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후 1:8-10
1 하나님은 큰 환난도 주신다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하나님은 오직 사랑만 해주시고 오직 복만 주시는 분이라 하는 가르침이 있다.
당신은 오직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한다.
믿고 선언하고 구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죄를 회개할 줄 모르고 주님을 마음 가운데 모실 줄을 모른다.
구원받으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야 함을 모른다.
그들은 현재 자기가 가진 소유와 특권을 자랑하고 의지한다.
예수 믿는다면서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현재의 소유와 특권을 유지하고 확장해 주는 복주머니 일뿐이다.
오직 그 유지와 확장을 위해 기도한다.
주님은 이러한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거룩이지 우리의 부함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의 것을 찾으라 하지 않으시고 위의 것을 찾으라 하신다.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다.
내 왕국의 번성을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다.
눈에 보이는 잠시뿐인 것을 구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구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먼저 거룩하게 하신 후 복주시지 복부터 주시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마음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하였는지 모르고 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가 기준이다.
그 부패하고 타락한 손에 복을 쥐어주면 죄를 향해 돌진할 것을 주님은 아신다.
먼저 복 주어 망한 예가 사울왕과 솔로몬왕이다.
거룩하게 한 후 복 주어 흥한 예가 다윗이요 요셉이요 모세요 아브라함이다.
이 서로 다른 예 중 어떤 길, 어떤 인생을 원하는가? 사울의 길? 다윗의 길?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큰 환난을 말씀하고 있다.
지금 하나님의 명을 받아 선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바울에게 닥친 큰 환난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 환난을 모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고 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였다.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
하나님이 사랑만 주시고 복만 주시는 분이라고 하는 분들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믿고 선언한 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사람들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작업이시다.
우리 마음과 몸이 부패와 오염이 심해서 스스로는 거룩한 길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이 닥치기 전에는 자기는 꽤 선하고 의롭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 바리새인처럼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실패한다고 일이 안된다고 고난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니다.
항상 잘 되어야 하나님의 뜻이고 축복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도 낙심과 넘어짐과 답답함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전에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다.
(신8:14-15)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사도 바울만이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의 심한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도,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는 땅을 지나게 하셨다.
욥도,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위험한 땅을 통과하게 하셨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거룩하니 그들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온전하니 그들도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도 고난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셨다.
(히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도 제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거룩함과 온전함을 위해서이다.
그 극심한 고난을 겪고서도 성질 머리 하나 고치지 못했다면 문제이다. 헛고생한 것이다.
십자가 없이, 고난 없이, 거룩함 없이 복을 준다는 개들의 복음에 속지 마시기 바란다.
그것은 저주 받을 복음이요, 멸망을 부르는 복음이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복음이다.
(빌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계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돠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다 성밖에 있으리라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들이라 하였고, 개는 썩을 것을 먹고 토한 것을 다시 먹고
탐욕스럽고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악한 자들을 의미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 진리를 거슬리는 자들은 개들이요.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개들이 짖는 복음이라 할 수 있다.
바울과 일행들이 겪은 그 큰 환난들이 그들을 얼마나 거룩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였겠는가?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죽음 같은 고난을 통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야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2 큰 환난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고후1:9)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탐욕덩어리들도, 바리새인들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해주셔야지요’ 라고 한다.
그것은 의존이지, 의지가 아니다.
탐욕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거룩함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고난으로 인하여 정결함과 거룩함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
고난으로 인하여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아야 비로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깨끗이 하지 않는 사람은 의존할 뿐인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싸우고 승리하였기에
금은 귀중품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드렸고, 말들은 힘줄들을 잘라 못쓰게 했다.
그것들을 의지하고 탐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삼하8:4)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시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바울과 일행들이 겪은 사형선고를 겪은 것 같은 큰 환난들은 그들을 거룩하게 함으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고난들도, 큰 환난일수록, 자신을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는 힘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모세의 기나긴 40년간의 광야훈련의 고난이 모세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들었다.
요셉의 억울한 13년간의 노예살이, 감옥살이가 요셉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다.
욥의 목숨까지 위험했던 환난이 그를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다.
다윗의 아둘람굴, 망명시절의 환난들이 그를 정결케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다.
시글락성의 위기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힘을 얻었다고 했다.
(삼상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의지하고) 용기를 얻었더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환난만 닥치면 원망하고 모세를 죽일려고 했다.
환난이 닥쳐보면 그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의지하는지 알 수 있다.
고난과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의 거룩이고 온전인 것을 알자.
거룩은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고, 말씀과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은 우리의 마음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거룩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해준다.
3 큰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후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큰 환난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큰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하나님이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분께 바란다.
사람들은 큰 환난일수록 세상을 향해 가서 힘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환난이 올 때마다 애굽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저주하셨다.
(사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사36: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이 주신 환난은 힘있는 사람이나 가진 소유로 해결할 수 없다.
그것들은 상한 갈대 지팡이일 뿐이다.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릴 뿐이다.
망신만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만 모독을 받을 뿐이다.
고난이 오면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나를 쳐서 복종시키며 회개하고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한다.
이스라엘은 위기해결에만 급급하여 애굽으로 달려갔고 그것은 멸망을 재촉할 뿐이었다.
현명한 왕들은 위기가 오면 금식을 선포하고 재를 뒤집어쓰고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다.
(눅10: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하나님은 환난도 짓고 평안도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환난이 우리를 낙심케 하거나 넘어지거나 망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감당 못할 환난은 하나님은 주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러니 지레 겁먹고 도움을 청하러 가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믿음 생활하면서 이런 경험들을 하였을 것이다.
어떤 고난도 환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
(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를 큰 환난이나 큰 사망에서 건지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주님을 닮아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이 거룩함의 목적을 달성하시면 마침내 복을 주신다.
가나안의 기업을 주시고 우리를 형통케 하신다. 영광스럽게 하신다.
거룩함이 기업과 형통과 영광을 이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거룩함 없이 복을 준다는, 개들의 복음을 믿지 말라.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고 그들이 믿는 신은 욕망의 배이고 그 끝은 멸망이다.
고난을 통해 거룩함을 이루고, 모든 환난에서, 큰 사망에서,
항상 건지시고 또 건지시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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