고전3:1-2)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문자 그대로 ‘육신에 속한 자’는 성령이 없고 자연 그대로 사는 자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육신에 속한 자는 그러한 자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되 어린 아이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인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인지,

거듭난 적이 없는 자인지, 거듭 났으되 아직 어린 아이인지, 분별이 쉽지 않다.

육신을 따라 사는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은, ‘사람을 따라’ ‘시기와 분쟁’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고전3:3-4)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교회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꼭 사람을 따라 행한다.

당을 짓고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며 갈등을 빚다가 결국은 떠나간다.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라고 하신다.

 

육신에 속한 자에서 벗어하는 길은 신령한 자로 확실히 성장하는 것이다.

신령한 자는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말씀을 따라 성령을 따라 사는 성숙한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육신에 있는 사람과 영에 있는 사람을 구별하고 있다.

(롬8:9)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영에 있는 사람도 육신을 따라 살 수 있다.

신령한 사람은 이런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성화하고 성숙해 가는 사람이다.

 

신령한 사람은 젖만 먹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장성한 사람이다.

(히5:12-14)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우리는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이들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수 믿은지 오래 되었으면,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한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만 머물고 그것도 확실히 몰라 매번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있다.

 

어린 아이처럼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은 못 먹는 사람이다.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하지 못한 사람이다.

조금만 어려우면 피하고 마다하고, 쉬운 것만 찾아다니면 성장할 수가 없다.

 

말씀을 쉽게 잘 가르친다는 곳이 항상 위험한 곳이다.

젖먹이들이 항상 이단의 먹이감이 되고 있다.

이단이 무서운 것은 아끼던 소유를 다 빼앗길 뿐 아니라 영혼까지 탈취당하기 때문이다.

남이 떠주는 젖이나 먹는 어린 아이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듣기 좋은 설교 찾아다니고, 간증 듣기 좋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숟갈을 사용해서 밥을 먹고 단단한 음식을 먹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린 아이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하신다.(의: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는 상태)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 신령한 자의 것이다.

지각(영적 감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이다.

 

2 신령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건축한다.

 

(고전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사람들이 견고하게 여기는 터는 보면, 돈이고 부동산이고, 권력과 명예 등이다.

그 위에 자기 인생 가정 사업을 건축하고자 한다.

그리고 안심하는데 얼마 있으면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건물을, 가정과 교회와 사업의 건물을, 견고한 터 위에 세워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아무리 화려하고 풍성해도 결국은 없어지고 말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영혼과 가정을 세우는 견고한 터가 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을 세울 견고한 터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건축한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죽으심만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알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십자가가 없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닌데도 말이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이런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우리 죄를 처리하고 의롭다 함을 받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우리가 주의 명령을 따라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다.

(눅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새 언약은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의 언약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건축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유일한 자랑할 것이 될 때에야

우리는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자랑하고 자기를 자랑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내 제자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건축을 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3 신령한 자는 그 터 위에 어떻게 세울까를 조심한다.

 

(고전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건축을 할 때는 심는 자와 물 주는 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혜로운 건축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어야 그리스도의 터 위에 견고히 설 수 있다.(엡2:20)

 

너무 쉽게 홀로 선생이 되는 경향이 있고 너무 쉽게 선생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몇 년은 집중적으로 가르침과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조심스럽게 건축하는 길이다.

급하다고 건너 뛴 계단은 다시 와서 밟게 돼 있고, 서두른다고 빨리 가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 조심스런 건축을 도와주는 아버지가 많지 않다고 하였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리스도 안에, 곧 교회 안에, 일만 스승, 곧 수많은 스승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정말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생명을 낳아줄 아버지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쓴 거짓 선지자는 많고, 순전한 말씀으로 생명을 낳아 줄 참선지자는 적다는 것이다.

 

일만 스승과 아버지를 구별하는 길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열매는 보지 않고 화려하고 힘있는 언변만 보니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사람이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밭이고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이 밭과 집에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을 심고 물을 준다.

 

그들이 수고를 할지라도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들은 각각 상을 받지만, 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의 임무를 감당한 것이다.

그러니 수고하고도 자랑할 것이 없고, 쓰임 받은 은혜를 감사할 뿐이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 스스로도 신령한 자가 되기 위해 열심을 다해야 한다.

스스로 성경과 경건서적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천하보다 귀한 나의 영혼을 위해, 영생을 위해, 내게 맡겨준 가정을 위해,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한다.(빌1:11)

그것이 신령한 자로서 그리스도의 터 위에 건축을 조심스럽게 잘한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밭으로서, 잘 심어지고 자라서 선한 열매들을 내어놓아야 한다.

(히6:7-8)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도,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는 것도 나에게 달려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복과 저주가 갈리고 있다.

가시와 엉겅퀴만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내 힘만이 아닌,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을 내가 갈아야 한다.

하나님은 수시로 밭가는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의 비를 내려 주신다.

그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고 하신다.(렘4:4)

많은 결실을 맺으려면 밭에 있는 돌맹이들과 가시들을 제거해야 한다.

돌맹이들은 우리의 완고한 고집과 자기 의와 자기 자랑들이다.

가시들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다.

이런 것들을 제거하고 기경해야 옥토가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조심스럽게 세워가야 한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의롭다 함을 받았으면 조심스럽게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옛사람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들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어지는 새사람을 입어가야 한다.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거룩과 성결한 삶이 행복을 가져오지, 행복 추구의 방법들이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조심스럽게 밭을 갈고 조심스럽게 성전을 지어가야 한다.

나중에 불로 태워 우리의 공적을 시험하실 텐데, 불에 타지 않고 남는 보석들이 많아야 한다.

다 타버리면 해를 받고 불 가운데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다.

 

젖만 먹는 어린 아이에서 신령한 자로 성장하자.

내 숟가락을 사용하여, 밥도 먹고 단단한 음식도 먹자.

영적 감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받고 선악을 분별하자.

다른 터는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견고한 터 위에 건축을 하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